게서 떠나 성환역 다달아서는 / 해가 벌써 아침때 훨씬 겨웠네

오십년전 일청전 생각해보니 / 여기 오매 옛일이 더욱 새로워


일본사람 저희들 지저귀면서 / 그 때 일이 쾌하다 서로 일컬어

얼굴마다 기쁜 빛 가득하여서 / 일본남자 대화혼(大和魂) 자랑하는데


그 중에도 한 노파 눈물 씻으며 / 그 때통에 외아들 잃어 버리고

늙은 신세 표령(飄零)해 이 꼴이라고 / 떨어지는 눈물을 금치 못하니


말말마다 한이오 설움이어서 / 외국사람 나까지 감동되거늘

쓸데없는 남의 공 자랑하기에 / 저의 동포 참상을 위로도 없네


척수루의 빈 터는 볼 수 있으나 / 월봉산의 싸움터 자취 없도다

안성천의 다리를 얼른 건너서 / 순식간에 직산역 와서 닿았네


백제국의 첫 도읍 위례성 터는 / 성암산에 있으니 예서 삼십리

천오동에 놓았던 구리 기둥은 / 돌 주초만 두개가 남았다더라


이편저편 보는 중 모르는 틈에 / 어느 덧에 천안역 다달았도다

온양온천 여기서 삼십리이니 / 목욕하러 가는 이 많이 나리네


인력차와 교자가 준비해있어 / 가고 옴에 조금도 어려움 없고

청결하게 꾸며논 여관있으나 / 이는 대개 일본인 영업이라니


이런 일은 아무리 적다하여도 / 동포생업 쇠함을 가히 알리라

그네들이 얼마나 잘하였으면 / 이것 하나 보전치 못하게되오


백제 때에 이 지명 탕정(湯井)이라니 / 그 때부터 안 것이 분명하도다

수천년간 전하던 이러한 것을 / 남을 주고 객(客)되니 아프지 않소


소정리와 전의역 차례로 지나 / 갈거리(葛居里)를 거쳐서 조치원오니

낙영산(落影山)의 그림자 멀리 바라고 / 화양서원 옛일을 생각하도다


내판역을 지나서 미호천건너/ 몇십분이 안되어 부강역이니

충청일도 윤내는 금강가이라 / 쌀 소금의 장터로 유명한데오


사십리를 격조(隔阻)한 공주 고을은 / 충청남도 관찰사 있는 곳이니

내포(內浦) 일판 너른 뜰 끼고 앉아서 / 이 근처의 상업상 중심점이오


계룡산(鷄龍山)의 높은 봉(峰) 하늘에 닿으니 / 아(我) 태조(太祖) 집 지으신 고적(古蹟) 있으며

금강루의 좋은 경(景) 물에 비치니 / 옛 선비의 지은 글 많이 전하네


마미(馬尾) 신탄(新灘) 지나서 대전 이르니 / 목포(木浦)가는 곧은 길곧지는 않은데? 예가 시초라

오십오 자(五十五尺) 돌미륵(彌勒) 은진(恩津)에 있어 / 지나가는 행인의 눈을 놀래오


최남선의 경부철도가 중 대전세종충남 구간을 찾아서 긁어보았음.


이중 여기 언급이 없는 현대의 역은 두정, 전동, 서창, 회덕, 대전조차장, 세천 등의 역임.


한번 감상해보고 평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