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게시판

해당자로서 겪은 것만 말해보겠다. 청각장애, 난청, 어려울 난. 인생 이야기


- 장애등급 판정과 혜택

예전엔 청력검사 결과에 따라 123급을 중증, 456급을 경증으로 판단해서 장애인증(복지카드)을 발급했다. 급수별로 혜택이 조금씩 달랐음. 행정이 복잡해져서 바꾼 건지 요즘은 중증, 경증으로만 나뉨. 나는 현재 구4급-현 경증이고, 귀는 계속 나빠지기에 몇년 더 지나면 중증이 될 듯. 내가 주로 받은 혜택은,


1. 수능 : 듣기 문제가 지문으로 바뀜. 개좋음. 모의고사 때 개털렸던 듣기 문제 점수 모조리 만회함. 우왕~

2. 국립시설 할인 : 전쟁기념관이나 각종 공립박물관 같은 시설 할인. 시설따라 동반 1인까지 되는 곳도 있다. 당연히 좋다. 

3. 기차 할인 : 월~금에 기차 30%(새마을, KTX) 할인. 경증은 주말엔 안해줌. 시바... 무궁화는 상시 50%. 택시비보다 무궁화값이 쌈. 

4. 폰 장애인 요금제 : 난 문자만 쓰니까 좋음. 근데 이거 존나 한참 뒤에 생김. 거의 스마트폰 나오기 몇 년 전. 애미없는 통신사 놈들!

5. 군 면제 : 운이 존나 좋았는데, 병역법이 바뀌기 한 달인가 두 달전에 면제 판정을 받아서 공익에도 끌려가지 않았다. 


이외에 뭔가 더 있긴 할 텐데 생략.


- 청각장애 검사와 오해

청력검사는 크게 두 개가 있는데, 

1) 일반 청력 검사 : 뚜~뚜~뚜~ 삐~삐~삐~ 이런 소리를 음역대로 얼마나 작은 소리까지 듣나 검사. 안타깝지만 등급 판정은 이걸로만 한다. 

2) 얼마나 알아먹나 검사 : 바다 식탁 빨래 쌀 강 찹 이런 식으로 발음을 알아먹나 검사. 불러주면 들리는 대로 대답하면 된다. 나는 이게 25~26% 수준임. 열에 일곱은 제대로 못 알아들음. 


이걸 최소 일주일 간격 두고 세 번은 해야 함. 오차가 심하면 이 새끼 구라치고 있다고 장애판정 못 받음. 보면,
1) 소리가 들리는 것과 2) 말을 알아듣는 것 두 가지를 검사한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알아듣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 거다. 각종 외국어 노래가 나와도 소리가 들리는 거지 가사를 다 알아듣는 건 아닌 걸 생각하면 된다. 즉, 소리가 들린다랑 알아듣는다랑은 매우 큰 차이가 있음. 나는 노래 가사가 어떻게 들리냐 하면, '지직 너와 함께 지지직 지지지직 이별 지지직 지직지지직 워어어~' 중간에 한두 마디 알아먹는 TV 잡음 비트로 들리는 수준임. 

 

- 나이롱 장애인과 보청기

검사 결과가 전적으로 검사받는 사람한테 달린 거라 일부러 안 들리는 척하고 나이롱 장애인 등록해서 혜택 받아먹기 쉬울 것 같음. 검사자랑 결탁하면 대책이 없겠지만 이걸 좀 잡을 방법이 없을까? 돈 많은 새끼들이 기초생활수급자 위장 신청해서 세금 타먹는거랑 똑같은 짓인데...


나처럼 보청기 맞춰서 생활하려는 사람들은 보청기도 청력검사 결과에 맞춰서 제작하기 때문에 검사를 개판으로 할수록 손해다. 최근 맞춘 건 검사를 8번이나 함. 보청기 겁나 비싼데, 최대한 잘 맞춰야지. 보청기는 기본적으로 이어폰-확성기라 내 청력보다 높은 출력으로 큰 소리 나게하면 당장은 잘 들릴 지 몰라도 청력 손상이 더 심해짐. 그럼 또 출력을 올려야 되고 쓰던 기종이 그 출력 이상으로 못 올리면 새로 해야 함. 요샌 보조금이 나와서 부담이 덜하지만, 기종 따라서 보조금 못받는 거도 있음. 


- 잡담

나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청각장애인이다. 초딩 때부터 친구들을 잘 만나서 장애 가지고 시비터는 놈들도 적었고, 나도 겜창이라 잘만 어울려서 놈. 죄다 문자보다 통화가 편할 텐데 문자로 연락하거나 소통해줌. 입술 모양도 읽는 것도 익혀서 보청기를 끼고 나름 무리없는 회화를 하거나, 볼륨은 크게 올려야 하지만 자막 있는 음악, 애니, 영화도 잘 본다.

나는 다른 중증의 청각장애 분들과는 달리 매우매우 양호한거임. 그래서 '아이고~ 난 세상에서 제일 불행해~.' 류의 드립을 칠 생각은 없음. 불편했던 점을 들자면,

1) 전화 불가능. 급한 일도 문자나 카톡으로 해야 함. 각종 고객문의 등을 모조리 전화로 처리하는 곳은, 본사나 해당 은행까지 기어가야 함. 요샌 메일이나 글로 접수해주는 곳이 많아져서 다행. 

2) 치킨. 피자 등 주문배달 불가능. 이거야 같이 먹을 사람한테 대신 전화해달라고 해도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님. 

3) 강, 바다, 수영장에서 보청기 착용 불가. 물 들어가면 고장 나니까 비 올 때도 주의해야 함. 


4) 학교 수업 제대로 못 알아먹는 거. 자막 없는 한국 영화, 드라마, 애니는 못 봄. 우리말 더빙한 거 못 알아먹음. 

5) 한 때 와창이었는데 보이스톡이 일상화된 뒤에 레이드 같은 거 못 감. 몇 번 가긴 했는데 나 하나 때문에 진행 느려지고, 채팅 써야 하는 게 내가 불편해서 접음. 근데 블리자드 꼬라지보니 빨리 접길 잘한 거 같다. 개이득. 

6) 듣기를 못하다보니 내가 어떤 발성을 하고 있는지 잘 모름. 내가 성량이 적당한지, 발음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신이 안감. 그래서 노래 존나 못부름.


빡쳤던 점

1) 대학생 때. 알바 구하기 힘듬. 가장 좆 같았던 곳은 식당 설거지 알바하려고 간 곳. 청각장애인이라고 하니까 바로 '일은 시켜주겠는데 최저시급은 못 주겠고~' 이딴 소리가 나옴. 편의점이나 PC방처럼 손님하고 대화할 것도 아닌데 뭔 상관인가 싶었다. 걍 안함. 

2) 회사 다닐 때. 귀 안 들리는 거로 자꾸 지랄하던 상사. 그 회사는 퇴사함. 


3)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라는 요지의 정신론을 들먹이는 인간들. 땅콩 알러지를 땅콩 먹다보면 극복할 수 있다 수준의 이야기. 이런 놈들은 수화 배우고, 입술 읽는 훈련하는 건 노력이 아니라고 보는 부류임. 신경이 뒤졌는데 어쩌란 말인가? 현재 신경 재생 수술이 가능하긴 한가? 아이고 황우석님~ 왜 줄기세포 구라를 치셨나요? 

4) 눈이 안보이는 시각장애인 보단 낫다고 위안삼으라던 놈. 내가 살면서 딱 한 명 봤는데, 다신 상종하고 싶지 않음. 뭐 이런걸 비교함 ㄷㄷ


장애인도 그냥 인간임.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변태, 술고래 등이 다 있음. 나도 페미마냥 피해의식 꽉꽉 들어찬 장애인이 있는거 암. 당사자의 의지나 인성도 중요하지만, 막장 부모 아래 선 문제 자식들이 나올 확률이 높듯이, 어려서부터 또래나 어른들에게 장애로 놀림받고, 처맞고, 멸시받고 하면 흑화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나? 나도 인복이 없었다면 사회에서 유리된 추한 괴물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함. 


마무리로 장애인협회는 여성단체의 발톱이면 감사할 정도로 힘도 자금도 없다. 게다가 여긴 장애인 지원시설이나 학교는 죄다 혐오시설로 취급되서 어디 짓겠다고 하면 근처 주민이 반발하는 나라다.

언제 사고 날 지 모르는 세상에서 장애인 혜택이나 대우는 전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싼 보험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