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는 콜롬버스 시대 이전에는 부족들이 과라니어를 쓰고 유목생활을 하며 살던 울창한 숲과 비옥한 땅을 가진 지역이였음 1525년 에스파냐가 처음 발을 들이고 1536년부터 다른 남미의 국가,부족들처럼 식민지화가 시작되었음


 1537년 8월 15일 에스파냐 탐험가

후안 데 살라사르 이 에스피노사가 지금의 파라과이의 수도인 아순시온에 정착지를 건설하기 시작함 이 도시는 18세기 남아메리카에 정착한 예수회의 선교지며 에스파냐 식민지의 지방 중심지가 되었음 


동부 파라과이에 예수회 공회도소가 설치되어 150년간 번성했는데 1767년에 에스파냐 왕가가 예수회를 추방하고 파라과이는 1811년 5월 14일에 에스파냐 지역 정부를 정복하고 독립을 선언함

(예수회 유적지)

독립 후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를 중심으로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노력을 함그의 아들인 C.A. 로베스 동안에도 외국자본을 들어오게 하여 경제를 발전시켰음

그러나 파라과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삼국동맹 전쟁에서 5년간 남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 끝에 1870년에 패배하여 나라가 파괴되고 인구가 530,00에서 220,000으로 줄어들었고 남성은 28,000명 만이 남아있었음  특히 파라과이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가 이 전쟁에서 전사하였으며 파라과이 남자인구의 90%에 달하는 인구가 이 전쟁을 목숨을 잃어 수많은 전쟁미망인이 양산되기도 함 파라과이는 과거 전체가 파라과이의 영토였던 이구아수 폭포가 3등분 당하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영토를 크게 잃었음 그리고 친아르헨티나 친브라질 대립하다가, 1930년대차코 전쟁에서 파라과이는 볼리비아를 무찔렀음 파라과이는 차코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되찾았으며, 평화의 대가로 영토를 더 얻었음.

(삼국동맹전쟁 이 전쟁으로 파라과이가 멸망직전까지 감)

1949년 콜로라도당의 페데리코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5년 후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장군의 쿠데타로 물러나게 됨 새 대통령 스트로에스네르는 군사독재정치를 실시했으며 반대자를 탄압하고 파라과이에서 쫓아내는 등 가혹한 통치를 하였음 또한 부정선거를 통해 무려 7번이나 재당선됨 1980년대 후반 아들인 구스타보에게 세습을 시도하다가 이에 분노한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장군의 쿠데타로 추방당함. 대통령 로드리게스는 민주화 정책을 실시했으나 스트로에스네르와 마찬가지로 반대자들을 탄압하고, 1992년 대선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말았음 결국 자신이 지지한 와스모시 몬띠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이로써 차베스 이후 39년 만에 민정을 복귀하는 데 성공함 와스모시 몬띠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이미지를 완화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지만군의 방해와 경제 사정 악화 등으로 혼란을 겪어야만 했음 또한 이를 계기로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하는 등 테러의 위험에 둘러쌓이게 됨 1998년 라울 꾸바스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아르가냐부통령의 암살과 오비에도장군의 권력남용 등에 대한 책임으로 7개월만에 파면당하고 말았음 1999년 곤살레스 마끼가 권한을 승계받았지만 뇌물수수와 국가이미지 실추 등으로 지지율을 잃고 말았음. 2003년 새로 선출된 니까노르 두아르떼는 부패추방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나 경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말았다. 2008년 페르난도 루고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61년 만에 좌파정권 복귀를 이루었고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고 루고는 41%에 가까운 득표율로, 콜로라도당의 블랑카 오벨라르는 약 31%에 그침. 무토지 농민 시위의 유혈진압의 책임을 물어 루고 대통령이 탄핵되고 2012년에 페데리코 프랑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음 2013년 8월 15일 오라시오 카르테스가 당선되어, 5년 만에 콜로라도당 정권 교체를 따라 복귀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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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동맹전쟁만 아니였으면 파라과이가 지금보다 더 부강했을지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