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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다가 마지막에 메이지 덴노 무덤이나 메이지와 관련된 곳 근처에는

노기 마레스케를 모시는 '노기 신사'가 있다고 했는데, 이 이야기는 분량이 길어서 지금 쓰기로 함.





1. 노기 마레스케의 배경

-노기 마레스케를 한줄로 표현하자면 '메이지 시대의 장군'이라고 할 수 있음.

더 자세하게 표현하자면, 일단 고향은 조슈 출신.

일본 근대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조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테지.

메이지 유신은 에도 막부체제를 몇 몇 번(지방)들이 하급 무사들의 주축으로 연합해서 무너뜨리고

덴노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형태(지만 사실은 자기네들이 다 해먹는 식으로)의 변화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된 번 둘이 사쓰마(지금의 가고시마), 조슈(지금의 야마구치)지.


조슈의 메이지 유신 주역들을 묶는 인물 중 하나가 요시다 쇼인이라고 하는 학자인데

요시다 쇼인에 대해서는 또 글 하나 분량이라 여기선 생략하고

요시다 쇼인의 지인들이나 제자들 중에 나중에 메이지유신과 관련된 인물이 많지.

(요시다 쇼인의 당시 제자 중에 가장 시다바리가 이토 히로부미였음.)

하여튼, 노기 마레스케 역시 간접적으로 이들과 연관이 있었고,

이들이 조슈 번을 장악하자 인맥빨로 노기 역시 출세를 하게 되어 메이지유신에도 참여함.

그리고 육군에 복무하면서 커리어를 쌓아나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여하게 됨.


2. 러일전쟁

-노기는 청일전쟁에서 메이지의 신임을 얻고 계속 승진해서 1904년엔 육군 대장이 되고

그후 러일전쟁 3군 사령관으로 참전하게 됨.

여기서 노기는 러일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인 뤼순공방전에서 승리하게 되지만

문제는 러시아군의 잘 구축된 요새에 병사들을 꼴아박아 엄청난 피해를 내게 됨.

뤼순 공방전에 동원한 군사만 8만에서 15만 사이로 추측되는데 그중 사상자만 6만명에 육박했음.

이렇다보니 일본 국내에서 노기에 대한 책임론이 강해졌고, 일본 국민들 역시 분노함. 

그래서 일본으로 돌아오는 노기에게 전사자의 유족들이 달려들어 항의하려고 했으나

노기가 배에서 뤼순 공방전 때 같이 참전했다가 죽은 자신의 두 아들의 뼛가루가 담긴 병을 들고 나오자 

아무말 못하고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음. 

노기에게 러일전쟁은 평생동안 마음의 짐이 되었고, 메이지에게 자결을 요청했지만

메이지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자결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면서 막음. 


3. 노기 '장군'에 대한 평가

-대체로 노기에 대한 평은 '개인적인 인품은 훌륭한 사람이지만 장군으로써 능력은 그닥'임

메이지유신 후 유신세력 내부의 분열로 일어난 내전인 서남전쟁에서는 군기를 빼앗기기도 하고

타이완 총독이던 시절에는 대만인들의 계속되는 반란 때문에 결국 사임하기도 했고

러일전쟁 역시 뤼순공방전에서의 엄청난 피해를 보면 유능한 사람은 아니었음.

물론 뤼순 공방전은 위에서 워낙 쪼아댔던 것 때문에 100% 노기의 탓이라 볼 수도 없고

그 후 봉천 전투에서는 괜찮은 전략적 판단을 보인거 보면

이후 일본군에서는 매우 자주 나타났던 인맥빨과 정치질로 줄 잘서서 별까지 달았던 똥별 수준도 아니었고.


4. 메이지의 죽음, 그리고 노기의 자결.

-1912년 메이지가 사망하자 장례식이 진행되는 중 

노기는 부인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메이지와 죽은 두 아들의 사진에 절을 한 후 부인과 함께 할복하여 자결함. 

이 소식은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버리는데

니토베 이나조나 보수적인 인물은 노기의 죽음을 칭송했지만

언론들이나 외국물을 먹은 인물들은 '국제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미친짓'이라고 까버림.


5. 노기 신사

-일본 내부에서 노기를 메이지를 위해 따라 죽은 충성스러운 인물로 칭송하게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명장으로 우상화되버리고, 각지에 노기를 기리는 노기 신사가 세워지는데

특히 메이지와 관련된 곳에는 대부분 노기 신사가 근처에 있음.

도쿄 메이지신궁 근처에도 노기신사가 있는데 이 근처 언덕 이름은 일본어로 언덕을 뜻하는 '자카'를 붙여서 '노기자카'가 됨.

일본 아이돌 중에 '노기자카 46'의 노기자카가 바로 이 지역을 뜻하는 거임.


이전글에 적었던 교토의 메이지 덴노의 무덤 근방에도 노기 신사가 있음. 

거기 가보면 일본의 온갖 신사들 중에는 상당히 관리가 잘되있고 큰 규모인데

노기의 배경이 배경이다보니 곳곳에 일본 군국주의의 느낌이 찐하게 묻어나오는 것들도 곳곳에 섞여있음. 





보통 신사에서는 그다지 볼일이 없는 일장기가 있기도 하고, 

'충혼'이라는 다분히 군국주의 느낌이 나는 글자가 새겨진 저 돌은 

미나미 지로 육군 대장이 세운건데 익숙한 이름일거임.

조선 7대 총독으로 온갖 민족말살정책을 핀 그 미나미 지로임. 

참고로 이 양반은 고구려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고구려인들이 세운 '코마 신사'에도 흔적을 남겼는데

'코마 신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쓸게. 


6. 서울 남산에도 있었던 노기 신사.

1925년에 조선총독부가 서울 남산에 커다랗게 조선신궁을 만들었는데

조선신궁에는 태양신이자 덴노가의 시조로 취급받던 아마테라스, 그리고 메이지 덴노를 봉안했기에

당연히 조선신궁 근방에 노기 신사도 세워짐.

당시 노기 신사는 현재 서울 리라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남산원'에 있었음.

조선신궁은 일제 패망 후 일본인들이 스스로 해체해서 없앴지만

노기 신사의 건물들은 놀랍게도 1979년까지도 남아있었다가 화재로 사라짐.

그리고 60년대 후반까지 여기에 러일전쟁 때 전리품이었던 러시아 대포가 하나 있었는데, 현재는 육군사관학교로 옮겨짐.



그래도 여전히 남산원을 돌아다니다보면 노기 신사가 있었던 흔적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현재 화분으로 쓰이는 저 돌은 일본 신사에서 참배 전에 손 씻는 수조였음.

그외에도 석등의 일부나 건물 축대, 박석 같은 게 남아있음. 



여담. 

최근에 밝혀진 연구에 의하면 노기의 조상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왔던 조선인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