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FSM교의 표기를 따라 난쟁이가 아닌 난장이로 표기했다.



(틀고봐라.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

프랑스 제국의 황제이자 근대사 최고의 슈퍼스타, 전술의 천재, 작은 거인, 촌뜨기, 혁신가 기타 등등 죽은지 2021년 기준으로 정확히 200년된 (1821년 5월 5일 사망) 한 남자는 수 많은 수식어를 달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 남자는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아무것도 없는 촌놈에서 오직 능력만으로 프랑스 제국의 황제자리에 올라, 세계사를 주름잡는 전설적인 정복자이자 혁신가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불러온다는 나비효과에 대해 모르는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나폴레옹의 날갯짓은 당대에도 태풍처럼 거대했지만, 훗날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소행성 충돌급이었다.

오늘은 한번 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이 지구를 어떻게 강타했는지, 유럽과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1. 유럽

유럽은 전성기에 비해 다소 쇠퇴하였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활동하던 19세기에는 사실상 유럽 밖은 유럽의 열강들이 겨루는 체스판에 불과하였다.

말하자면 세계의 중심인 유럽에 나폴레옹은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1) 병조림의 발명

병조림의 시작은 아프로 유라시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던 프랑스군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며, 보존성도 좋은 전투식량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프랑스군은 야전용 음식 보존법을 공모하였고, 제과기술자인 니콜라 아페르(Nicola Appert, 1752~1841)가 병조림을 발명함으로써 현대적인 전투식량의 시대가 열렸다.

겨우 병조림 하나가 뭐가 대단하냐 할 수 있는데, 이 병조림이 발전한 것이 영국의 피터 듀란드가 발명한 통조림이며, 현대의 레토르트 식품과 전투식품의 시조가 되었다.

그리고 병조림의 발명은 병력의 효율성을 증대시켰는데, 본래 유럽의 표준 전투식량은 하드택이라 하는 벽돌만큼 단단한 건빵과 염장고기였는데, 하드택은 너무 딱딱하여 도끼로 쪼개먹어야 했고 염장고기는 잘 썩었다. 

따라서 야전의 식사는 고역스러운 전투식량 혹은 번거롭고 위험한 취사의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병조림은 이를 해결해준 것이다.

따라서 공세 종말점은 타국보다 늦춰지게 되었고, 더 빠른 기동전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프랑스는 통조림의 아버지지만 통조림따개의 할아버지는 되지 못했는데, 통조림따개는 약 50년 후 미국에서 남북전쟁에 의해 발명된다. 그 전에는 돌로 내려치거나 단검으로 쑤시는 식으로 통조림을 깠다.


2) 신성 로마 제국의 몰락 

"스스로 신성 로마 제국이라 칭하였고 아직도 칭하고 있는 이 나라는 딱히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볼테르-

1006년을 이어오며 유럽의 중심으로 군림한 신성 로마 제국을 족친 멋진 사나이가 바로 나폴레옹이다.

신성 로마 제국은 반 프랑스 동맹의 일원으로 항전하다 쳐발리고는, 1801년 뤼네빌 조약으로 라인 강 서안의 모든 영토를 포기하였으며, 친 나폴레옹 성향의 제국 내 군소위성국들이 황제를 지지하는 주요 세력인 주교령 및 기사단령을 갈라먹은데다가, 자기 따까리 위성국들을 선제후로 임명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는 영향력을 상실한다.

그리고 1806년 6월, 나폴레옹은 쿨하게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선전포고하겠다 통첩하여 프란츠 2세는 피눈물을 흘리며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했다.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


3) 제 3의 로마 타이틀매치의 시작

로마란 무엇인가? 우리한테는 그냥 콜로세움 있는 도시겠지만 유럽인들한테는 유럽문명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유럽인들은 성경에서 나온 최후의 심판이 오기 전 최후의 제국을 로마라 생각했겠는가?

어쨌든 유럽인들에게는 황제의 타이틀은 오직 로마의 황제만이 자칭할 수 있었으며, 동로마가 멸망하고 로마의 정통성을 인정받은(동로마를 멸망시키고 로마의 계승을 선포한 오스만을 제외하면 말이다.) 유일한(물론 황제 임명권은 교황이 아닌 동로마 황제에게 있었지만 이는 무시하기로 하자. 중요한건 정통성이 아니라 로마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이 멸망함으로써 로마의 황제라는 타이틀은 공석이 되었다.

이에 신성 로마 제국 해체 후,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한 프란츠 2세를 시작으로 좆또 내세울게 없는 영국이나 기타 소국을 제외하고는 로마 황제와 혈연이 있다는 등, 로마의 주요 도시가 있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유럽의 군주들은 죄다 자신들이 로마를 계승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유럽에는 온갖 제국이 난립하게 되었으며, 따지고보면 나치의 제 3제국 드립도 이 신성 로마 제국에서 나온거다. 결론은 나폴레옹이 신성 로마 제국만 안조졌어도 온갖 이상한 제국이 선포될 일이 없었으며, 로마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낙지들도 적어도 3제국 드립은 안 쳤을 것이다.

여담으로 영국은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이유는 영국은 로마랑 연관이 좆또 없기 때문이다. 로마와 영국의 접점은 로마가 런던의 토대가 될 론디니움을 건설한 것 밖에 없다. 그래서 영국은 무굴제국의 황제에 직위하여 황제를 자칭하게 된다.


4) 대륙법의 체계화

본래 대륙법은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중구난방인 법이었으나, 나폴레옹은 체계적인 법전을 성문화할 것을 명하였고, 이 법이 바로 흔히 나폴레옹 법전으로 유명한 프랑스 민법전이다.

이렇게 탄생한 대륙법은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유럽 전역과 한, 중, 일 동아시아 3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용하는 법의 토대가 되었다.


5) 난쟁이의 대명사

작은 사람이 성질이 더럽다는 나폴레옹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폴레옹의 작은 키는 유명하지만 사실 나폴레옹의 키는 작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프랑스의 평균키는 164cm였는데 나폴레옹의 실제 키는 168cm였다.

현대 대한민국과 비교해보면, 현대 대한민국의 평균키가 174cm인데 나폴레옹은 178cm에 해당하는 상당한 장신이었다는 말이다.


(이 새끼 본인은 173이라 주장하는데, 어느 나라의 키가 171cm인 대통령과 같이 찍은 사진에서 굽 존나 높은 구두 신고도 비슷하게 나올 정도라면 이 새끼의 키는 대략 나폴레옹이랑 비슷할 것이다.)


6) 왕정복고

프랑스의 경우, 일단 나폴레옹부터가 공화정이던 프랑스를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장악한 다음 황제 자리에 올랐으며, 실각 후 다시 부르봉 왕조가 통치했으나, 이후 혁명으로 다시 공화정이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강력하여 그의 친척인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투표를 강요하여 황제에 직위한다는 어디에서 본 것 같은 방법으로 다시 제국이 된다.   


7) SI 단위 보편화

원래 유럽은 각 도시의 군주들이 지들이 멋대로 단위를 만들어 징세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여기에 빡친 혁명세력은 새로운 단위를 만들었고 이 단위가 SI 단위이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이 SI 단위를 보편화 시킨 사람은 민주정을 족친 나폴레옹인데, 나폴레옹은 단위계를 통일하고 지적체계를 만들어서 정밀 측량을 실시했음.

그 결과 남들은 대충 눈대충으로 끄적거린 지도 보고 다닐때 유럽은 지금이랑 별반 다를거 없는 지도보고 다녔음.


그 외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기에 여기에 다 적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


2. 북아메리카

어찌보면 가장 큰 수혜를 받은 대륙일 것이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북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은 세계의 정점에 설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1) 미영전쟁

나폴레옹 전쟁으로 똥줄이 타던 영국은 프랑스랑 교역하는 무역선들을 차단했으며, 심지어 미국인과 선박들을 징집하기도 하였다.

이에 빡친 미국은 어차피 나폴레옹 전쟁으로 영국이 신경 못쓸거라 생각하고 복수 겸 아메리카 통일의 꿈을 위해 대영제국에 선전포고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무승부로 양국이 그냥 없던 일로 하기로 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홀로 나폴레옹에 굴복한 유럽 전체와 맞짱뜨는 처지라 미국에 군사력을 투사할 여력이 되지 않았고, 미국은 연방의 소속감이 미약하여 단합되지 않아 홈그라운드 어드벤티지를 재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결국은 딱히 특별한 일은 없어 보이지만, 이 전쟁이 남긴 파급력은 매우 크다. 이는 후술하겠다.


2) 미국과 캐나다의 소속감 확립

본래 미국과 캐나다는 딱히 이렇다할 소속감이 없었다.

미국은 영국이 좆같아서 독립하기는 했다만 그렇다고 영국을 그렇게 싫어하는 것은 아니였으며, 그들에게 연방은 그저 그들의 대표일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어서 주들은 따로 놀았고, 캐나다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캐나다와 미국인은 서로 왕래하며 이웃으로 지내는 경우도 많았는데, 미영전쟁으로 상황이 바뀐다. 

미국과 싸우면서 캐나다인들은 영국이 아닌 캐나다를 고향으로 인식하여 캐나다 독립의 씨앗이 되었다. 

미국은 우선 건국의 핵심세력이자 친 영국 연방주의자가 몰락하였으며 미국이라는 하나의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강력한 중앙집권의 필요성을 실감하게되어 연방정부의 힘은 점차 강해졌으며, 이후 남북전쟁으로 완전한 연방을 결성한다.

여담으로 위에 첨부한 미국 국가도 미영전쟁으로 탄생했다. 

미영전쟁 당시, 볼티모어를 수호하기 위해 건설한 맥헨리 요새를 영국 해군이 포격을 퍼부어 불바다를 만들었으나, 성조기가 걸린 깃대는 건재하여, 여전히 펄럭였다.

이에 큰 감명을 받은 프랜시스 스콧 키는 맥헨리 요새의 방어전이라는 시를 쓰고 여기에 사비로 작곡가를 고용해 음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고, 이 노래는 1931년 3월 1일에 공식적으로 미국의 국가가 된다.


3) 미국의 확장

본래 프랑스는 루이지애나라 불리는 방대한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를 유지할 여력이 안되는 프랑스는 미국에게 루이지애나를 헐값에 파는데, 이는 미국이 사실상 세계의 주인이 되는 계기를 만든다. 


(저 가운데 녹색이 루이지애나이다.)

땅도 땅이지만, 미국이 서부로 진출할 수 있게 되면서 서부 개척시대가 열렸으며, 곧 있을 멕시코 침공에 성공하여 땅의 절반을 삥뜯으면서 미국은 지구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인 북아메리카의 절반을 쳐먹게 된다.

물론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으로, 프랑스는 나름 존중해줘서 그럭저럭 잘 살았지만 얄짤없는 미국인들이 몰려오면서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비극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최후의 저항인 리틀 빅혼 전투)


우선 필자가 소개할 것은 여기까지이다.

비록 7개 밖에 안 적었지만 나폴레옹이 끼친 영향은 여기에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며 지금도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말하자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운석처럼 지구에 꼬라박고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 그 크레이터를 중심으로 문명이 재건되는 격이랄까?

어쨌든 끝까지 봐준 냥붕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평생 이과충으로 살다 이제 막 문과충으로 전향한 무지한 내가 쓴 글이라 틀린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지적해주면 고맙겠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그리고 이제부터 진똘배기들이 나타나서 댓글에 추가해 줄태네 그것도 보는걸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