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하고 바빠지다 보니 연재탭 쓰던 것도 까먹고 있었음 하마터면 작심삼일로 끝날 뻔

책 본문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오늘 소개할 책은 일본 미스터리/추리 소설 작가 우타노 쇼고의 소설이다.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익숙한 이름일텐데,

바로 이걸 쓴 사람이다. 난 아직도 저 왕수비차잡기를 처음 읽었던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몇년 전 우타노 쇼고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이번에 소개하는 책을 구매하면서 두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갈며 복선을 파헤쳐봤지만, 정말 이 작가는 독자들이 상상도 못하던 방향에서 반전을 주는데 너무나 능숙하다. 마치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며 온 사방을 쥐잡듯이 뒤져보았지만 내가 있던 그 자리가 바로 덫이었던 기분이다.
 추리소설이란 분야에선 작가와 독자간의 페어플레이가 매우 중요하다. 작가는 독자에게 반전요소를 추리하기 위해 필요충분한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단서를 얼마나 교묘히, 알아보기 어렵게 숨겨두느냐는 측면에서 추리소설은 양측간의 심리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오죽하면 이런 싸움의 공정한 규칙을 세우기 위해 '녹스의 10계'나 '반 다인의 20칙'같은게 나왔겠는가. 이 점에 비추어보았을 때 이 소설은 기본에 충실한 명작이라 할 만 하다. 범행과 관련된 요소 중 초자연적인 단서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작품의 핵심 반전에 해당되는 모든 복선이 초, 중, 후반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뿌려진다. 그 모든 카드를 쥐고 있음에도 작가의 함정에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기분은 책을 읽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작품의 배경 또한 현실적이다. 현대사회에 진입한 지금의 일본은 과거에 비해 치안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이 작품은 과감히 그 시간을 돌려서 야쿠자가 횡행하던 과거의 일본을 배경으로 선택했다. 야쿠자간의 약물 거래가 빈번했던 시대상을 기준으로 경찰과 사설 탐정이 사건에 서서히 얽혀들어가는 모습은 전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우리 나라가 연상되기에 생생하기 그지 없다. 경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사설탐정의 모습은 흥신소 종류의 직업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지던 과거의 모습을 반영한 결과이다. 이 세밀한 묘사는 모두 복선을 작품 내부에 녹여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의 일부다.
서술 방식 역시 특이하기 그지없다. 작가는 커다란 줄기가 마무리 될 때 마다 작품의 핵심적인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른 장면으로 장면을 전환시킨다. 일견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연출은 독자들에게 무언가 커다란 반전이 이 장면전환에 담겨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든 서로 다른 두 장면을 하나로 합쳐보려 애쓰지만, 억지스러운 장면의 분할이 이미 작가의 의도라는 사실을 깨닫기란 초회독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작품을 끝까지 읽어봤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분할된 각 장면이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한번 읽어보자. 독자의 시선을 나누는 것 자체가 작가의 의도였단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 할 것이다.

 머리 아픈 소설을 싫어한다면 굳이 복선을 하나씩 파헤칠 것 없이 메끄럽게 서술을 따라가도 좋다. 추리소설에 자신이 있어 복선을 열심히 추리해가며 읽는다면 더 좋은 일이다. 그만큼 작품의 마지막 반전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커진다는 의미이니까. 어느모로 즐기던 추리소설의 기본에 충실한 명작이니 부담 없이 선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