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후는 혜제 사후 이후 공신들의 협조에 힘입어 황제를 마음대로 교체하고, 유씨 제후들의 땅을 빼앗으면서 한나라를 여씨 왕조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었음.

근데 막상 권좌에 앉아놓고 뭔가 행보가 이도저도 아니었던거임. 이미 장안에서 살고있거나, 제발로 들어간 놈들이나 죽었지, 그외 지방 제후왕들한텐 별의 별 갑질을 해대면서 막상 죽이지는 못함.

당장 다 죽을거라고 생각했던 유씨들은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여후는 여기서 사람을 잘못 건드림. 누구 말에 넘어갔는지 남월왕 조타를 교역금지로 자극해버린 것.


(인생 조타)


조타로 말할것같으면 진나라 진시황 밑에서 일하던 장수로, 월남(지금의 베트남)으로 원정을 가놓고 진시황이 죽자마자 잽싸게 군대와 점령영토를 먹튀하고 거기서 왕이 된 인물임. 짬밥이나 연륜에서 다른 제후들보다 한참 윗줄이었고, 정치적인 감각이 매우 뛰어났던 사람이었음.


저항할 의지도 안보이던 유방 자식들과 달리 조타는 바로 인근 장사국(북월)을 약탈하면서, 한의 제후이길 부정하고 자신을 남무제라 칭하면서 주변 영토를 미친듯이 병탄하기 시작함. 조타가 다짜고짜 이렇게 나오니까 여후는 막상 어버버하기만 하고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음. 미미한 수준의 원정군만 고집하면서 재정이나 낭비했을 뿐.


유씨들이 여후가 뭔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느끼기 시작하던 타이밍에 유방의 서장자인 유비(그 유비 아님ㅎ)의 아들이자, 제나라 왕 유양의 동생 주허후 유장(그 유장 아님ㅎ)이 여후를 긁어보기로 함. 여후가 어느날 파티를 개최하자 거기 있었던 유장은 자기가 곡 한번 뽑겠다고 일어서더니만,

'여씨 니놈들은 다 죽었다고 복창해라~'라는 내용으로 랩을 한 곡조 지어내서 불렀음.


당연히 여후의 가족 중 한명이 화가 나서 일어나서 따지자 유장은



여후의 눈앞에서 그놈을 베어 죽여버림.


그것도 모자라서 허락없이 일어난 무례한 놈을 법대로 죽였다고 여후에게 비아냥대면서 대놓고 도발을 함.

그리고 여후는 이 자리에서도, 이후로도 차마 유장을 건드리지 못했음. 기록에선 여후가 무슨 준법정신이 투철해서 그랬다고 써놓는데, 그걸 믿냐?

유장을 죽였다가 뒤에 있는 제나라가 빡돌까봐 무서웠던 거. 요컨대 제후들이 진짜 대들것같으면 바짝 쫄아들만큼 내실이 형편없었다는 의미임.


이때 전한은 제국이라고 하면 듣기야 좋지만 항우의 학살에 영혼까지 긁어낸 전시체제의 후유증으로 꼴이 말이 아니었음.

유방이 반란한 제후들을 유별나게 간단히 발라버리는 바람에 유방 자식들은 우리도 개기면 바로 뒤진다ㄷㄷ하면서 쭈그러들어있었고, 한참동안은 여후 쪽도 자기들이 엄청 셀 줄 알았지만 그건 전한 중앙이 존나 세서 그랬던게 아니고, 유방이 이상한 놈이라서 그랬던 거임. 그래보여도 항우 한신 묵돌만 아니면 생선 발라먹듯 가지고놀던 양반이라...


하필 이런 상황을 다 눈치채고있던 조타를 건드렸다가 민낯이 다 드러난 여후는 곧 일어날 반란러쉬를 예감하고 두려움에 떨다가 병에 걸려서 급사해버림.

여후는 자신의 죽음을 일단 숨기라는 유언을 남기지만...


하필 여후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게된 것도 다름아닌 유장이었다.



여후는 유씨들을 제어하기 위해서 강제로 여씨들과 혼인시킨 경우가 많았는데 유장은 웅장한 쥬지로 여씨 아내를 굴복시켜 되려 지가 첩자로 썼던 것이었음;

여씨 아내를 통해 여후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 유장은 다시없는 기회라고 생각하게 됨.


"황제를 맘대로 갈아치운 저것들 여씨를 반역도로 몬대도 누가 뭐라 하겠나? 저놈들이 옹립한 황제 또한 마찬가지로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할 여지는 충분하다. 여씨들과 황제를 전부 죽인다음 빈 자리가 되는 황좌에는 우리 형님을 앉히고, 형님이 계시던 제나라를 내가 대신 왕이 되어서 다스리자!"


유장은 제나라로 몰래 파발을 보내서 형에게 빨리 군사 몰고 이리로 오라고 손을 흔듬. 유장의 제안대로 군사를 일으킨 형 유양은 토벌군으로 파견된 관영과 오히려 손을 잡고, 다른 유씨들까지 끌어들여서 장안을 향해 대대적인 진격을 할 준비에 들어감.


자칭 사직지신 진평과 주발 등은 그제서야 돌아가는 사태를 알고 경악함. 암만봐도 유씨들의 집단봉기가 진압이 될 각은 아니고, 가만히 있다간 숙청될텐데 그렇다고 장안 군대를 쥐고있는 여씨들한테 니들 편 안들겠다고 하면 그것도 명줄 줄이는 선택이긴 똑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던 것임. 일단 유장에게 붙은 진평과 주발은 북군까진 어떻게 탈취를 해냈지만 남군의 여산과 싸워야 할 것 같아지니 무서워서 서로 눈치만 보는 찌질한 모습을 보임.


그 꼴을 본 유장이 답답했던 나머지 장정들을 데리고 여산을 기습. 여산의 부하들은 죄다 쳐죽인다음 도망친 여산도 화장실에 숨은걸 끌어내서 죽여버렸음. 여씨는 저항할 힘을 모두 잃었고, 조나라 왕에게 시집간 여자같은 극히 예외를 제외하고 전부 몰살당하게 됨. 이 와중에 번쾌 아내는 특별히 따로 빠져서 몽둥이질로 죽었는데, 이거에도 웃기는 이유가 있지만 여기선 안알려줌ㅋㅋ



이렇게 유장은 흠잡을 데 없는 활약을 펼쳤지만, 문제는 형인 유양 쪽이 마음이 급하다고 쓸데없는 짓을 한 일에서 나오고 맘.

유양은 유씨 종친을 감금한뒤 협박해서 군사를 강탈했는데, 갇혀있을땐 뭐든 유양이 원하는대로 하겠다고 굽신거리다가 풀려나서 장안에 도착하자마자 '저새끼는 성질머리가 포학해서 반대!'라고 유양이 황제가 되는걸 결사반대한것이었음. 거친 성미의 유양과 유장이 즉위하면 자신들 처우도 걱정이 되고있던 공신들도 거기에 편승하니, 어느새 유양은 왕따당하는 입장이 되어서 황제 자리는 멀어지게 되었고...이유는 본인들만 알겠지만, 차마 내전은 선택하지 못한 유양과 유장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음.


대신 즉위한 한문제는 '여씨 척결은 전부 주발의 공'이라면서 유씨 종친들의 기여도를 폄하했고, 유장과 유양에겐 실질적으로 아무런 포상을 하지 않았음.

너무 분했는지 형제는 몇년 안가서 둘다 요절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