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게시판

https://pgr21.com/freedom/88858






#0. 들어가면서


어제였던가요. 성관계시 상대방의 동의없이 녹음하는 경우 처벌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되었음을 알리는 글이 올라왔었습니다.


https://pgr21.com/freedom/88841?page=2


아래 링크는 제가 기억하는 키워드만을 기반으로 검색한 결과물입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1120133100001


전 한 500플 쯤 넘어갔을 때 댓글을 달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댓글을 달고 피드백을 하려던 때에 자게에 게시글이 사라졌었고,

전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다시 보니 글이 살아났더군요.


해서 일을 마무리 하고 오후 때부터 다시 피드백을 하기 시작했는데 원글이 또 사라졌더군요.


나름 직역 전문가의 입장에서 댓글을 달고 성실하게 피드백을 하려고 했는데 이 쯤 되니 살짝 짜증이 나네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1. 초원복국집 사건


부경지역의 각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에 모여서
'지역감정이 좀 살아나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 와 같은 언사를 하면서
당시 선거운동을 관권으로 지원해야 한다... 식의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게 한 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초원복집 사건입니다.



https://namu.wiki/w/%EC%B4%88%EC%9B%90%EB%B3%B5%EC%A7%91%20%EC%82%AC%EA%B1%B4?from=%EC%B4%88%EC%9B%90%EB%B3%B5%EA%B5%AD%20%EC%82%AC%EA%B1%B4



그런데 이 대화를... 당시 또 다른 대선후보였던 전 현대그룹 회장의 선거캠프가 도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대화는 당시 선거캠프의 기획하에
유수 언론에 제보가 되었었지요.

선거결과는? 오히려 역풍이 불었습니다. 
여당 유력자들이 대놓고 관이 개입한 선거를 모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직선거법상의 처벌은 모두 피해갔습니다.


대신에, 초원복집에다 몰래 도청기를 설치했었던 쪽 사람들은 모두 [주거침입죄]로 처벌받았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인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거든요.
다만, 손님들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려는 의도 하에 영업공간에 들어간 것이라면,
초원복집 업주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여 영업공간에 침입한 것이므로 주거침입죄... 라고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었더랬습니다.

이 추정적 의사....는 지금까지도 주거침입죄에 있어 유력한 판례 중의 하나입니다.



#2. 통신비밀보호법


이 초원복집 사건이 있었던 것은 1992년 11월 경이었습니다.

3당 합당 후에 새로운 법률이 하나 제정됩니다.


1994년 6월, 통신비밀보호법이라는 법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94년 당시, 새롭게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둡니다.


제3조 (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당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제16조 (벌칙)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1.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우편물의 검열, 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거나 그 취득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



뭔가 감이 오십니까? 네 타인간의 대화를 녹취하는 것이 불법화 된 것이 이 때가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92년의 '초원복집 사건' 당시에는 타인 간의 대화를 [도청]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 자체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 서슬퍼렇던 날이 조금씩 무뎌가던 때에도, 끽 해야 [주거침입죄]로만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요.

아예 법을 새로 만든 겁니다. 초원복집 사건 같은 도청이 이루어지면, 아예 7년까지 징역형을 먹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전 주거침입죄는 아무리 징역형을 높게 잡더라도 3년이 상한이었습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이었거든요. (지금도 동일합니다.)


즉, 애시당초 우리 법제하에서는

타인의 대화를 녹음을 하던 도청을 하던 처벌하지 않다가,

94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타인간의 대화를 도청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통신비밀보호법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는 행위, 그리고 이를 누설하는 행위만을 처벌합니다.

[이는 바꿔말하면, 대화 당사자가 녹음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동의가 있든 없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우리 법제 하에서는... 타인의 동의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대화 당사자가 녹음하는 것은 처벌받지 않습니다. 처벌규정이 없거든요.

물론 도청이 아닌 한에야 불법한 행위가 아닌만큼, 대화 당사자가 녹음하는 것은 언제나 합법적입니다.

합법적인 녹음인만큼, 증거자료로 제출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때문에 녹음할 때 상대방의 동의를 요구하는, 다른 국가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고요.



#3. 강 의원의 발의안


그런데... 위 #0에서 링크한 강 의원의 발의안을 보면요.

성관계를 가질 때 몰래 녹음(즉, 상대방의 동의없이 녹음)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

이를 영리목적으로 배포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기사에 의하면, 강 의원은...

[강 의원은 "몰래 녹음한 음성 자료로 상대방을 협박하는 사례가 많다"며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 합니다.


그런데... 강 의원의 문제의식대로라면, 성폭법에 녹음 등의 자료로 협박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규정을 제정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몰래 녹음한 자료로 협박하는 이들이 문제라면, 그 녹음 자료를 가지고 협박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강 의원은 [동의없는 녹음]까지 성폭법으로 처벌하겠다는 법안을 발의한 것이 됩니다.


자... 예를 들어보지요..


갑돌이와 을순이는 어느 날, 클럽에서 눈이 맞아 뜨거운 밤을 보낼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갑돌이는 불안했죠. 때문에 모텔 입실에서부터 다음 날 해장국 한 그릇씩 하고 헤어질 때까지

을순이의 허락없이 모든 과정을 녹음해 뒀습니다. 물론 거사(?) 과정까지 포함해서요.

물론 갑돌이는 '혹시 몰라'서 녹음했을 뿐,

이전까지 일면식도 없었고,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를 을순이를 협박할 의도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 의원 발의안대로라면, 엄연히 갑돌이 역시 처벌대상입니다.

거사(?)과정을 을순이의 허락없이 녹음한 것이거든요. 운이 나쁘다면 3년 까지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되겠군요.


어라? 이거 좀 이상한 것 아닌가요.

막말로 갑돌이가 당시의 녹음파일을 재생하면서 자기위안....을 할 수도 있다고 치죠.

물론 을순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야, 을순이 입장에서는 대단히 불쾌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게 형사처벌을 반드시 해야 하는 필연성이 있는 사안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건가요?



#4. 영상촬영과의 비교


물론, 그렇게 따지자면야 영상촬영과도 같은 맥락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상촬영 과정에서 [얼굴]은 개개인이 비교적 쉽게 가늠할 수 있는 반면에,

[목소리]를 판별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에 있지요.


처음 보는 얼굴이라 하더라도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면서 특정할 수 있고, 목소리 역시 '어디서 들어봤는데'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세상에 비슷한 목소리는 너무 많은데다가... [특정]한 상황에서의 목소리는 일상과 다른 경우도 종종 있는 터라,

목소리만으로 개개인을 판별하기는 극히 어려운 반면, 얼굴은 비교적 쉽게 개개인을 판별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때문에 성관계시 동의받지 않은 영상 내지 사진 촬영은 형사처벌 하는 데 충분한 가치가 있고 의미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유출되기라도 하면, 피해자가 입게 될 피해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목소리는.... 대체 어떻게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을까요.
막말로 전문 성문분석가를 불러서 감정을 의뢰한다고 하더라도,
이게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녹음 음질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동의받지 않은 영상의 촬영을 처벌하는 것과,
동의받지 않은 녹음을 처벌하는 것은 그 궤를 달리합니다.
영상과는 달리, 녹음만으로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특정하기는 대단히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5. 피해자의 특정

때문에, 성관계시... 녹음만으로 처벌하는 것에는 실무적인 어려움도 뒤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갑돌이가 을순이와의 원나잇에서 녹음한 파일을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해보죠.

몇 년 지나 기억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갑돌이가 다른 범죄를 저질렀고, 그 때문에 자신의 핸드폰을 까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쳐 보죠.
어라? 그런데 갑돌이의 핸드폰을 까 보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성의 교성이 담긴 녹음파일이 하나 나온 겁니다.

강 의원 발의안 대로라면 이 녹음파일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된 것이라면, 갑돌이는 당연히 처벌받아야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교성이 과연 피해자의 동의없이 녹음된 것임을 수사기관은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요.
갑돌이가 [아 그거 몇 년 전에 원나잇 할 때 녹음한 건데, 그 때 동의받았어요. 원나잇이라서 상대방이 누군지는 몰라요.] 라고 한다면요??
수사기관은 목소리 하나만을... 그것도 '교성'이라서 평상시에는 들을 일이 없는 녹음파일 하나만으로,
2500만 가까운 대한민국 여성의 목소리를 모두 들어본 끝에 피해자를 특정해야 하는 것일까요?

즉, 강 의원의 발의안은...
[상대방을 특정한 협박]이 있을 경우에는 어떨지 몰라도 말입니다...
[녹음 자체]만으로 처벌하려면, 실무적인 어려움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엉터리 법안인 겁니다.
갑돌이 같은 사례도 처벌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처벌하려구요?

그나마 몰카같은 경우는 카메라의 위치나, 피해자가 카메라가 설치된 정황을 아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어떻게든 인지할 수 있는데요.
몰래 녹음 같은 경우는 그게 안 됩니다. 녹음에 동의했다고 해서, 대화 도중에 피해자가 '이거 다 녹음되고 있는 거지?' 같은
그런 말을 일부러 하지 않는 한은... 이게 몰래 녹음된건지 동의받고 녹음한 것인지를 알 방법 자체가 없어요.

아... 그러면 어차피 몰래 녹음하나 동의받고 녹음하나 어차피 처벌은 어려울텐데, 다를 것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피의자로 경찰서 출석한 경험이 없는 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6. 수사기관의 수사와 증거방법


제 예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수사기관은 성범죄는 유죄추정을 하고 접근합니다.
'좋게 말할 때 인정하시죠' 하는 식입니다. 피의자 입장이 되어보시거나 변호인으로 조사에 동석한 경험이 없는 한에야...
이러한 대접이 얼마만큼의 수모를 주는지를 아시기는 어려울 겁니다.
뭐 좋습니다. 어쨌든, 수사기관이 몰래 녹음을 입증하지 못해 수사는 종결될 수도 있겠죠.
(물론 그 기분더러움은 본인이 감수해야만 하겠지요.)

진짜 문제는... 이전 글에서도 언급되었던... 수사기관과 법원의 성범죄에 있어서의 유죄추정 관행입니다.

강간이든 강제추행이든... 당시에는 즐겁게 밤을 보내놓고서는... 당일 아침에 토라져서는 강간신고를 하는 사례는 종종 발생합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같이 술 마시고 춤춘 건 사실인데,
나 술에 취해서 정신없을 때 모텔로 데리고 가서, 싫다는 데도 나를 강간했다.

단언컨대, 이렇게 와꾸(?)가 맞춰졌을 때 여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습니다.
설마 그렇겠느냐고요? 허허... 네 뭐 직접 경험해보시기 전까진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때문에... 남자 쪽에서는 방어(?)를 위해 당시의 정황을 상대방의 동의 - 좀 더 정확하게는 알리지 않고 - 녹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녹음이 된 자료가 있으면, 남자 입장에서는 그 어렵다는 성범죄 무죄를 받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갑니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해서... [어지간하면 유죄]가 나왔을 상황이, 녹음자료만 있다면 [어지간하면 무죄]가 될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올라가지요.

그런데... 녹음행위만으로 처벌받게 된다면요?
여자 쪽에서 강간죄로 고소하더라도, 남자 쪽의 녹음자료는 위법수집증거가 되어 증거에서 배제될 수도 있겠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준비한 녹음] 자체만으로도 처벌받게 됩니다.
상대방이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전혀 모르더라도, [행여나 상대를 협박할 수도 있다]
정말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누구도 모르고, 상대방의 신원을 모르는 이상 일어날 확률이 극히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말이지요.


#7. 결어

상대방의 동의없이 성관계 정황을 녹음하여 [협박]한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성폭법 내지 형법상의 협박죄로 말이지요.
상대방의 동의없이 성관계 정황을 녹음하여 상대방을 특정할 수 있는 SNS 등지에 업로드 한다면
당연히 [명예훼손]으로 처벌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일반 명예훼손죄로 충분하지 않다면, 특별법으로 형량을 강화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녹음 자체]를 처벌한다는 발상은 정말 무식할 뿐만 아니라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 법이, 녹음 자체를 처벌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긴 게 92년 초원복집 사건부터입니다.
그나마도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도청행위를 처벌하는 것이었을 뿐, 대화 당사자의 녹음을 처벌한 전력이 없습니다. 처벌법이 없었으니까요.
그 이후 30년 가까이, 대화 당사자가 녹음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아 왔습니다.

실제로 입법한다고 쳐도 어떻게 처벌할 지가 미지수인... 그나마 다른 법률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유포, 협박 등)를...
굳이 새로 입법하여 성범죄에 관한 한은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굴러가는 상황에서... 유력한 무죄증거를 박탈하는 법안 자체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저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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