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딘 칼날이었군."

그의 한마디는 천금같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두 자루의 검을 품은 이후로 망설임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복수라는 정당한 분노는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냈고 적들은 칼날 아래 침묵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피어오르는 붉은 꽃망울은 피로 얼룩진 복수의 길을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패배했다.

거침없이 폭주했던 분노는 담담하게 내려치는 일격과 함께 격류에 휩쓸리듯 사라졌다.

비수처럼 예리하게 벼려냈던 감각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당대의 강자들을 무릎 꿇렸던 기술도, 원수를 찌르기 위해 길게 벼려낸 칼날도 어느 하나 그에게 닿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미련 없다는 듯이 돌아보지 않고 무심히 멀어져만 갔다.

 

결국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목숨보다 소중하게 품어왔던 두 자루의 검은 패배의 증거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고,

복수를 품었던 마음은 그보다 더 처참하게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복수에 눈이 멀어 돌아보지 못하는군요."

갑작스레 파고드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조바심을 거두십시오."

흑발의 남자가 바닥에 나뒹굴던 두 자루의 검을 건네왔다.

 

"부러진들 어떻습니까?"

'부러져도 괜찮단다'

언젠가... 자신의 검을 건넸던 그 사람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검을 움켜쥐었다.

 

"이미 멋진 검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멋지게 다시 태어나지 않았느냐?'

검을 움켜쥐고 있는 손이 떨려왔다. 

 

"당신은 이미 길을 찾았습니다."

'너의 길을 찾았구나. 딸아.'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두 자루의 검을 버팀목 삼아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머리카락이 볼썽사납게 흐트러져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아래로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흑발의 남자는 만족한 듯 웃고는 몸을 돌려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소녀는.

아니, 그녀는.

여느 때처럼 검게 칠해진 안경을 고쳐 쓰고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뒤돌아섰다.

그리고 새로운 한 발을 가볍게 내디뎠다. 이번에는 틀리지 않겠다는 듯이.

 

처음으로 돌아간다. 한 자루의 칼날이 되기 위해서.

- 블레이드(Bl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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