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채널

파리의 야경은 환상적이다.

 

  어린 시절, 유럽의 3개국, 독일-프랑스-스위스를 여행한 적이 있다. 장담하건데, 지금 유럽을 갔다면 엄청난 양의 글감과 사진이 남았을 것이다. 그때는 유럽이 어떤 동네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기억이 나는 것은 유럽의 낭만과 유럽의 이상한 분위기이다.

  유럽은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대중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직접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하다.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나의 지역일 뿐. 그런 만큼 나 역시 눈앞에서 느낀 기억들도 다양하다. 그 예시 중 하나가 루브르에서의 기억과 노트르담 앞 광장에서의 기억이다.

  노트르담은 매우 인상적인 곳이었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본 ‘정통’ 가톨릭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정통’ 계급사회도 보였다. 경찰이 한 사람에게(아마 노숙자였을 것이다.) 양동이로 물을 쏟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것을 보기에는 노트르담이 너무도 웅장했다.

  루브르 역시 인상적인 곳이었다. 인상파를 제대로 즐기려 오르세를 찾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루브르의 온기와 분위기는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곳의 구석에서 쓰러져 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독일과 스위스는 그나마 사전 조사를 한 지역이었고, 특히 독일의 업적은 최근 제대로 조사해보면서도 기반이 되었다. 라인 강의 기적으로 하여금, 구 시스템을 버리고 진보를 이룬, 그것이 내가 가진 도이칠란트의 이미지이다.

 

  인천공항을 갔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듯 보인다. 특히 해외로 나가려는 그 행렬은 정말 장대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을 위해 짐을 옮기고 비행기에 올랐다. 나의 목적이라 하면 엄밀히 말해 ‘유럽의 새로운 것들 보기’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충실히 달성했다.

  파리는 역시 자유와 낭만의 도시였다. 파리에 체류한 1주일 정도 기간은 관광객들에게 ‘광’을 보기에는 충분하지만, ‘암’을 느끼기에는 당연히도 부족하다. 그래도 자유로운 파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많은 것들을 보여 주었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나름대로 암을 느꼈다. 아무래도 넓은 경험이 넓은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그 경험은 프랑스 경찰의 물 양동이와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경찰이 한 사람에게 양동이로 물을 부은 것이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러고 보니’ 왜인지 그들 옆을 지나며 물방울을 맞은 듯 느껴진다.

  루브르 박물관의 증언은 조금 더 피부에 와 닿았다. 거장들의 어마어마한 그림들 구석에서 존 기억은 나에게 남아있다. 그리고는 제지했단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한 어마어마한 작품들 옆에서 조는 것은 격이 떨어지는 일이기는 하니까. 그래도 모나리자와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그럴듯해 보였다.

  독일은 프랑스만큼이나 기대에 부응해 주었다. 디즈니의 성과 프랑크푸르트의 고딕 성당은 그 주변의 모습들과 어울려 시너지를 일으켰다. 스위스가 자연과 어울린 곳이라면(융프라우 주변 지역의 한 놀이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논 것을 제외하고), 독일은 사람과 사람이 어울린 곳 이었다(슈반가우의 숲 속 노이슈반슈타인의 독특한 모습을 제외하면). 특히 프랑크푸르트는 베를린 못지않은 대도시인 만큼, 다양한 모습들이 보였다. 

 

  그러한 기억들로부터 한참 떨어져, 코로나의 족쇄를 찬 지금, 유럽에 대한 식견은 아마도 그때보다는 나을 것이다. 추악한 탐욕의 역사와 탐욕이 빚어낸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현대 유럽에 대한 선망을 만들어 낸 것으로 나는 결론지었다. 그리고는 베를린의 유학생 부부가 겪은 일을 보았다. 인종차별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결과이다. 나 역시 그렇게 결론지었고, 몇 가지 내 생각을 보태었다. 그것은 코로나가 침범한 자신의 세상과 이익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 방어 체계라고. 비록 뉴스에서는 ‘황인종vs위대한 아리아인’으로 다루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인 듯 보인다.

  노트르담 앞 물세례를 보자. 경찰은 조국 프랑스, 작게는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행동구역에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행위였다. 그는 이로 하여금 애국심, 자부심, 책임감, 그리고 보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위한 이익 아닐까.

  독일은 잠시 후에 잊기는 했지만, 수많은 신문의 1면을 그 사건으로 채웠다. 아무리 전체주의의 결과를 뼈저리게 느낀 독일이라 하더라도, 그들 역시 사람일 것이다. 아마도. 이 사례는 독일에서 황인종을 코로나로 보고 몰아내려 한 사례이지만, 나중에는 서로를 코로나로 보고 몰아내려 하리라. 아마도.

 

  투쟁은 끝이 없고, 자신과의 싸움이 고독해지면, 누군가를 끌어들이리라. 파리의 야경은 환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