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쳐버린 것이오?"


가르마니크가 코롤료프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정작 욕을 먹은 코롤료프의 얼굴은 진지하고 경직되어 있었지만.


"전 제정신입니다. 그럼, 사령관님께 묻겠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소련에게 붙는 것 말고 희망이 있냐는 말입니다."


가르마니크는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으나, 코롤료프의 말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그를 몰아세울 수는 없었다. 그 이유야 당연히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현재 살아남은 세력 중에서 노동자 연합이 제일 위기에 놓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하아... 그래, 그래서 그 결론이 소련에 붙자는건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니 면도를 하지 못해 수북해진 수염이 부드럽게 만져졌다. 가르마니크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코롤료프를 바라보자 침묵을 지키던 티호노프가 나섰다. 그도 마르크스주의자들 마냥 그저 소련이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그가 보기에도 이 이상 고집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티호노프, 지금 상황을 보게. 오른쪽엔 소련이, 아래엔 민주공화국, 거기에 왼쪽에는 종교의 총본산인 유럽연합까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우리가 이 모두를 적대하고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설령 바다라도 있으면 모를까 우리에겐 항구조차 없네. 소련의 제안을 거부하면 우린 말라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거지."


가르마니크는 티호노프를 째려봤으나, 그 역시 평소와 달리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정말 벼랑 끝에 몰렸다는 증명이 아닐까. 결국 가르마니크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유일한 후원자였던 북해연방이 사라진 이상, 홀로 이 험난한 세상을 이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니.


"자네들의 의견을 잘 들었네. 일단 나가보게."


그의 명령에 코롤료프는 선택을 잘 하라며 당당하게 뒤돌아 나갔고, 티호노프는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코롤료프를 따라 나갔다. 집무실에 혼자 남게 된 그는 한동안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수십 초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위의 검은색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혹시 몰라 개통되어 있었던 소러시아SSR 사령부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통화였는데, 원래라면 그쪽 사령관인 세묜 티모셴코와 연결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다른 이가 받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방이 연결되었고, 가르마니크는 인사와 잡담 같은 것들은 죄 집어치운 뒤에 즉시 목적을 말했다.


"항복하겠소."


상대방 쪽에선 몇초간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으나, 그는 그것이 당황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상대방은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게오르기_주코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