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섯 살 때였어.
할머니댁 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었거든.
놀다보니 윗마을 가는 길에 서있던 장승이 사라졌더라고.
어릴 때 장승이 너무 무서워서 장승너머 함부로 가질 못했었거든.
그래서 장승도 없어졌겠다! 원래 장승이 있던 자리에서 기웃거리며 놀았어.

그렇게 아무생각없이 놀던 중, 멀리 논쪽에서 사촌누나가 내 이름을 부르더라고.
나는 분명히 사촌누나와 형을 희미하게 보이지만 확인했고, 신난 마음에 누나와 형들이 있는 논으로 가려고 했지.
근데 그 논으로 가려면 윗마을로 가야했거든. 그래서 난 길따라 윗마을로 가려했어.
그런데 그 길 쪽에 버려진 작은 창고가 있었고, 윗마을로 가려면 거길 지나쳐야했어.
그 창고도 참 무서운게 되게 낡고 덩굴로 덮혀있어 스산하기 그지 없었거든.
여튼 나는 신나게 달려가다 창고를 바로 정면에서 마주쳤는데, 그 앞에 어른 정도 되보이는 흰 물체가 서있었어.
그 물체는 정말 가만히 서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더라고.
그걸 인식하니까 정말 사방이 조용했어. 바람도 안 불었고, 그 흔한 동물들 짖는 소리, 아무 것도 안들렸어.
정말 적막함 그 자체였지. 그리고 든 생각은 단 하나였어.

아, 도망쳐야 한다. 여기 계속 있으면 나 죽겠구나.
근데 몸이 안움직이더라고. 발을 때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발은 안 때어지고, 뭔가 몸은 점점 그 물체랑 가까워지는 것 같고.
그러다 어느 순간, 발이 딱 때지더라. 나는 발이 떨어지자마자 진짜 뒤도 안돌아보고 그 자리에서 달아났어.
근데 정말 신기한 게 뭔 줄 알아?
그날 사촌누나와 형은 할머니댁에 놀러오지도 않았고, 내가 봤던 곳은 논 한가운데라 사람이 유유자적 걸어오기도 힘든 곳이었어.
참, 난 대체 누굴본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