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만 대통령은 자신에게 온 한 청년의 편지를 읽어나갔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그는 편지의 마지막 내용을 읽은 뒤 혀를 차며 말했다.
 "망할 빨갱이 놈들..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근로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하고, 매주 일요일마다 쉬게 해달라는게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니.. 참 이상적이고 순수해서 현실을 잘 모르는 친구일세."
 그러면서 그는 의자를 돌려 옆에 서 있던 국정원장에게 말했다.
 "이 빨갱이 놈 조사해봤어? 건질만한건?"
 "여공인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외의 가족은 없습니다. 또, 매일 일이 끝나고 자주 가던 상가에 있는 사무실이 있는데, 그 사무실을 운영하는 사람이.. 정우혁 전 대구대학교 교수입니다."
 "정우혁이라면.. 전공투 사태때 전공투 지지하는 성명문 냈다가 교수직에서 잘린 그 정우혁이지?"
 "그렇습니다."
 "그 빨갱이가 거기서 선동을 하고 있었구만.. 죽일 놈.."
 "어떻게 할까요?"
 양진만 대통령은 고민을 하더니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국정원에 지금 정소월 있지? 지금 바로 준비시켜. 첫 임무가 내려졌다고."
 
 편지가 청와대로 간 지 며칠이 지났지만 어떤 소식도 없자, 나는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모으지도 못한 돈은 떨어져갔고, 나는 노조설립시도자라는 낙인이 찍혀 취직을 할 수도 없었다.
 동생은 나를 위로하면서 애써 괜찮다고 말했지만, 매일 밤마다 몰래 훌쩍이며 우는 소리에 나는 크나큰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한동안 가지 않던 사무실로 발을 옮겼다. 무언가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그저 누군가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했다.
 사무실의 문은 오늘 이상하게도 열려있었다. 나는 문을 벌컥 열고 선생님을 부르려했으나,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찾던 선생님은 칠판 아래에서 피를 흘려가고 있었고, 그 앞에 한 여자가 총을 쥔 채로 떨고 있었다.
 그 순간, 나에게 나온 말은 내 자신도 놀라게 할 정도의 말이였다.
 "씨X."
 이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울분을 토해내듯 나를 보고 당황하고 있던 여자에게 달려가 넘어뜨리고 그대로 그녀 위에 타고 올라가 그녀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왜애애!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냐고.. 도대체 왜! 나는..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바보처럼 눈물이 흘렀다. 참아보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결국 나는 내가 따르던 스승을 살해한 여자 위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끅끅 소리까지 내며, 지금까지 참아온 모든 울분을 터뜨리듯,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