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 대학 합격한 거. 합격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축하주네..?"
 갑작스러운 꽃다발 선물에 김명희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정소월은 생전 눈길도 주지 않던 꽃집에 들러 산 꽃다발을 그녀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아줌마가 요즘 좀 바빠서.. 축하도 못해줘서 미안해?"
 그러자 그녀는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꽃다발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정소월은 그녀의 당황한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축하해. 공장도 다니고 학교 공부도 하는게 힘들었을텐데.. 당당하게 명문 개성대학교에도 합격하고.. 아마 오빠가 봤다면.."
 정소월은 거기까지 말하고 아차 싶은 마음에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예상 외로 밝았다.
 "오빠가 봤다면.. 아마 뛸 듯이 기뻐하셨을껄요?"
 정소월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안심하며 꺼내려고 한 이야기를 꺼냈다.
 ".. 아줌마가 어디 멀리 떠날 곳이 있거든? 그래서 너와는.. 당분간은 못 만날 것 같아서."
 김명희가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정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 다시 대공분실로 끌려가는건 아니니깐..그냥.. 만날 사람이 있어."
 "네.. 아줌마.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나면 이 꽃다발 다시 주시면 안될까요? 기념하는 의미로.."
 "그래, 얼마든지."
 그렇게 그 둘은 따뜻한 포옹을 나눈 채 헤어졌다.김명희는 다시 개성대학교로, 정소월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새하얗게 눈이 덮힌 한 시골 마을에, 한 여성이 낡고 작은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한 집만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녀가 걷는 길에는 발자국이 남았고, 푸석거리는 눈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문 앞에서 가볍게 노크를 했다. 이윽고 한 남자가 문을 열었고, 이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야, 정소월. 오랜만이다, 동생아."

 장석현은 커피를 정소월에게 건내며 말했다.
 "누나, 참 빨리도 찾았네? 이 나라 경찰도 못 찾는 날 누나가 찾을 줄은.."
 "너, 몇 년 전에 여공 돈 뺏으려다가 얻어맞은적 있지?"
 그러자 장석현이 놀라며 말했다.
 "설마.. 그때..?"
 "너는 할게 없어서 가난한 여공 월급을 빼앗으려고 하냐?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인마."
 그러면서 그녀가 그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하자, 그는 멋쩍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땐 나도 사정이 궁했으니깐.. 나도 누나처럼 쿠데타 이후에 그냥 도망쳐 나온거라, 어디 묵을 곳이 있나.. 돌아다니다가 돈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정소월은 그의 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평범하게 사는 것 같아서. 설마 이 집도 훔친건 아니지?"
 이번엔 장석현이 정소월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고, 그녀도 깔깔 웃으며 둘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짐은 풀어, 누나. 여기가 좀 좁긴 해도 두 명 사는데는 전혀 지장 없으니깐."
 그녀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일어나 얼마 되지 않는 가벼운 짐을 들어 방으로 들어가려했다.
 그 때, 그녀의 발이 갑작스럽게 멈췄다.
 "왜 그래 누나?"
 그러자 정소월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큰 웃음과, 눈에 맺힌 약간의 눈물과 함께.
 "아.. 그냥.. 이제 가족이 모두 모였구나.. 싶어서."
 장석현은 말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의 가슴까지 밖에 오지 않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정소월도 자신보다 머리가 두 개는 더 있는 장석현을 끌어안으며 추운 겨울, 서로의 체온을 나눴다.
 그 해의 겨울은 사상 최악의 추위로 기록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둘에게는 예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