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섭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바라보며, 정하섭은 공허한 눈으로 연기를 뱉어냈다.
 밤은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거센 바람이 불었다.
 정하섭은 담배꽁초를 신경질적으로 버린 뒤 자신의 앞에 있는 두꺼운 철문을 열었다.
 철문이 열리자마자 있는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실에선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울렸다.
 천장에 두 손이 묶인 여자가 울음이 섞인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여자의 앞에 선 두 남자는 여자에게 물을 뿌리고, 곤봉으로 때리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정하섭이 들어오자, 두 남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경례를 붙였다. 정하섭이 나가라는 신호를 보내자 두 남자는 조용히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갔다.
 정하섭은 의자에 앉아 천장에 두 손이 묶인 여자를 바라봤다. 그 여자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의 몸 곳곳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정하섭은 가까스로 분노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잘도 나를 속였더군. 지난 몇년 간,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로.. 그게 목적이였나? 나와 결혼해서 날 암살하는게?"
 여자가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소월.. 소월이는.."
 "그 이름을 꺼내지도 마. 당신이 엄마야? 당신이 그 애한테 엄마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당신은.. 당신은.. 날 죽이려고 했어. 소월이의 아빠인 나를!"
 정하섭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 사람이였나? 황가의 개가 되어서 인민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우리의 의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지금껏 나를 뻔뻔하게도 속여온거야? 나를 사랑하는척을 하면서..?"
 "진심이에요.. 사랑한 건."
 그녀가 울음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정하섭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거칠게 잡고 말했다.
 "그럼 증명해 봐."

 "아이와 산모 모두 건강합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의사가 친절한 태도로 말하자, 정하섭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하섭은 밝은 표정으로 병실로 다가갔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병실의 문을 열었다.
 병실 침대에선 아이를 안고 있는 정하섭의 아내가 슬픈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있었다.
 정하섭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가 말한대로, 아이는 고아원에 보낼거야. 아이에겐 사실을 말 할거고, 너희 엄마는 내 손에 죽었다고 말이야."
 아내는 두려움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아이를 꽉 안았다. 아이는 정하섭의 뒤에 있던 한 남자가 빼앗아들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다른 두 남자는 아내의 두 팔을 잡고 병원 밖으로 끌고나갔다.

 병원 밖의 인적이 드문 산에 있는 한 나무에 그녀를 묶었다. 두 남자는 정하섭에게 경례를 붙인 뒤 떠났고, 정하섭은 권총을 손에 쥐어 그녀를 향해 조준했다.
 그녀는 나무에 묶인 채 울먹이며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제가 잘못했지만.. 소월이는.. 엄마도 없이.."
 정하섭은 미동 없이 총구를 아내에게 향한 채 말했다.
 "소월이는 내가 잘 키워. 어차피, 당신은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게 아니였나?"
 "아뇨, 처음에는.. 말씀하신대로 명령 때문이였어요, 그런데.. 당신이 정말 좋아졌어요. 당신의 모든 모습이 그냥.. 모두 좋아졌어요.. 그래서.. 그래서 결혼한거에요. 명령 때문이 아니라."
 정하섭은 움찔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곤 그녀에게 차갑게 말했다.
 "유언은 들어주지. 말 해."
 그녀는 체념한 듯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데려가신 아이의 이름은.. 석현으로.. 지어주시겠어요?"
 정하섭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약속하지."
 그러곤 미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녀가 아닌, 하늘 방향으로 총구를 올린 채.
 죽음을 각오하며 눈을 감은 그녀가 놀라며 서서히 눈을 뜨자,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묶은 밧줄을 자르며 말했다.
 "살아. 어떻게든 살아가. 당신은 이제 죽은 사람이 되었고, 난 이제 당신이 어떻게 살든 신경쓰지 않을테니깐."
 그리고 그는 미련 없이 뒤로 돌아 산을 내려갔다. 그의 뒤에는 정하섭의 아내가 떠나가는 그를 말 없이 지켜봤다.

 "위원장님, 처리하셨습니까?"
 차에 올라타자 대원이 정하섭에게 질문을 던졌다.
 "머리에 한 발 박아주고 왔네. 출발하지."
 정하섭의 답변을 들은 대원은 자동차의 엑셀을 밟았다. 낡은 차에선 불쾌한 소리가 들렸지만, 정하섭은 신경쓰지 않은 채 창 밖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계속 생각했다.
 차를 운전하던 대원은 그의 모습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지만,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라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운전하는 것을 택했다.


 ㅍㅇ) 뒷 내용은 아이리스님께 맡기겠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