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은 프로이센 왕국에 있어 재앙과도 같은 시기였습니다.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국가를 물려받은 하인리히 4세는 불행히도 선천적인 재능도, 후천적인 배움도 없었습니다. 평온한 시기였다면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낡은 체제의 모순점과 폐쇄적인 관료제 속 부패가 국가를 안에서부터 조금씩 침식해가는 사이 전프로이센 노동자연맹과 개신교총연합회 등의 궐기까지, 안팎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협받는 시기였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인리히 4세는 아주 불행히도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거죠.


정부의 권력이 흔들리는 이 중요한 시기에서 하인리히 4세의 결정 대부분은 좋지 못한 결과만을 초래했습니다. 국방군은 신성군단의 테러에 가까운 행위들을 막지 못했으며, 최고사령부는 전략적 국토개입 및 집행병참국과 갈라서며 그 위상과 실권 모두 확연히 약해졌습니다. 급기야 전프로이센 노동자연맹이 뒤에서 조종한 단치히 자치 사태에서 단치히 지역 경비대와, 궁극적으로, 단치히 지역 자체의 체제 이탈을 막지 못하며 왕국의 붕괴는 가속되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왕국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하인리히 4세에게는 승리가 필요했습니다. 어쩌면 "늑대 사냥" 작전은 하인리히 4세가 낼 수 있었던 최선의 작전이었을지 모릅니다. 적을 최소화하고 동맹을 극대화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방침에 따라, 쉴드와 신성군단을 끌어들였습니다. 전프로이센 노동자연맹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바로 단치히에 자리잡은 총본부와 약간의 독립된 어젠다를 가지고 있는 메멜 지역본부였습니다.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메멜 지역본부만을 공략대상으로 삼아 수 배의 무력으로 신속하게 제압한다. 썩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죠. 하지만 행운의 여신이 하인리히 4세를 완전히 버린 것이었을까요? 빌헬름 요들과 그 일당은 계획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본거지를 급습했지만 거기엔 이미 지도부가 철수하고 남긴 아무런 가치 없는 문서들만이 있었습니다.


이제 왕국에서 하인리히 4세의 통치를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신민은 많지 않습니다. 수도 쾨니히스베르크의 거리에서도 불손한 수군거림이 흔히 들립니다. 국가의회에는 빈자리가 더 많습니다. 정부의 권위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아마 각 지역 정부는 이제 중앙의 통제를 따르려 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하인리히 4세가 이끄는 정부의 말은 말입니다.


하인리히 4세가 즉위했을 때 그가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선조들이 일군 이 위대한 왕국이 자신의 대에서 무너지는 꼴은 보지 않겠다고. 지금, 전 왕국이 그의 부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인리히 4세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뿐입니다. 


하인리히 4세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효과:

쾨니히스베르크 비상행정부가 붕괴했습니다. 프로이센 내전 이벤트가 페이즈 2로 이행합니다.

정권 교체: 집권 세력이 쾨니히스베르크 비상행정부 에서 프로이센 구국위원회 로 변경되었습니다.

프로이센 왕국 측은 이제 프로이센 과도정부 로 불릴 것입니다.

단치히 자유시 측은 이제 단치히 사회주의 자치공화국 으로 불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