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바는 발트 대혼돈 당시 독일인들의 진격에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도시로, 에스토니아 민중들에게 있어 나르바는 투쟁과 자유의 상징이었습니다. 나르바 도심 중심, 시계탑 위에 있는 종은 수백 년 전부터 시간을 알리는 기능을 했으며, 도시가 점점 커지고 타종의 필요성이 줄어든 최근까지도 꾸준히 울리며 도시를 대표하는 것들 중 하나였죠. 하지만 그 종소리는 몇 달 전부터 멈췄습니다. 독일인들이 세운 발트 비상행정부가 나르바를 접수한 이후, 시계탑 역시 독일인 행정부의 관할 하에 들어갔고, 이들은 시계탑의 타종은 현재 아무런 실용적인 기능도 없다며 현지인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중단했습니다. 이렇게 나르바의 태동부터 함께해 온 종소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이내 이는 부서져 버린 에스토니아 주권의 꿈과 동일시되었습니다.


 나르바 점령 몇 주 후, 한 에스토니아 민족주의자가 나르바 도심 한가운데에서 독일 헌병대와 추격전을 벌이다 그 오래된 시계탑 건물에서 포위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급하게 계단을 올라갔지만 시계탑 위에는 종뿐, 황급히 뒤의 문에 판자를 걸어 막았지만 이는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뿐, 결국 추격을 뿌리칠 수는 없었습니다.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커졌고, 언제 마지막으로 교체됐는지 모를 나무 문은 곧 부서질 것이었습니다. 최후의 순간에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이제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는 갑자기 있는 힘껏 그 큰 종을 쳤습니다. 때 아닌 종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시계탑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때 문이 결국 부서졌습니다. 그 민족주의자는 "우리에게서 종소리를 뺏지는 못하리라!"고 크게 외쳤고, 수 초 후 그는 총알이 다섯 발 박힌 채로 시계탑에서 떨어져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시 한가운데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그 뒤로, 나르바 중앙 시계탑의 종은 "자유의 종"이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에스토니아 민족운동에 대한 한 노래에는 "나르바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라는 가사도 붙었습니다. 그것을 독일인들도 알았는지, 나르바 중앙 시계탑 앞에는 항상 독일인 경비 두 명이 지키고 있었고, 독일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이 점점 사그라들자 다시 이 종이 울릴 날은 기약할 수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동에 따라 발트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이센이 북해와의 전쟁에서 치명적인 일격을 맞자 리가의 독일인 행정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마침 시의적절하게 장비 부족에 시달리던 에스토니아 재건연맹에게 외부의 고마운 지원이 들어왔고, 나르바 경찰대에 에스토니아 민족주의자들이 성공적으로 침투하며 재건연맹은 <천둥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독일인 경찰들이 교대하는 시간에 맞춰 잠입한 에스토니아 민족주의자들이 이들을 습격했고, 도시 외곽에서부터 무장한 수천 명의 재건연맹 조직원들이 동시에 강습해 오자 수적으로 열세인 독일인들은 도시를 버리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건연맹 조직원들은 당당하게 도시에 입성했고, 나르바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과 함께 재건연맹의 지도자 Tiitus Rummo는 시계탑 계단을 올라가 종을 크게 한 번 울렸습니다.


 날씨는 화창하고 시각은 해가 중천에 뜬 오후 한 시, 분명 나르바는 매서운 추위가 불어닥치는 한겨울이었지만,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시민들을 비췄습니다.




효과:

(발트 비상행정부) 안정도 -3, 6시간당 안정도 변동치 -0.5

(에스토니아 재건연맹) 연합 내 영향력 +10, 연합 충성도 +15

(발트 연합) 단결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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