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평





개인적으로 섬광의 하사웨이라는 원작 소설 자체의 의의는… “너희들이 이런데도 우주세기를 좋아할 수 있냐”라는 토미노께서 건담 팬덤에 내리신 일종의 시련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끔찍하고 비극적인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의 운명 덕분인가


아직 비극의 실체가 끄트머리만 슬쩍 보이는데도 작품의 분위기는 더할나위없이 서늘하다. 날이 바짝 서있는 대사, 화려한 영상미 사이에 엿보이는 관조적인 분위기, 내면적으로 끊임없이 미혹에 흔들리는 하사웨이의 독백 등, 모든 것이 관객을 베어버릴 듯이 서늘하다


영상은 선라이즈의 총력을 투입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만큼 더 이상의 퀄리티라는 게 나올 수 있을지 의문스러움. 모빌수트 전투씬이 전부 야간이라 화면 가독성이 다소 떨어지니 약간 밝게 하고 보는 걸 추천. 그걸 감안해도 인간형 병기가 대기권 내에서 싸우는 모습을 묘사한 매체로는 더 이상의 뭔가를 바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임


스토리는 아직 초입이라 간단한 인물 설명만 곁들인 정도고, 원래 하사웨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가 설명되어야 할 파트인데 이를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파트로 떠넘겼다. 다행히 이 작품은 원작 소설이 존재하며 왜 저러는지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나오니까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은 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 파트에서도 생략할 가능성이 있음.


역샤를 안 보면 작품 이해가 안된다. 반드시 보자. 


총평은 이게 진짜 오랜 세월 묵혀둔 보람이 있는 퀄리티로, 간만에 건담이라고 할 만한 게 나온 느낌이다. 건담 팬이라면 안보는 것 자체로 손해고, 성인 관객을 위해 맞춘 눈높이로 어른도 충분히 즐길만한 건담의 새로운 기준이라 할 수 있다


토미노 특유의 뜬구름잡는 대사(감독은 토미노가 아니지만 원작이 토미노의 소설이므로 대사들도 거의 온전히 옮겨왔음. 심지어 토미노가 감상 후 정곡을 찔린듯 PD에게 너 원리주의자임? 하고 물어봤을 정도로 토미노에게 자문 한 마디 안 구했음에도 그 의도를 전부 구석구석 재현한 정도)는 넷플릭스 자막으로 많이 순화되어 알아들을만 하다. 물론 관행상 반다이에서 직접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조금 어려우니 한 번 감상으로는 부족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