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뭔가 삘받쳐서 한 두시간 동안 쓴 글이다


탈고 아무것도 안하고 걍 손가는대로 썼음


읽고 감상좀


















 그것은 어느 여름날 심야에 있었던 만남이었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을 피하고 싶었던 탓에, 운동은 늦은 밤에 이르러서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낡은 자전거를 끌고, 억지로 무거운 몸도 끌고, 무디어져 가는 마음도 끌고 도로에 올라섰다. 

 

 심야의 자전거도로란 역시 한적하게 마련이다. 가끔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이 보이지만, 그마저도 자정이 가까워져 올수록 드물어진다. 뒤따라오는 사람도 어느샌가 없어져, 보이는 것은 그저 끝없이 길 뿐인 고독한 라이딩이 되고 말았다.

 

 자전거도로 또한 인구가 많이 들어오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있게 마련이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결국엔 도시의 연장선인 것이다. 인구가 적은 곳은 불편하고, 인구가 많은 곳은 편리한 것이 일단 도시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따라서 이 도로 또한, 어느 시점을 넘어가 도시 외곽으로 나아갈수록 가로등과 휴식시설이 드물어지기 시작한다.

 

 거의 자정이 다 되었을 무렵, 가로등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렇게 심야에 여기까지 나와본 적이 없어서, 가로등이 없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의 전방 라이트를 확인해본다. LED로 잔여 배터리량을 표시해주는 기능이 있는데, 충전을 똑바로 해두지 않아서 그런지 금방이라도 꺼질 듯 한 칸에서 깜박거린다. 이건 실수다. 야단났다.

 

 결국 라이트가 완전히 꺼진다. 그와 동시에 시야는 완전히 어둠 속에 잠기게 되었다. 다행히 약간의 달빛이 있어서 길을 식별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그렇게 밤눈이 밝다고는 할 수 없는 시력의 상태를 감안하면 대략 2미터 앞은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와 동시에, 전력을 다해 페달을 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싸늘한 오한이 올라왔다. 손이 미묘하게 떨리고, 바람을 가르는 몸 여기저기에서 이상한 감촉이 느껴진다. 특히 종아리 부분에서 분명 느껴지지 않아야 할, 실체가 있는 감촉이 느껴진다. 

 

 이 감촉이 스멀스멀 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허벅다리, 하복부, 옆구리, 등을 거쳐 목 뒤에서까지 느껴진다.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그저 달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확히는 다른 행동을 취한다는 선택지 자체를 떠올릴 수 없다. 멈추면 잡힌다. 무엇에? 아니, 이미 잡힌 것 아닐까? 

 

 지금 목덜미를 쓰다듬는 이것에, 이미 사로잡혀버린 것은 아닐까?

 

 가슴이 죄어온다. 불안과 공포가 심장을 움켜쥔 것만 같다. 이것이 마음만 먹으면, 심장을 당장이라도 쥐어짤 수 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아니, 그 이전에 이것에 “마음”은 있는 것인가. 정체불명인 것은 그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마음을 상정해서는 안 된다. 

 

 괴물에게 마음을 상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반갑습니다.”

 

 점잖은 목소리의 인사말이었다. 바로 왼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자, 그곳에는 하얀 것이 있었다. 

 

 “놀라셨나요? 이거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하얀 것은, 달빛을 반사하며 하얗게 빛나는 해골이었다. 아니, 달빛을 반사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달빛만으로 빛나기에는 지나치게 밝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하얀 것은 표정이 없는 얼굴치고는 꽤나 친근한 표정으로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그것을 유심히 살펴본다. 깨끗하게 하얗지만 미묘하게 디테일이 있는 해골이다. 상한 부분이 군데군데 보이지만, 그렇다고 큰 사고를 당해 처참한 몰골이라 칭할 정도의 손상이 있는 그런 유골처럼은 모이지 않았다. 그런 하얀 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동물을 타고 달리고 있다. 다리는 너무나 빨리 움직여서 세기 어렵지만 대략 9개, 그 중 하나는 목덜미에 붙어 있고, 흐리멍덩한 색깔의 회색 털은 군데군데 빠져 있다. 쥐를 닮은 동물의 머리 오른쪽에는 안와가 두 개나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텅 비어 있다. 앞을 보고 달리는 동물의 왼쪽을 볼 방법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생물의 왼쪽 머리에 있는 안와의 개수를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해골?”

 

 얼빠진 질문이다. 그런 질문에, 하얀 것은 환하게 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세상에!”, 하고 감탄했다. 물론 표정을 지었다는 것은 개인적인 착각일 것이다.

 

 “하얀 것이라고 합니다. 해골이라고 부르셔도 좋지만, 아마 하얀 것이라고 부르시게 될 겁니다.”

 

 하얀 것은 그렇게 말하고 빙글빙글 웃었다(앞으로 하얀 것의 표정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착각 운운하는 묘사를 생략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린 후, 하얀 것은 붙임성있는 말투로 질문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어둠 속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려운 질문이었다. 약간의 침묵 후에 대답했다.

 

 “무엇이든 있지 않을까.”

 

 “그것은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인가요?”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것 또한 그럴듯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답니다.”

 

 하얀 것은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 사람은 항상 멋들어진 옷차림에, 세련되게 다듬은 머리칼, 신사적이고 정중한 몸가짐으로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사람이었지요. 그래도 20대 시절에는 나름 혈기라는 게 있어서 꽤나 방종한 삶을 살았지만, 서른 즈음부터는 철도 들고 진중한 맛도 생기면서 나름 중후한 면모까지 생겼답니다. 정말 인간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인기있고 사랑받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평생의 반려가 될 사람이 나타났답니다. 세 살 연하에, 화사한 외모의 미인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단정하고 단아한, 그야말로 들꽃같은 매력이 있는 여성이었지요. 남자는 한눈에 그녀에게 반해 끈질기게 그녀에게 구애했지만, 그녀는 이를 완강하게 거절했답니다. 남자에겐 그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지요. 지금까지 그의 매력에 넘어가지 않는 여자는 없었으니까요. 궁금증은 이 경우 꽤나 진한 향신료가 된답니다. 그 궁금함을 해소하려는 갈망 자체가 그녀 자체에 대한 갈망과 뒤섞여, 정말로 강렬한 허기를 일으키거든요.

 

 결국 그녀도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하지만 한사코 결혼만은 거부했지요. 이유를 묻는 그에게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무언가 큰 이유가 있다는 사실은 그도 눈치를 챘습니다만 글쎄요, 말씀드렸다시피 궁금증이 곧 그녀에 대한 더 큰 갈망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사실 이유 자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상황까지 왔나 봅니다.

 

 결국 그는 조건을 제시했지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신경쓰지 않겠다, 결혼만 해 준다면 절대로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요. 남자의 태도는 확고했고,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인격의 사람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기에 결국 그녀는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 생활 역시 계속 행복했답니다. 정말 좋은 결말 아니겠습니까?

 

 아, 물론 아니죠. 하얀 것은 행복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쓰고 악취가 풍기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자랑거리랍니다. 이 이야기도 그렇게 끝나니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남자는 일상 자체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끝까지 숨겼던 비밀에 대해서는 어느새 그런 것이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그것은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거지요.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지만, 이 부부는 대체로 행복했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은 남자에게는 나름대로 고민이었고, 이 화제에 대해 서로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결론은 그저 운이 없었다는 정도로 끝나게 마련이었습니다. 당연히 둘 다 불임은 아니었구요. 그녀가 길에서 지나다니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를 보며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볼 때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상황에 그는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휴가철이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날 곳을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매년, 여행지는 남편이 정한 곳을 따르곤 한 그녀가 올해는 처음으로 가고 싶은 곳을 이야기했습니다. 관광지 휴양지로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개발이 안 되어 무척 깨끗하고, 사람들도 인심이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너무나 깨끗한 공기 때문에 강가에 누워 있으면 은하수가 보일 정도이다, 대충 이런 이유로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 또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 처음엔 그녀를 설득해보려 했지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고집스럽게 무엇인가를 주장한 적은 드물어서 결국 그곳으로 여행지를 정하게 되었죠.

 

 휴가일이 되어 두 사람은 차에 몸을 맡기고 휴가지로 떠났습니다. 몇 시간의 운전 후에 도착해보니, 남자 입장에서도 굉장히 흡족한 곳이었던 겁니다. 정말 공기도 너무 좋고, 캠핑하기 좋은 강가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니 마침 하교하는 시골 분교 초등학생들이 유쾌하게 노래를 부르며 그곳을 지나가는데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더라는 말입니다. 

 

 밤이 되니 정말 가로등 하나 없는 강변에는 완전한 어둠이 내려왔습니다. 두 사람은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별을 보며 로맨틱한 시간을 보냈죠. 하지만 역시 너무 어둡다보니, 의외로 할 것은 적었습니다. 두 사람은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눈을 뜬 남자는 옆에 부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어두운 곳에서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남자는 손전등을 들고 텐트 밖으로 나와 부인의 이름을 불렀지만, 부인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몰려온 불안감에, 남자는 고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흐르는 물소리 사이에서, 찰박, 찰박하고 물보라 소리가 들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흡사 빨래를 하는 소리 같았습니다. 아, 혹시 아까 맥주를 쏟은 양말을 부인이 세탁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든 남자는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어둑어둑한 강가 저편에, 부인이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거리는 멀었지만, 손전등을 비추자 마치 깜짝 놀란 것처럼 그녀가 튕기듯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당신이에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남자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숨을 쉬더니, 도로 돌아앉아 하던 것을 계속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가던 남자는 그녀가 하고있는 것이 세탁이라기엔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명백히 제법 무거운 무엇인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낑낑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가가보니 그것은 명백했습니다. 그녀가 씻고 있었던 것은 어린아이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괴하게 뒤틀린 팔다리, 한쪽 옆머리가 움푹 파인 상처, 이 모든 것을 감안했을 때 이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닌 시신이었습니다. 남자는 비져나오는 비명을 입을 틀어막은 채 필사적으로 참았습니다. 그런 남편을 슬픈 눈으로 쳐다본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그간 숨겨왔던 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의 비밀은 ‘어린아이에 대한 병적인 혐오’였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이 생겼는지는 그녀 자신도 모릅니다. 그녀 마음속에 어느날 싹튼 이 혐오는 날이 갈수록 커져 결국 살의가 되었고, 그녀는 17세, 아직 어린 나이일 때 살인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쪽에 나름대로 뛰어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남몰래 죽이고, 그것을 자신과 연관짓지 않도록 하는 재능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순수하게 그녀의 능력만으로 사건을 숨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그 일로 인해 체포되어 처벌받지 않은 것은 순전히 굉장히 많은 우연이 겹친 운 덕분이라더군요. 아마 겸손의 표현이라기보단 담담하게 사실만을 말한 것일 겁니다.

 

 그녀가 결혼하지 않으려고 한 것도, 아이를 얻으면 이 아이에게 증오를 품을까, 혹시나 자기 손으로 충동적으로 죽여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설득 끝에 결혼은 했지만, 남편에게 비밀로 한 채 꾸준히 피임약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가 어린아이를 볼 때마다 지은 굳은 표정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혐오감을 스스로 얼굴 위에 떠오르지 않도록 극도로 자제한 끝에 나온 것이었을 겁니다.

 

 휴가지로 한적한 시골을 고른 것은, 한적한 시골일수록 어린아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매년 휴가지에서 가족과 함께 온 어린아이를 볼 때마다 고통을 느꼈음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글쎄, 아예 어린아이가 한 명도 없는 지역은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였던 겁니다.

 

 시골 아이들은 한밤중에도 제법 많이 돌아다닌답니다. 도시와는 달라서, 어른들도 크게 개의치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 아이 한 명이 강가에서 처음 보는 텐트를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에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고, 시골 분교를 보고는 이런 곳까지 왔는데 여전히 어린아이를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고통을 느껴 제대로 잠들지 못한 그녀와 그대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마치 악귀처럼 텐트에서 뛰쳐나왔고, 아이는 겁을 먹고 도망쳤지만 결국 잡히고 말았습니다. 강가에는 흉기가 참 많죠. 아무렇게나 손을 뻗으면 집히는 흉기로 그녀는 쓰러진 아이를 내리쳤습니다. 아이는 정말 너무나 순식간에, 불쌍한 목숨을 잃고 만 것입니다.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물었습니다. 어째서 아이를 씻기고 있었느냐고, 불쌍해서 하다못해 깨끗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씻기는 거냐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처리해야하니까요. 그게 그녀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어린아이라는 것은 절대 감정 이입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항상 죽이고 싶고, 죽이고 나면 처리해야만 하는 일종의 과제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음날, 죽은 아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 아이임을 식별할 수 있는 형태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죠.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기분 좋은 포만감에 콧노래를 부르며 그녀에게 전과 변함없는 애정어린 눈길을 보냈습니다. 그녀 또한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배를 어루만졌지요. 두 사람 모두 무엇을 그렇게나 많이 먹은 걸까요. 정말 궁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답니다. 

 

 

 

 

 “어떻습니까? 감상은?”

 

 하얀 것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런 이야기에 감상이고 뭐고 있을 리가 없다. 그냥 끔찍한 엽기살인 괴담이 아닌가. 

 

 “남자는 원래 여자와 같은 그런 성향이 있었던 건가? 역겹군.”

 

 “아니오, 남자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고, 오히려 도덕관념이라면 보통 사람보다도 선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런 역겨운 범죄를?”

 

 “글쎄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디로 튈지 모른답니다. 이 경우에 남자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자신의 마음을 결정한 것이죠.”

 

 하얀 것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약간의 침묵 끝에 말을 잇는다.

 

 “한 가지는 물론 도덕관념이겠죠. 아이든 뭐든, 사람은 죽여선 안 된다는 그것 말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부인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역시,”

 

 하얀 것은 토해내듯 말한다.

 

 “상황, 이겠지요. 남자는 상황에 가장 최적화된 행동을 한 겁니다. 어찌보면 기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째서 그런 결론이 되는 거지?”

 

 “증거가 남으면 당연히 위험해집니다. 생판 남인 어린아이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보다 사랑하는 부인을 지키는 게 남자에겐 당연한 것이죠. 이미 상황은 벌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뛰어난 증거 인멸 방법을, 자신의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와 함께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합리적인 행동 아닐까요?”

 

 “하지만, 남자에게는 반대로 도덕이 시키는대로 경찰에 신고하고 부인의 자수를 설득한다는 선택지가 있지 않았나? 보통 사람이라면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하얀 것은 여전히 빙글빙글 웃는다. 

 

 “보통 사람이 선택할만한 선택지라는 것은 없단 말입니다. 사람은 그 순간 마음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이 언제나 가장 옳은 행동을 하는 동물입니까? 잘못된 선택, 잘못된 충동, 잘못된 판단,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쉽게 잘못되었다고 도매금으로 묶어 말해버리지만 그 순간 그 시점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최선의 판단이랍니다. 이성과 감정과 도덕을 모두 짜낸, 그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하나의 정답이라는 겁니다. 잘못되었다는 건 사후평가에 지나지 않아요.”

 

 “그렇다면 마음이라는 건 도저히 이해 못 할 제멋대로인 친구로군. 어둠 속에서 해골을 만난 것도 결국 마음이 만들어 낸 바보같은 현상이라는 건가?”

 

 아 물음에 하얀 것은 깍깍깍깍깍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격렬하게 젖혀댔다. 아마도 박장대소에 가까운 것인 모양이다. 웃음소리 대신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가 적막한 밤공기를 울렸다. 

 

 “일리 있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이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사람의 외모를 비추는 것은 거울이지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것은 어둠이 아닐까요?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어둠에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내지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보인다면 그것은 마음의 투영이겠지요. 그렇가면 말씀하신 대로 어둠 속에는 무엇이든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어디로 튈지 모를 부정형의 무엇인가이기 때문이죠.”

 

 “그렇군. 맞는 말이군.”

 

 하얀 것은 숫제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물론 박수 소리는 가볍게 단단한 것이 부딪히는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 걸까.

 

 “그럼 이제 슬슬 헤어질 시간이네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밤늦은 시간인데 부디 전방주시 잘 하시고 조심하시길.”

 

 

 

 손목시계의 알람이 울리고 순간적으로 주변이 밝아졌다. 가로등이 나타난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브레이크를 당기고 속도를 줄인 다음, 황급히 왼쪽을 돌아본다. 물론 하얀 것은 흔적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는 사실 자체에는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갑작스레 사라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는 무엇이든지 있다. 그런 하얀 것도 으레 있을 법한 것이다. 뭐든지 있다면,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것이 마음이다. 언제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자전거 머리를 돌려, 온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이미 충분히 멀리 나왔다. 돌아갈 체력을 생각하면 지금 돌아가는 게 가장 좋다. 적당히 땀이 흘러, 속도를 내자 제법 청량감이 좋다. 

 

 온 길을 되짚어갔지만 가로등이 없는 구간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