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도인은 등교할 때부터 다희와의 괜한 관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연애라던가, 기대하고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어줍잖은 대화의 계기라도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치 기다리라는 훈련이라도 받는 듯, 아침 조회 전에도, 1교시가 끝나도 다희는 도인에게 말을 걸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교실 뒤 창가 자리인 도인과 교실 앞 문 벽 쪽에 앉은 다희의 거리는 가깝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30분씩 걸어야 도착하는 거리도 아니었다.

10시 50분, 국어수업이 끝난 2교시 쉬는시간이 되어서야 다희가 도인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준다.

 

이거”

아”

 

내심 기다리고 있었지만, 무심한 듯 신청서를 받아든다. 조용한 성격의 다희와 광대스타일의 도인이 무언가를 하는 게 신기한 지 도인 옆자리의 규리는 신기한 듯 묻는다.

 

뭐야? 그거?”

신청서, 신청서”

동아리?”

어”

 

도인이 급하게 신청서를 낚아챈다. 괜한 쑥스러움인지, 아니면 들켰을 때의 파장이 걱정되는 건지 내용은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빈 칸에 자신의 인적사항을 빼곡히 채워넣는다.

 

무슨 동아리인데?”

 

물론 그런다고 해서 심심하던 찰나에 떡밥을 물어버린 규리가 쉽게 입질을 놓을리도 없었다.

격투게임 동아리라고 솔직하게 말하자니 뭔가 그림이 어색하고, 그렇다고 다른 동아리로 둘러대자니 마땅히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애초에 거짓말이 능숙한 성격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게임, 게임”

엥?”

 

규리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도인은 저런 반응이 나올거란 걸 알았기에 정직하기 말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뒤에 나올 이야기도 뻔했다.

 

다희야 너 게임도 해?”

응”

 

요란한 교실에서 모기소리 같은 다희의 목소리는 금새 묻힌다. 그나마 가까이 있는 규리와 도인만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넌 동아리 안하냐?

나 배드민턴”

 

도인은 괜히 화제를 돌린다. 규리도 자신이 흥미있는 주제가 아니란 걸 알자 금새 자기 동아리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도인은 동아리 신청서를 다희에게 전해준다.

 

이따가 다른 것도 설명해줄게”

어”

 

뭘 했다고 화장실도 못 갔는데 쉬는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린다.

 

막상 그 뒤로도 평소처럼, 다희와 도인이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다. 서로 공통된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격투게임 동아리 부원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7교시 수업이 끝나고, 방과후 수업도 끝난 6시가 되어서야 다희가 도인에게 다시 말을 붙인다. 다른 애들이 이미 짐을 다 싸고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가는 통에 수업이 끝난지 30초도 안됐는데 교실이 휑하다. 다희와 도인, 그리고 몇 몇 짐을 다 정리하지 못한 학생 정도만 남아있었다.

 

도인아”

 

도인아,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저렇게 불러 준 것이 얼마만일까, 남자아이들 끼리 보통은 야 라고 하는게 일반적이니 말이다. 특히나 만만한 계열에 속하는 도인은 더더욱 그러했으니 말이다.

누군가가, 아니 만화에서나 봤던 또래 여자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감각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낀다. 묘하게 마음이 선듯해진다. 티를 내지는 않지만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다희쪽을 바라본다.

 

어”

 

책가방을 등에 멘 다희도 이런 관계가 어색한 듯 조금 머뭇거리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9시까지 오면 돼”

몇 시간 씩 해?”

나 혼자 할때는 그냥 점심 먹을 때 까지 했어”

스트리트 파이터만 하는거야?”

보통은”

 

도인은 스트리트 파이터에 큰 흥미는 없었다. 정말로 캐릭터 몇몇을 빼면 주말에 처음 본 ip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나마 인터넷 방송이라던가 다른 곳에서라도 봤으면 해볼까 하는 마음이라도 들었겠지만, 그런 경험마저 없었으니 더더욱 생소하게 느껴졌다.

 

가면서 얘기할까?”

어, 그래”

 

몇 마디 했다고 교실이 텅 비었다. 짙은 노을만 가득 찬 학교를 빠져나오자 저 멀리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가는 몇 몇 학생이 보인다. 도인의 친구 중에는 굳이 학교에서 야자까지 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도인도 다희도 그렇게까지 공부에 성실한 편은 아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사람 모두 집이 후문 쪽이다. 보통 학생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단지가 정문쪽에 나있고 후문은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들이 쓰는 원룸촌 아니면 상가를 지나 다시 아파트 단지가 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나가는 학생들은 적었다. 게다가 조금 늦게 나온 탓에 담벼락에 차가 주차된 좁은 길에 사람이라곤 둘 뿐이었다.

 

스파인가 그건 재밌어?”

응”

유명해?”

 

동아리 부장이 하겠다는데, 사실 본인이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었다. 도인 본인도 격투게임에 큰 뜻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딸려오는 잿밥이 탐나서 참가하는거니 뭘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유명해, 우리나라에선 별로지만”

하긴, 나도 처음봤으니까”

 

생각해보니 그저께 갔던 오락실에서도 철권7 기기가 여러대에 그 끄트머리에 킹오파97 기계가 놓여있긴 했는데 스트리트 파이터는 못 봤었다.

 

격투게임중엔 제일 유저 많을거야”

철권보다?”

응”

진짜?”

응”

 

다희의 목소리는 꽤나 단호하다. 그래 뭐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기에는 평소와 다른 반응이 꽤 재미있다.

 

근데 나는 철권이랑 킹오파밖에 안해봐서”

아 그러면”

 

입을 살짝 벌렸지만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한 다부진 표정, 살짝 앞에서 걷고있던 도인도 발걸음을 멈추고 다희쪽을 쳐다본다. 조용한 거리에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멎자 순간 세상이 그녀를 주목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아니, 별 건 아니고. 그냥 이제 부원도 두 명 이니까, 다른 게임도 같이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다른 게임도 있어?”

철권은 스팀 버전만 있지만 다른 건 다 플스로도 갖고있어”

생각보다 매니아구나”

응”

 

살다 살다 여자애랑 같이 게임을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속으로는 아무렇지 않다고 자기최면을 걸고 있지만 묘하게 쑥스럽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는게 어쩔 수 없는 사춘기 남자의 본능일 것이다.

 

난 이쪽으로 가는데”

아 그럼 갈라져야겠네”

그래, 내일보자”

오냐, 잘 들어가고”

 

다희는 도로를 타고 쭉 들어가고 도인은 큰 길 상가 쪽으로 빠진다. 

 

아, 고다희”

 

도로쪽으로 걸어가던 도인이 돌아와서 다희를 다시 부른다. 노을을 맞으며 걸어가던 다희의 실루엣이 뒤를 돌아본다. 조금 빠르게 걸어서 다희 앞으로 걸어간다. 심장이 빨리 걸은 속도 만큼만 빠르게 뛴다.

 

왜?”

전화번호 좀 줄래?”

 

같은 반 친구, 같은 동아리 부원에게 전화번호를 달라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화지만 괜한 긴장감이 든다. 그런 긴장이 쓸데없는 것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다희가 핸드폰 번호를 찍어주기 전까진

 

어, 신호 바뀌겠다. 진짜 갈게”

잘 가”

 

도인은 괜한 어색함을 이겨내려고 도망치듯 횡단보도로 뛰어간다.


격겜 파트 없다고 분량 적어진다.

철권7 게임기 쭉 늘어져있고 끝에 97 있는 오락실은 실제로 내가 가는 오락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