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이 격투게임의 심리전을 가위바위보라고 묘사하긴 하는데

나는 이런 비유가 격투게임에 대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지 않음.

기본적으로 저런 비유를 쓰는 사람들은 이제 간단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저런 말을 한 건 나도 아는데


격투게임은 기본적으로 피지컬적인 요소가 굉장히 중요한 게임임.

근본적으로 이 게임이 어려운 이유는 CPU 대전이 아니라 전부 다 사실상 사람 대 사람이라서 발생하는 게 첫번째고.

두번째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전략전 판단 -> 실행에 이르는 이 시간이 아주아주 짧고 까다롭다는 데 있음.

RTS나 AOS도 마찬가지 아니느냐? 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두 장르와 달리 격투게임은 한판 한판이 매우 짧음.

RTS나 AOS는 초반의 포석이 실패했다고 해서 게임이 터지지는 않잖아? 남은 시간은 20~30분은 보장된다고.


근데 격투게임에선 10초면 끝나. 1~2초 내에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판단이 두 번 틀렸거나 판단을 제대로 내렸어도

1~2초내에 적절히 실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가 져야함 -_-; RTS나 AOS에서 최종장에서나 터져야하는 막판 한타 싸움이

사실상 1~2초 단위로 갱신이 되고 있는거임. 그리고 게임 시간이 60~99초이고, 다행스럽게도 게임 안의 화면에서 우리가

수집하고 판단해야 되는 정보량이 아주 많지는 않음. 대신 포인트 하나하나에서 심리전을 걸거나 그걸 읽거나 해야하지.

그 시간 동안 어떻게든 게임을 통제하기 위해 애쓰는거고.


그리고 다시 말하자면 내가 카드게임하는데 내 턴에는 적절한 내 시간이 보장이 됨.

하스스톤하는데 1초 안에 카드 내라고 안 하잖아? 

근데 이 시부럴 게임은 상황이 급변하고 1초, 0.5초 내외로 나한테 다지선다 중에 답을 맞추라고 함.

틀리면?




대충 이꼴 나는거임 ㅇㅇ;;



심리 돌아가는 근간이 얼추 가위바위보는 맞는데 이걸 아주 빠르게 실행해야 하고,

 그리고 좀 더 다지선다로 다양하게 이루어지니까...


그리고 심지어 단순히 반응속도로만 게임이 안 되는게

커맨드에 대한 숙련도를 요구함.

특정 조작을 하기 위해서 내가 A 버튼 누른다고 기술이 나가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상대 심리를 읽고 있어도 반응할만한 속도 + 정확한 커맨드 입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는 게임을 이해하고 있는거지 실제로 격투게임을 잘하고 있는 게 아닌거야.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답답해하지.

분명히 저 사람이 뭘 할지 짐작이 가는데, 보통은 여기에 대한 답답한 반응이 3가지야.


1) 저 사람이 같은 패턴인데 어떻게 깨야할지 모르겠어

2) 저 사람이 같은 패턴이고 깨는 법은 알겠는데 내가 숙달이 안 되서 즉각적으로 반응을 못 해

3) 저 사람이 쓰는 패턴을 깨는 법도 알겠고 내가 충분히 즉각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범위인데...

(예를 들어서 점프만 하는 방방충이다 -> 나는 대공을 칠 줄 안다 -> 대공만 치면 된다)

저 사람이 이 패턴 저 패턴 섞어서 쓰기 시작하고 상단 중단 하단 점프 잡기 장풍 이런게 뒤섞이기 시작하니까,

이걸 종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나에겐 없어.

(저 사람이 장풍도 쏘고 앞대쉬 뒷대쉬도 쓰고 중립자세를 유지하기도 하고 페이크 모션으로 기본기를 섞어서 내밀기 시작하고

제자리점프로 낚시를 하려고도 하고 이러기 시작하면 나는 대공 하나만 바라볼 수가 없어)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경험적인걸 요구하는 게임임.

왜냐하면 이해하는 거랑 달리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작이나 숙련도는,

진짜 경험이 누적되지 않으면 절대로 해낼 수가 없는 것들임.

지금 당장 격투게임 콤보 스테이지나 트라이얼 가서,

격투게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그 콤보들을 익히는 데 얼마나 걸릴까?

트레이닝에서 성공시키는 것도 아주 오래 걸릴거임.

심지어 그 상황별 콤보들을 적재적소에 바로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대전을 굴러야할까?

아무리 트레모 돌리고 그래도 엄청 오래 걸리겠지...



(그래도 팀게임과 달리 자기가 온전히 조작한다는 면에 있어서

게임 외적인 요소로부터의 스트레스에선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기도 함.

그만큼 내가 잘해지거나 이겼다는 승리의 기쁨이나 성취감도 정말 내가 다 해냈구나 하는 감동도 주고...)



얘기가 장황해졌는데 이런 경험이 두텁게 쌓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작은 화면 안에 담긴 한정된 정보로 빠르고 다양한 심리전이 오가고

내가 직접 그 모든 상황에 맞춰서 디테일하게 조작할 수 있다는 그게 참 재미지긴 한데

(그만큼 정말 이게 다 내 실력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으니까)



문제는 처음하는 사람이나 초보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묘미를 느끼는 지점에 오기까지가 너무나 험난함...


내 친구는 FPS를 20년 했는데 격투게임은 되게 어색해함.

만약에 친구가 격겜을 20년 했다면 FPS를 그만큼 어색해 했겠지.

그리고 내 친구가 FPS의 묘미를 느끼듯이 격투게임에서의 묘미나 진가를 느낄만큼 숙련도를 쌓거나 게임을 즐기려면,

한판 두판, 하루이틀 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할 거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실력자들과 동등한 수준의 매칭이 항시 보장이 되어야하는데

(졸라 초고수한테 쳐맞으면서 배우는거 좋아하는 미친 변태같은 사람들은 잘 없음)

격투게임 자체가 수준별 매칭이 원활한 게 거의 없어...

만약에 내 친구가 존나 마이너한 격투게임이라도 좋아해버리면,

맨날 트레모만 돌리거나 디코방 단톡방 전전하면서 대전자를 구해야해.


결국에 타협해서 주류 격겜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자기가 답답함을 해소하고 원활하게 자기 플레이를 터득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릴 거야.

그리고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질수록 자기가 익숙한, 자기가 곧잘 해왔던 원래 게임들이 떠오를테고.

원래 하던 게임에서 내가 자신만만하게 즐겜할 수 있는데

내가 뭐하러 개같이 스트레스 받는 격투게임 같은 걸 이 고생하면서 배워야할까?

이 생각 드는 순간 그냥 끝장인거지 ㅇㅅㅇ 진입하기 싫어져.


하다못해 신작 게임이나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게 널린 시대니까...


이중 몇몇 사람만이 이제 아까 말했듯이 묘리를 터득할 정도로 기어서 올라가거나,

아니면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더라도 변태같이 격투게임의 묘미나 스릴에 푹 빠져서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과정을 즐기거나...


아무튼 그게 참...

경험이 쌓이면 쌓이고 게임을 알면 알수록 기하급수적으로 피곤해지지만

그만큼 단순하게 플레이하던 때와 달리 더 즐길거리가 생겨나고

그로 인해서 한판 한판의 카타르시스나 패배감이 더 커지고

재밌는만큼 스트레스도 강해지고... 뭔 말이야 이게 싯팔.


하이튼...

격투게임 참 재밌는데

지금이 90년대도 아니고

경쟁하는 게임들이 워낙 트렌디하고 재미난게 많으니까

이 고생하면서 찍먹 부먹을 할 유저가 몇이나 될까 싶넹.


게다가 대전이나 경쟁을 좋아해서 격투게임에 푹 빠지면 그것대로 문제가 발생하는게

너무 호승심이 강하면 자기 실력이 상승하는 속도에 비례해서 지금 한판한판이 그 사람한테 주는 부하가 커져서

한 번 질 때마다 사람이 너무 속상해하거나 폭발하듯 화를 내게 되니까...



내 친구 한 명은 그래도 스파5에서 플래까지는 찍었는데

이 친구도 경쟁심이 너무 강해서 결국에는 스트레스를 못 이기니까

다이아까지 찍고 싶긴 한데 너무 화나서 더 못하겠다고 하더라.



아무튼 스파6에선 뉴비 배려나 싱글 컨텐츠 다양화 등등으로

어떻게든 유입 및 정착을 신경쓰고 있다고 하니...

격겜 그만두거나 아니면 해본 적 없는 내 친구들도 스파6 좀 해봤으면 좋겠네 ㅇㅅㅇ


그리고 격겜 커뮤들에도 뉴비들이 복작복작 몰려와서 격겜 졸라 재밌다고 글쓰는거 보면 되게 흐뭇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