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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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김에 나간 게임 대회


본격적으로 격투 게임에 복귀하는 계기가 되었던 게 '마블 VS 캡콤 2'였습니다. 중학교 때 몰두했던 농구부에서 은퇴하고 고등학교 입시도 끝났던 시기의 일이죠.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가 "네모짱. 캡콤에서 새 격투게임이 나오다는데, 게임 센터 가 보자"고 부추겨서 다시 게임 센터에 다니게  된 겁니다. 


네, 플레이어 네임으로 '네모'라고 자칭하기 전 까지는 주로 '네모짱'이나 '네모치'라고 불리곤 했습니다.


오랜만에 게임 센터에 다니고 알게 된 건, 스스로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게임 센터와 거리를 두던 도중에도 '엑스맨 VS 스트리트 파이터'만큼은 계속 즐기고 있었으니, 스스로 의식은 못 했지만 시나브로 강해져 있던 거죠. 다른 플레이어들과 대전을 하게 되면 연승을 거두게 되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점점 더 게임 센터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고등학교에선 테니스부에 들어갔지만, 농구를 하던 중학교 때와는 달리 게임열은 식지 않았죠. 운동은 좋아하니까 부활동은 열심히 하지만, 게임 센터도 빼먹지 않고 다니는 나날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때부터 "겸업"의 낌새가 보였는지도 모르겠네요. 게임에 너무 빠져 집에 늦게 들어갔을 때에는 "부활동이 늦게 끝났어"라며 부모님께 변명할 거리로 삼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그저 "재밌다", "좋다"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 특별한 목적성도 없이 격투게임을 하고 있던 저에게 사소한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친한 점원분께 '더 킹 오브 파이터즈 2000(KOF 2000)'을 추천받고, 더 나아가 그 게임으로 대회에까지 나가게 되었던 겁니다.


e스포츠가 주목을 받게 된 지금은 '격투 게임'이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와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의 '철권'이 양대 타이틀이죠. 하지만 당시에는 SNK의 '더 킹 오브 파이터즈(KOF)'시리즈가  캡콤 게임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오쿠보 알파 스테이션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KOF의 성지'. 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원정을 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가게였죠.


하지만 저는 애초에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다니기 시작한 가게였습니다. 'KOF의 성지'니 하는 얘기와는 전혀 상관 없이 줄곧 캡콤 게임만 하고 있었죠. 그러자 그걸 그냥 보고 넘길 수 없었던 건지, 점원분께서 "이 게임 한 번 해 보지 그래?"하고 'KOF 2000'을 추천해 주셨던 겁니다.


원래부터 수동적인 타입이었으니 그걸 계기로 'KOF 2000'도 열심히 플레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엔 '가게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가보지 않을래?"하고 부추기시더군요. 가게 입장에서는 참가자가 한 명이라도 많은 게 좋을테니 건네 본 가벼운 권유였을 겁니다. 그런데 직접 대회에 나가보니 꽤나 수월하게 이겨나갈 수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환경이 좋았던 게 이유였을 겁니다. 아무래도 성지라고 불릴 정도의 가게였으니, 대회가 열릴 때 뿐만 아니라 평소부터 유명 플레이어들이 다수 모여 있었으니까 말이죠. 지금까지 프로게이머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도 꽤 있었고, 같이 즐기다보니 그런 플레이어들과도 친해졌습니다. 그렇기에 어느새 이기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었겠죠.



우메하라, 토키도 등 강자들과의 만남


저에게 오쿠보 알파 스테이션은 단순히 '집 근처에 있는 게임 센터'였지만, 그곳이 겸사겸사 성지였던 덕에 자연스럽게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존재가 되었던 게 당시의 제 상황이었죠. 격투 게임을 처음 해 본 것도, 계속해서 열심히 즐겼던 것도 캡콤 게임이었는데, 돌아보니 처음 전국 대회에 나가게 된 것도, 제가 플레이어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도 이 'KOF 2000'이라는 건 신기한 인연이네요. 그 때까지는 격투 게임 세계에 전국 대회가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로 그저 즐기기만 했을 뿐이었으니 'KOF 2000'과 만난 일, 그리고 대회에 나가길 권유받은 일로 한 번에 시야가 넓어졌던 것 같네요.


참고로 당시 게임 대회에는 게임 센터를 경영하는 기업이 개최하는 대회와 게임 개발사가 개최하는 '공식 대회', 크게 나눠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나간 건 전자인 게임 센터 대회였습니다. 주말이 되면 어딘가의 게임 센터에서는 늘 게임 대회가 열리고 있었으니 저도 서서히 참가하는 기회가 늘어나게 되었죠.


그러던 와중에 개발사가 주최하는 공식 대회에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출전했던 건 'KOF 2000' 이후에 나온 '캡콤 VS SNK2(CVS2)'라는 게임이었죠.


이 작품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로 대표되는 캡콤 작품의 캐릭터들과 'KOF' 등 SNK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싸우는 대전 게임. 1~3명의 캐릭터를 골라 팀을 구성하고, 그렇게 구성한 팀끼리 싸우는 게 특징이었죠.


오쿠보 알파 스테이션에서도 이 게임의 예선이 열렸기에 가벼운 기분으로 참가해 봤습니다. 그런데 덜컥 우승을 하고 말았죠. 뜻밖에 전국 대회에 나가게 되었던 겁니다.


이 때 쯤에는 SNK 게임도 자주 플레이하게 되었지만, 저에게 '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역시나 캡콤 게임. 플레이한 시간도 길고, 익숙한 것도 캡콤 캐릭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일', '춘리', '사가트' 이렇게 세 캐릭터로 팀을 구성하고 대회에 나갔죠.


전국 대회 성적은 16강에서 마무리. 이 게임에는 공격이 발생한 순간에 상대의 공격을 무시할 수 있는 '무적기'라 불리는 기술이 많았고, 진 시합을 분석해보면 무적기에 여러 번 당한 게 패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CVS2는 그다지 많이 즐기지 않게 되어버렸죠. 처음부터 그렇게 열심히 즐기던 타이틀이 아니었던 것도 있지만, 무적기가 많은 게임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느꼈던 겁니다.


한편으로는 큰 수확도 있었습니다. 전국 레벨의 대회를 경험했던 자체도 수확이었지만, 우메하라(우메하라 다이고) 선수, 누키(오오누키 신야) 선수, 토키도 선수 등 지금도 격투 게임계를 이끄는 강자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에 대한 얘기는, 대회에서 직접 만나보기 전부터 "강하다"는 소문을 많이 들어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모인다는 신주쿠의 '모어'라는 게임 센터로 직접 플레이를 보러 간 적도 있었죠. "이 사람들에게 못 이기면 우승할 수 없단 말이지"하고 생각하던 게 기억나네요. 그 전까지 대회라는 것조차 모르던 제가, 처음으로 "상대를 이기고 위로 올라간다"는 개념을 의식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전국 대회에 출전해 그들의 플레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들과 인연이 생긴 것이 나중에 프로게이머로서 활동하게 되는 저에겐 무척이나 큰 경험이었던 겁니다.



대회 도중에 귀가, 이유는 '귀찮았으니까'


'KOF 2000'은 더 이상 즐기지 않게 되었지만, 그걸 계기로 캡콤 이외의 다른 개발사의 격투 게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제게 있어 큰 변화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깊이 파고들었던 게 아크 시스템 워크스가 개발하고, 사미에서 2002년에 출시된 '길티기어 이그젝스'였습니다.


전작이었던 '길티기어 젝스'가 엄청나게 인기가 좋아 신주쿠에 있는 게임 센터의 모든 캐비넷이 플레이어로 가득 찰 정도였기에, 이전부터 계속 궁금증을 가지고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2년에 그 후속작인 '길티기어 이그젝스'가 발매된 걸 계기로 저도 즐기기 시작했죠.


이 때, 같이 'KOF'를 플레이 하던 동료를 통해 전작인 '길티기어 젝스' 전국 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리키라는 플레이어와 알게 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조작이 엄청 간단한 캐릭터가 있으니까, 일단 그 캐릭터를 쓰며 즐겨보면 좋을거야"라는 어드바이스를 시작으로, 리키씨에게 여러가지를 배웠죠.


그 덕에, 플레이를 거듭하며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걸 저 스스로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오쿠보 알파 스테이션은 1플레이 당 50엔으로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게임 센터였기 때문에, '길티기어' 시리즈의 강자들도 자주 볼 수 있었죠.


어느새 과거 전국 대회에서 상위권에 든 플레이어에게도 이길 수 있게 되었을 때 쯤, 그걸 본 게임 동료 중 한 명인 sana씨가 '길티기어 이그젝스' 전국 대회에 출장해보지 않겠냐고 강권하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별로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오쿠보 알파 스테이션 이외의 게임 센터에서 이 게임으로 대전해 본 적도 없었으니, 제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강하게 권유를 받았어도, 당사자인 제 입장에서는 "신주쿠 근처에서 대회가 열리면 나가봐도 괜찮을지도?" 정도로 가볍게만 생각했죠. 그래도 그 말을 무시할 수는 없어 일단 예선에 참가 신청은 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예선이 치뤄지는 곳에 가 보니, 인기 게임인 만큼 300명 이상이나 되는 플레이어가 참가하려고 모여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대회를 운영하는 쪽에서도 노하우가 별로 없었기에, 진행은 엉망이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좀처럼 스무스하지 못했죠. 제 시합이 몇 시부터 시작되는지 전혀 예상할 수도 없었다보니, 기다리는 도중에 귀찮아져서 그만 도중에 돌아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저 스스로 의욕이 없었던 데다, 그 당시에는 승부욕도 그다지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