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링크

서문 [0]

1장  [1] [2]

2장  [3] [4]




혼나고 나서 알게 된 나를 향한 '기대', 처음 맛본 패배의 '분함'


그런데 그 후에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일이 흘러갔습니다.


대회 도중에 그냥 돌아와 버렸는데, sana씨에게서 "오늘 결과는 어땠어요?"라며 전화가 걸려온 겁니다. 저는 가볍게 생각하고는 "귀찮아져서 중간에 돌아왔어요"하고 솔직하게 대답했죠. 그러자 엄청나게 꾸중을 듣고 말았습니다.


"네모토씨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전국 대회에는 진심으로 나가 주셔야죠. 그 실력이면 예선은 반드시 통과할 수 있을텐데요. 당신 같은 사람이 전국 대회에 안 나가는 건 엄청나게 아까운 일이란 말입니다."


전화로 한 시간 가량 "예선에 참가해 줬으면 한다"는 설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나 진심으로 꾸중을 들었으면 나갈 수 밖에 없었죠. "그러면 다음 예선에는 반드시 나가겠습니다"하고 약속했습니다. 출전한 결과, 1회전에서 저에게 상성인 캐릭터를 만나 패배. 하지만 같은 대회의 최종 예선이 신주쿠에키니시구치에 있던 신주쿠 스포츠 랜드 니시구치점(통칭 니시스포, 후에 클럽 세가 신주쿠니시구치점, 현 GiGO 신주쿠니시구치)에서 열리게 되어, 한 번 더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죠.


이 최종 예선에서는 준결승에서 토키도 선수를 상대해 이기고 올라갔지만, 결승전에서 우메하라 선수에게 패배해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 최종 예선에는 전국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시드가 두 자리 배분되어 있었죠. 즉, 2위였던 저도 전국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전국 대회에 출전하자, '길티기어 이그젝스'에서 상당한 조언을 주신 리키씨와 함께 sana씨도 응원을 해 주러 오셨습니다.


대회 결과는 톱 8. 의욕이 없었던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저는 이 때 처음으로 '분함'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격투 게임을 해 왔으면서 분함을 느낀 게 처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는 그때까지 "좋아서 하고 있을 뿐이야"라며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게임을 하며 명백하게 '분하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습니다.


분함을 느꼈던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시합 전에 우메하라 선수 이외의 플레이에에게 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점. 그 때까지 제가 까다롭다고 느낀 상대는 우메하라 선수 정도였고, 그 우메하라 선수는 전국 대회에서는 이미 탈락했기 때문에 제가 더 상위 라운드에 올라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이상으로 크게 다가왔던 두 번째 이유는,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료들이 일부러 전국 대회에 응원해주러 와 주었을 때, "지기 싫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심지어 저는, 스테이지에 올라가 대전을 해본 게 이 대회가 처음이었습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주목하는 와중에 지고 말았다는 사실이, 저에게 '분함'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겁니다.



'나 하나만 강하면 이길 수 있다'는 착각


다음에는 반드시 이긴다. 그런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을 즈음, '투극'이라는 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투극은 엔터브레인(현 카도카와)이 2003년부터 주최한 대전 격투 게임 전문 대회입니다. 그 해의 제1회 대회는 '캡콤 VS SNK2', 'KOF 2002', '길티기어 이그젝스', '스트리트 파이터 Ⅲ 서드 스트라이크', '버추어 파이터 4 에볼루션' 등 총 7가지 종목으로 치루어진, 격투 게임 올림픽 같은 대회였죠.


이전에 있던 전국 대회를 설욕하기 위해 굳게 마음먹고 참가한 대회였는데, 투극에서는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분한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지게 되었죠.


이 때 대회에 나간 제 마음가짐은, 지금 돌이켜보면 반성할 점 투성이였죠.


투극 '길티기어 이그젝스' 대회는 3인 1조로 싸우는 단체 토너먼트전이었습니다. 격투 게임은 기본적으로 1대1 싸움이지만, 단체전이 되면 누구와 팀을 맺을 것인가, 어떤 전략으로 싸울 것인가 하는 팀워크가 중요한 것은 당연지사. 이 룰은 지금 참전하고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 리그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 때의 저는 "나만 강하다면 위로 올라갈 수 있어"라는 생각에 팀메이트는 머릿수 채우는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게임 센터에서 게임을 할 땐, 1플레이 50엔인 캐비넷에서 50연승 정도 거두는 게 당연할 정도인 상황이었으니, "내가 가장 강해"라는 자만에 빠져있었던 거죠.


사실 이 투극 제1회 대회에서, 전 개인전으로 치루어지는 'KOF 2002'에도 참가했습니다. 저에게 'KOF 2002'는 친한 사람들이 플레이하니까 따라서 한 번 해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죠. 그런데 간단하게 예선을 통과하는 정도를 넘어 본선에서도 톱8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에 반해 진심으로 뛰어들었던 '길티기어 이그젝스' 단체 토너먼트에서는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탈락하다니, 그 사실이 제가 분함이 몇 배나 더 커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꽤나 낙심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결국,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겁니다.


자주 다니는 게임 센터에 유명 플레이어가 잔뜩 모이고 그곳에서 제가 쉽사리 연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는 해도, 어차피 대전해 본 상대의 수는 한정되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가장 강해"라고 자만하고 있었던 건, 현실을 너무나도 몰랐던 철없는 생각이었죠. 한 마디로 말하자면 "너무 우쭐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개발사 공식 전국 대회와 투극 제1회 대회, 이 두 가지 대회에서 연속으로 경험한 패배로 인해, 저는 앞에서 말한 당연한 사실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게임은 어디까지나 취미일 뿐이라 여기며 패배해도 분함을 느끼지 않았던 저에게, 진심으로 분하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기회도 되었죠.


그 이후에는 게임에 좀 더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KOF'로 처음 대회에 나간 다음부터는 계속 대회를 의식하며 게임을 하게 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스위치가 들어갔던 건 이 때쯤입니다. 학교에 다니는 평일에는 자유시간 전부 게임 센터에 쏟아부으며 랭킹 배틀이 있으면 참가하고, 쉬는 주말에는 어딘가의 게임 센터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얘길 들으면 찾아가서 참가하는 나날…. 게임 센터에 처음 다닌 이후로 줄곧 집 근처 가게만 다니던 저는, 이렇게 다른 가게에도 적극적으로 발을 옮기게 되었죠. 게임이 생활의 중심이 되어 버릴 정도로, 이 때 품고 있던 분함은 무척이나 컸습니다.


그 다음 해인 2004년, 저에게 분함을 느끼게 했던 투극의 제2회 대회에 연속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제1회 대회 예선에서 한심한 패배를 당한 저에게, 이 대회 우승자 중 한 명인 kaqn(카큔)씨가 "아깝게 졌으니까 내년엔 같이 나가지 않겠어?"라며 권유해주셨던겁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투극에서 치뤄지는 '길티기어' 시리즈 대회는 단체전 형식으로 겨루게 됩니다. 그건 제2회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다만, 게임종목은 '길티기어 이그젝스'에서 후속작인 '길티기어 이그젝스 샤프 리로드'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kaqn씨와 또 한 명, 신주쿠 모어에서 알게 된 친구인 '이모'와 세 명이서 팀을 꾸려 참가했습니다. 작년에 패배했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예선을 한 번에 통과해서 본선에 진출했지만…


성적은 준우승. 작년에 비교한다면 엄청난 발전이었지만, 앞으로 한 발짝만 더 가면 우승을 거둘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이번에도 분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이 시합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부분에서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팀 구성원 세 명 중에 저는 대장. 즉 다른 두 명이 져야 저에게 처음으로 차례가 돌아오게 되죠. 그러다보니 본 대회에서 실제로 제가 싸웠던 건 1회전과 결승전, 두 번 뿐이었습니다. 특히 결승전에서는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저보다 강하다고 느꼈던 사람과 맞붙게 되었죠. 이렇게 투극에서는, 단체전에는 단체전만의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