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렛의 휴일 ]


 - 프롤로그 





 분쟁지대.

 켈베로 운석을 채굴하기 위한 용병단이 몰려들고, 그 용병단을 약탈하는 도적들이 몰려들고, 도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또 용병단이 몰려들고, 공적을 독차지 하기 위해 용병단들끼리 서로 끊임없이 싸우는 무법지대.


 산더미처럼 쌓인 파이널 기어들의 잔해 아래에는, 한때 운석 채굴단들이 사용했던 이동수송기지도 있다. 지하 깊숙한 곳에 묻힌 수송기 안. 아직 발전기까지는 고장이 나지 않아 파직거리는 스파크를 내며 전등이 깜빡거리는 어두운 수송기지 안, 그곳에 두명의 여자가 서로 대치하고 서 있었다.


 "이런 변방까지 내쳐진 기분은 어때, 기사님?


 은빛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있는, 구릿빛 피부의 여인. 거대한 화포를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솔라라고 한다.


 헥셀 5대 마녀의 일원,

 파멸의 마녀라고 불리는 자다.


 "......"


 솔라의 맞은 편에 서 있는 여자는 새하얀 제국기사의 복장을 걸치고 있는 여자다. 기이하게도 실내인데다 지하이기까지 한 이 수송기지 안에서 붉은 동양식 우산을 들고 있다. 


 제국기사단장 엘로이스의 수제자.

 지옥의 광견, 베르나데트.


 그녀는 우산을 든 채 말없이 솔라를 바라본다.

 솔라의 도발에도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솔라는 혀를 찬다.


 "쳇, 지독할 정도로 말을 안하는군. 너 진짜 재미없는 녀석이야."

 "전쟁을 재미있어 하는 광대는 한사람으로도 차고 넘치지."


 아홉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베르나데트가 입을 열었다.

 허를 찔린 듯 솔라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베르나데트가 우산을 앞으로 펼쳐들고 솔라에게 돌진한다.


 "큭!"


 우산 끝에는 날카로운 작살같은 창날이 솟아있다. 솔라는 그 창날을 피하려 옆으로 몸을 옮기지 않는다. 거대한 총신을 휘둘러 창날을 막아낸다.


 아홉시간이다.

 벌써 아홉시간 동안 베르나데트의 공격을 받았으니 알법도 하다.

 옆으로 피한다면, 활짝 펼친 우산 뒤에 몸을 숨긴 베르나데트가, 오른손에 쥔 단검으로 공격해온다는 것을. 이지선다를 강요하는 그 기묘한 검법을 파훼하기 위해 솔라는, 옆으로 피하지 않고 총신을 휘둘러 우산을 맞받아치는 전략을 택했다.


 아마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첫 세합 안에 솔라의 목이 단검에 꿰뚫렸을 것이다.


 '문제는 저 우산이로군.'


 솔라는 자신의 총을 바라본다. 베르나데트의 공격을 받아치느라 총신이 구부러지고 말았다. 이대로 유탄을 쏜다면 베르나데트의 우산이 아닌, 자신의 총이 산산조각 나고 말 것이다. 그러면 끝장이다.


 "어-이, 기사님. 슬슬 알아주는게 어때? 사소한 오해가 있었단걸 말야. 우리는 딱히 게하에 손해를 입히려는게 아냐. 아직은 그런 임무를 받지 않았다고."


 베르나데트는 우산을 다시 접고 솔라와 거리를 벌린다.

 솔라는 아홉시간 동안 지겹게 깨달았다. 우산을 접은 것 역시 베르나데트의 전투동작 중 하나라는 것을. 솔라의 거물총신이 구부러지고, 권총의 탄환이 다 떨어진 시점에서 나오기 시작한 동작이었다. 더 이상 우산으로 총탄을 막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광견이라길래, 곧바로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다혈질일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집지키는 개새끼잖아. 이렇게까지 지루한 년인 줄 알았다면 절대로 도전에 응하지 않았을거야. 뭐어, 아홉시간이나 결판을 낼 생각을 하지 않는 점에서 미친개가 맞긴 하지만."


 솔라가 양팔을 활짝 벌리고 도발한다.


 "이제 슬슬 끝내지? 우리 소대는 지금 임무 중이거든? 아홉시간이면 내 부하들 씻고 자고 먹고 피로도 풀렸을테니 말야. 나 일하러 가게 좀 도와주라."

 "좋다, 도와주지. 피안으로 가버려라."


 베르나데트는 다시 우산을 펼치고 앞으로 내밀어 자신의 몸을 감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솔라에게 들이닥치지 않는다.


 "쳇. 더럽게 신중하기는."


 솔라는 베르나데트의 우산 위에 침을 뱉는다.

 베르나데트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우산을 손에서 놓치면 끝장난다는 것을. 완력, 스피드, 리치와 같은 피지컬 모두 솔라가 베르나데트보다 우위에 있다. 솔라가 예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파고들어갔다간 당하는 건 자신이다.


 아홉시간 동안, 베르나데트는 단 한번도 빠짐없이,

 솔라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에서 공격을 행했다.


 그건 단순한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의 생각을 읽고 자신의 수를 전개해나가는 집중력. 그 집중력이 아홉시간 동안 단 한번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군. 그래서 미친개인가."


 완력도, 스피드도, 리치도 떨어진다.

 그 모든 부족함을 절대로 패배하지 않겠다는 집요함, 그 하나로 메꾸고 있는 기사다. 보통 개라면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았을 때 꼬리를 말고 도망쳤겠지.


 그러나 베르나데트는 도망치지 않는다.

 자신이 솔라보다 약한 것을 알고 있는데도.


 "미친년."


 그렇게 말하는 솔라의 목덜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공포.

 자신보다 나약한 것이 분명한 자에게 솔라는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베르나데트는 그런 솔라의 감정을 전혀 읽지 못하는 것처럼, 사실은 읽고 있을텐데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봐, 광견. 우리소대는 말야, 오히려 게하에 이득이 되는 임무를 하고 있어. 우리는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죽이려고 한다."


 테이시아 크래프트.

 검술로 유명한 크래프트 가문의 공녀. 


 어째서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죽이는 행위가 게하에 이득이 된다는 말인가? 그런 의문이 베르나데트의 마음 속을 메운다. 일순간 베르나데트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그 순간을 노리지 않고 솔라가 베르나데트를 향해 거대한 총신을 휘두른다. 일순간 마음 속에 혼란과 망설임이 생긴게 분명하다.


 이거다.

 솔라가 씨익 웃는다.


 게하의 기사는 국가에 절대적으로 충성한다.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죽이는 행위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행위라 판단한다면,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막을 내릴 수 있으리라.

 신이 난 솔라가 떠벌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말야, 너희 여왕 릴리안의 부탁을 받고 하는 일이라고!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잡아 죽여달라고 헥셀에 부탁했단 말야! 게하는 테이시아라는 희생양을 내걸어 내부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고, 헥셀 또한 테이시아라는 걸출한 위인을 죽여 국가적 자부심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있을 법한 정략이지?"

 "개소리."


 베르나데트가 우산 뒤에서 뛰쳐나와 솔라의 목을 향해 칼날을 휘두른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아니, 지난 아홉시간 동안 지긋지긋하게 보았던, 예상하는게 전혀 불가능한 평소의 베르나데트였다. 솔라의 앞머리가 잘려 떨어진다.


 "큭!"


 솔라는 허둥지둥 뒤로 몸을 물린다. 그는 베르나데트가 다시 방어태세를 취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너무 말이 많았다.

 게하의 여왕이 적국인 헥셀에 정치적 요구를 했다는 사실이, 그것도 자국의 기사인 테이시아를 죽여달라는 암살의뢰를 했다는 사실이, 베르나데트에게는 진실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베르나데트의 마음 속에 일어난 망설임이 사라지고 말았다.


 "와, 씨발. 진짜 미친개한테 물렸네, 이거."


 솔라는 이를 악물며 웃었다.


 "테이시아를 죽이는 공적은 다른 녀석이 가로채가겠구만."


 이 이야기는 이전의 아홉시간, 그리고 앞으로 열다섯시간.

 솔라와 베르나데트가 대치하는 총 이십사시간 동안,

 

 릴리안에게 순찰 임무를 받고 분쟁지대로 온 기사 테이시아 크래프트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테이시아 크래프트로 오해당한 기사 마가렛에게 일어난 일이다. 이 이야기는 아홉시간 전, 마가렛이 수녀들의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파괴된 변방지대를 망연히 배회하고 있던 그 시점에서 시작된다. 






[계속]

 



--------------


이야기 전개상 헥셀 애들이 완벽하게 악역으로 나오는 이야기야. 나의 헥셀은 이렇지않아~라는 생각이 들어도 이야기 전개상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