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137kg였다


외백부는 말을 개씨발 ㅈ같이 하는 내로남불 개병신 쓰레기새끼였다. 말만 개ㅈ같이 하면 모르겠는데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어른 같지 않은, 나이를 똥구녕으로 처먹은 인간이었다.


외조모가 건강 악화로 쓰러지셨을때 치매가 있으신 외조부를 요양원에 모셔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이 새끼는 구태여 직접 모셔야한다면서 지랄을 떨었다. 수만가지의 추잡스러은 이유가 있었지만결국은 상속재산 욕심에 눈이 먼 병신이 으악대며 고집을 부린 탓에 결국 외조부를 직접 케어하게 되었다.


내 어머니는 형제 중 외가에서 제일 먼 거리인 1시간 거리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년을 넘게 외조부 댁에 매주 화요일 수요일을 나가서 일을 하셨다.


문제는 외백부 새끼가 일월을 나오는데 집안일이 제대로 되어있던 적이 그 긴 시간동안 단 한번도 없었다.


외조부가 지린 똥오줌으로 집에서 나는 악취, 엉망인 집안꼴, 쌓인 빨래, 비어있는 반찬통.


어머니는 각종 반찬에 매운걸 못드시는 외조부를 위해 백김치도 직접 해서 들고 다니며 외조부를 보필했지만 걸어서 10분거리에 사는 그 새끼는 끼니 때만 와서 시리얼만 챙겨드리는게 전부였다.


어머니는 생색 한번 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너무 지치신 어머니가 힘듦을 토로 했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거 김치가지고 되게 생색내네. 그깟 김치 사먹으면 되지.


찢어죽이고 싶었다.


힘도 약하신 어머니가 5kg남짓한 김치통을 들고 나가는 날이면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 나날이 반복되던 중 결국 외조모가 돌아가셨다.


난 외손주로써 상주역할도 안 해도 돼고 개입을 좀 덜해도 되지만 어머니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이니 만큼 장례식에서 부던히 일을 했다. 그게 효도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조문객도 내가 맞이하고 테이블 돌면서 조문객들 음식 모자란거 챙기고 식수도 관리하고 정산도 하고 운구도 직접했다.


하지만 그 씨발새끼가 마지막날 부줏돈을 정리하며 한 말이 내가 살면서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ㅈ같았다.


이야 이번 장례 때 헬붕이가 진짜 고생 많았어! 그 뚱뚱한 몸으로 어떻게 쉬지 않고 움직이냐


그 놈 자식 새끼들도 나만큼 쩠으면 쪘지 덜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새끼 아내인 외숙모와 큰딸과 막내딸은 장례식 내내 처먹고 자는게 일과였고 둘째인 장손은 조문객과 맞절하는게 전부. 장례식 후에 남은 음식들은 조문객이 전체 중 10%도 안되는 그 새끼들이 모두 알뜰히 챙겨갔다.


지 새끼들은 그 모냥 그 꼬라지면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지만, 내가 살찐 몸이라는건 팩트였다.


미러링으로 지 자식 새끼들 욕도 해줄 수 있었지만 이미 개판인 장례식을 더 망치고 싶지 않아 속으로 삼켰다.


클라이맥스는 화장터에서 일어났다.


운구를 마치고 외조모의 화장이 진행 중일때


이모의 아들인 사촌형과 담배를 태우다가 담배가 떨어졌다. 근처에 편의점이 없었는데 마침 멀리서 담배를 태우는 그 새끼의 모습을 본 형이 가서 담배 한 대를 부탁드려보자고 하길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실수였다.


예의라고는 밥 말아먹은 새끼가 그 상황을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말한것이다. 백부에게 담배 달라는 싹수 없는 놈이라고.


어머니는 내 평생 본 모습 중 가장 화를 내셨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딴 새끼한테 싹수없는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내 엄마 안치되는 날 이런 소리를 들어야겠냐면서.


난 그 뒤로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난 장례가 끝나자마자 계약직으로 다니고 있던 학교 교직원들 그만두고 헬스 관련 공부를 미친듯이 하기 시작했다.


칼을 간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몸무게 75kg 체지 11%까지내리는데 성공했고 3대는 440을 달성했다.


옷을 대충 걸쳐도 운동한 새끼라는 표가 났다.


운동 외에도 직종 변경을 위해 시작한 자격증 공부도 성공적으로 마쳐 지금은 괜찮은 중견기업에 입사가 예정되었다. 최소 석박사인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았지만 임원 면접 때 얘기한 다이어트가 꽤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고 짐작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결국 외조부가 돌아가셨다.


항상 혼자 돌아가시기를 두려워하셨던 외조부는 일요일 아침에 외가에 들른 그 새끼에 의해 싸늘한 모습으로 발견되셨다.


의사 진단으로는 심정지가 된지 오래 되어 피가 몸 한쪽으로 고여있을만큼 오랜 기간이 지났다고 했다.


진작 요양원에 모셨다면 임종이라도 지킬 수 있었을텐데.


그 새끼가 외조부를 혼자 돌아가시게 만들었다.


한껏 고양된 분노를 끌어안고 그 새끼를 대면했다.


담배를 하도 피워대서 이빨이 다 빠지고 50kg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새끼를 보니 기운이 다 빠졌다. 진짜 툭 치면 죽겠거니 싶은 몸뚱아리였다.


반면 그 새끼는 날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지 자식 새끼들은 여전히 뒤룩뒤룩한 취준생 그대로인데 내가 역변한 채 나타났으니 당연했다.


외조부의 장례는 외조모 때보다 훨씬 더 정성을 다 했다.


조문객들도 대부분 우리 가족이고 응대도 대부분 우리 가족이 했지만 우리 가족 중에서도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일했딘. 사위이신 아버지가 응대로 바빠 내가 사흘 내내 빈소 앞을 지켰다.


이 새끼는 외조모 장례 때 담배처럼 뭔가 트집이라도 잡고 싶었는지 그 새끼가 부른 개독새끼들이 와서 성가 부를때 우린 참여하지 않은 걸로 나한테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깟 10분도 앉아있기 어렵냐면서.


대꾸할 가치도 없어 잠자코 있었는데 그 새끼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난 너네 손님들 오면 다른데 있다가도 달려와서 맞절했잖아!!


진짜 어이가 없어서 욕도 안 나왔다. 그저 조용히 대꾸했다.


아니, 상주시잖아요.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나도 인지부조화가 왔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욕지거리를 먹은 이모도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내 아들 온 손님들 오래 있는다고 욕했다며! 상가집에서 오래 있어주는게 욕할 일이야!!


이러는 그 새끼 자식들은 본인 손님이 오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술까놓고 먹는게 일이었다.


할 말이 없는지 그 새끼는 날 보고 나쁜 새끼라며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똑같이 부줏돈 정산하는 시간. 어김없이 그 새끼는 이번에도 날 걸고 넘어졌다.


이번에도 헬붕이가 고생 많았다, 살도 쫙 빼고 몰라보겠다.


난 이번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번에 살쪄서 고생 많이한 건 맞아서 좀 뺐죠. 안 어려웠어요. 이번엔 저보단 백부 아들딸들이 육중한 몸 갖고 상 치루느라 고생많았죠.


그 새끼 얼굴 시뻘게져서 뭔말을 하려길래 한마디 더했다.


술마시고 먹느라 고생많았죠. 그죠? 하긴 그 몸뚱아리 유지하려면 그 정돈 먹고 뒹굴어야지. 그건 제가 제일 잘 알죠.


그 뒤로는 온갖 쌍욕이 날아들었지만 그때부턴 어른들이 모두 그 새끼 까기 시작했고 그 새끼는 일방적인 비방을 못 견디고 가족들과 런쳤다.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날 나무랐지만 말 뿐이었고 나중에는 잘 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운동의 이유가 저마다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이랬다.


그 새끼 악행을 모두 담으면 헬챈 내 최장의 글이 될거라고 자부하지만 요점은 그게 아니기에 이쯤에서 글을 줄인다.


모든 헬붕이 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운동을 시작했던, 결과는 찬란히 빛나리니.


모두 포기하지 말고 정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