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중천에 떠 창문 밖 적벽돌을 때리고는 좁은 골방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나서야 눈을 간신히 떴다.

조찰히 늙지는 못한 노인들 주절대는 소리와 노숙자들이 빈 병 깨는 소리로 온통 차오른 빈촌의 옷장에서 눈을 부비며 일어난 나는 잠시간 문을 본다.

몇걸음 앞에 있을 문이 어쩐 일로 수천리 밖처럼 멀리 느껴진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내 눈을 떴을땐 오후였다.

나는 몇 약속들을 떠올리며 알약 몇개를 목구멍에 밀어넣고 의식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를 닦았다.

하품이 몰려나온다.


그러나 나는 몸을 펴 준비를 하고 이불 몇몇개를 묶어 보따리를 만든다.

보따리는 거인의 등딱지처럼 크고 무겁다.

나는 등딱지를 등에 지고 세탁방으로 발을 옮겼다.


세탁방은 사람 없이 조용히 낮은 기계음만이 깔려있었다.

동전과 지폐 몇 장을 기계에 밀어넣자 세탁기는 기계음을 쪼아대며 메뉴를 선택하라 재촉해온다.

나는 몇 번간 기본 또 기본을 누르고 이불을 밀어넣고 가까운 원경을 본다.

이유없이 넓은 통창으로 세탁방 이름만 간신히 가린 채 오전의 햇빛이 쏟아져들어온다.

새하얀 햇빛은 이글거리며 은색 찬란한 기계들과 찌뿌둥한 나의 몸을 서너번 늘럼 핥고는 검은 구름 너머로 용안을 숨기었다.

세탁기는 그래 움직임을 멈추고 기묘한 노래를 부른다.


물을 먹어 한층 무거워진 이불들을 꺼내 건조기로 옮기었다.

다시금 이름표 없는 시간이 흐른다.

정적ㅡ적벽ㅡ통창ㅡ햇ㅡ빛ㅡ바람과 흑운

만상이 비강을 타고 흘러내린다.

코피다.


코를 휴지 몇장으로 틀어막자 건조기도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보고있었다.

풍성해진 이불들을 들어올리자 알 수 없는 따뜻한 온기가 엄습한다.

대형견을 끌어안기라도 한듯

나는 솜이불 몇 장에서 미약한 생명을 느낀다.

오늘도 빈 삶에 약간의 정을 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