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같은 경우 1차대전 당시에는 오히려 타국보다 대구경/고중량 탄환을 선호하는 편이었음.

  이는 12인치 함포 개량 과정에서의 경험에 기반한건데, 드레드노트/벨레로폰의 12인치 45구경장에서 콜로서스의 12인치 50구경장으로 넘어가면서 탄의 중량을 그대로 두고 속도만 올려서 관통력을 늘리려 했던 시도가 썩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지 못했음. 그 결과 영국 해군 '탄이 가벼운 만큼 속도가 빨리 줄어드는 경량 고속포보다 같은 에너지일 때 탄이 무거운만큼 속도가 늦게 줄어드는 중량 저속포가 낫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13.5인치 45구경장과 15인치 42구경장을 연달아 개발하게 됨.


  그 결과 1차대전 당시 영국 전함 함포들의 철갑탄은 비슷한 구경의 타국 전함 함포들의 철갑탄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거워지게 됨. 얘를 들어 후기형 13.5인치들의 경우 철갑탄 중량이 635kg~639kg으로 타국 14인치 철갑탄(635kg)과 동일하거나 더 무거운 상황이었고, 가장 큰 구경인 15인치를 영국과 독일끼리 비교했을 때 871kg과 750kg으로 무려 120kg이나 영국쪽 철갑탄이 더 무거웠음. 당연히 탄속은 타국 함선들에 비해 떨어졌고, 심지어 2차대전 당시 미국의 초중량탄보다도 느린 752~757 m/s로 떨어짐.


  그러나 이런 선택이 아무런 대가 없이 다가온 것은 아니었음. 유틀란트 해전때까지 영국해군 전함들과 순양전함들은 독일측에 비해 낮은 연사속도를 보여줬고, 심지어 설계 당시의 교범 장전속도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음. 결국 일부 함선들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교범 장전속도라도 지키고자 포탑 안에 탄을 미리 적재해놓는 선택을 했고, 이는 유틀란트에서 포탑의 흔한 유폭이라는 재앙적인 결과로 다가왔음. 여기에 느린 탄속으로 인한 불안정성과 독일 해군보다 밀리던 영국 해군의 사격통제까지 겹쳐 영국 해군 함선들은 독일 함선들을 협차하는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음.



  결국 1차대전이 끝나고 다시 한번 건함 건조 경쟁이 시작되려 할 때 영국 해군은 차기 전함들의 주포를 평범한 중량의 고속포로 바꾸기로 결정함. 18인치로 정해진 차기 전함들의 주포는 1.3t가량의 철갑탄을 823 m/s의 속도로 날려보낼 수 있어야 했고, 16인치로 정해진 차기 순양전함들은 929kg의 철갑탄을 823 m/s으로 보낼 수 있어야 했음. 그러나 해군군축조약에 조인함으로써 18인치를 장착한 차기 전함은 나가리 되고, 16인치를 장착한 순양전함은 16인치를 장착한 전함으로 축소되어 단 2척만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고, 그나마도 주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김. 첫 사격 테스트에서 16인치 Mark I 함포가 823 m/s의 고속을 버티지 못하고 강선이 순식가에 마모되는 문제점이 발견된거임. 만약에 시간 여유가 넉넉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겠지만, 해군군축조약에 따라 영국은 1930년 이전에 넬슨과 로드니를 취역시켜야 했고, 결국 주포의 문제점을 해결할 시간적 여유가 없던 영국은 탄속을 788~797 m/s로 줄인 채 사용하기로 결정함.


  이는 전간기 내내 영국이 제시한 고중량 저속탄의 개념을 이어간 일본과, 초창기부터 계속해서 저중량 고속탄의 개념을 이어가고 있던 미국만도 못한 저중량 저속탄을 사용해야 했음을 뜻함. 그리고 2축 추진에서 오는 심각한 선회능력 문제와 22노트의 저속으로 인한 함대기동 불가는 영국해군이 1930년대 말에 넬슨급의 운용목적을 함대 기동에서 지상 화력지원으로 전환했고, 이는 넬슨급의 대함 화력 개선이 될 일이 없었던 것을 의미함.



  영국의 마지막 전함 주포 개발시도에서조차 시간과 예산은 영국의 편이 아니었음. 주요 견제 대상이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은 특정 해역에서만 영국 해군을 상대하면 되었고, 기존에 보유한 전력이 적기에 신규 전함과 그 함포를 연구할 예산에 여유가 있었고, 기상 악화가 잦아 레이더로도 원거리에서 적함을 찾기 힘든 당시의 대서양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고중량 고속탄을, 불가능하다면 경량 고속탄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하여 선회함. 반면 영국해군은 이 셋을 모두 견제할 수 있어야 했고, 북해/대서양/지중해 모든 곳에서 작전해야 했고 기존에 보유하던 15인치 구형전함들의 유지보수 역시 대규모로 예산이 들었기에 상대적으로 신형전함의 연구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고, 이에 1차대전 당시에 설계한 함포들을 최소한의  현대화만 한 채로 사용하는데 만족해야 했음.


  KGV급의 14인치 45구경장 MK VII는 1차대전 이전 영국이 해외 수출 전함을 위해 만든 14인치 45구경장 MK I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주포의 경우 경량화에 성공했지만 탄환의 경우 길이가 늘어나며 2kg이 증가한 대신 탄속이 5 m/s가 떨어지면서 사실상 1차대전 당시 철갑탄과 운동량과 탄도특성에서 차이가 없다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해야 했음. 물론 영국도 이게 정상인 상태는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14인치 45구경장과 15인치 42구경장 용으로 탄속을 늘리기 위한 슈퍼 차지를 개발했지만, 경량화에 목숨건 함포(14인치 45구경장)과 1차대전 당시의 틀딱 함포(15인치 42구경장)에서 슈퍼 차지를 사용할 경우 포신 마모가 빨랐기에 교체가 쉬운 지상 해안포에서밖에 쓸 수 없었음.


결론 : 지상에 티거 II에게 덤비던 T-34가 있다면 해상에서는 프/이/독 전함에 덤벼야 했던 영국 전함이 있다. 둘 다 기본 성능은 그래도 갖춘 채 물량으로 이겼잖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