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머통령 제퍼슨가카께서 이런 작은배를 여러대 만들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배를 확보할 수 있고 수의 이점을 살려서 미국 해안을 모두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컨스티튜션같은 프리깃 건조비가 30만 달러가 넘었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고 따라서 각함당 건조비가 5천달러밖에 안되는 이놈들로 지키면 매우 효율적이라 생각한 것이였다.

문제가 있다면 프리깃의 가격은  이놈의 6배였지만  화력은 40배가 넘었고 이놈도 건조비가 상승해서 각각 만달러나 나왔다는 것이였다.

다른 문제라면 이놈들로 대서양을 건너라 한것이였다.

이 건보트들 중 7호 건보트는 대서양 횡단도중 마스트가 부러져 6일만에 돌아왔고 승조원 85퍼센트가 항구에 돌아오자마자 탈영하기도 했다.

이 함급은 미영전쟁때 탈탈털리면서 완전히 실패했다는것을 휼륭히 입증하게 됐고 그 뒤로 미국에선 청년학파가 등장하지 않았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