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만치가 실제로 비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와 함께, 거기에 투입된 신기술들은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너무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2003년 당시 테스트에 따르면 코만치의 설계 중에서 임무 관련 장비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통합 및 시험, 중량 경감, RCS, 안테나 성능, 기총 시스템 성능, 목표 탐지 지원 알고리즘 성능 분야에 심각한 기술적 문제가 남아 있었다. 다른 모든 건 괜찮았다. 항전장비, 소프트웨어, 무기체계, 엔진, 중량 문제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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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당시 미 육군은 1996년부터 코만치를 획득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1997년이 되었음에도 미 육군에는 코만치가 없었다. 2001년 10월 9일자 와이어드 잡지의 데인저 룸 블로그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분쟁이 내년까지 계속된다면(!) 2002년 초부터 도입될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헬기이자 세계 최초의 스텔스 헬기인 코만치가 실전에 투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것처럼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다음 해에도 이어졌고, 쭉 이어졌다. 하지만 코만치 생산은 2005년에서 2006년으로 미뤄졌고 1,200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은 더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코만치는 너무 늦게 나왔고 완성되지도 못했다.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지 못했지만 최악은 따로 있었다. 당시 코만치 프로그램은 미 육군 항공대 예산의 40% 이상을 소비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고, 결국 2004년 미 육군은 거기에 들어갈 돈 대부분을 무인기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https://nation.time.com/2012/05/25/real-lessons-from-an-unreal-helicopter/



첫 코만치 시제기는 소련이 붕괴하고도 5년이 지난 뒤인 1996년 1월에 첫 비행을 했다. 냉전 도중에는 스텔스 헬기에 대한 수요가 있었지만 충분한 기술력을 갖춘 거대한 지정학적 악당이 사라진 시점에서 코만치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투성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코만치의 성능은 상당히 진취적이었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맨 처음 나온 것들에 으레 문제가 생기는 것마냥 개발 비용이 초과되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차질이 생기고야 말았다. 코만치는 무장을 실은 상태로 이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예상보다 너무 무거웠는데, 이건 그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코만치에 탑재될 예정이었던 모든 체계에서 문제가 다발했다. 소프트웨어의 버그는 처리하기 어려웠으며 수정하는 데 돈이 굉장히 많이 들었고, 3연장 개틀링 기관포는 생각했던 것처럼 정확하지 않았으며 목표 탐지 체계는 요구했던 성능에 미달했다. 또한 T800 터보샤프트 엔진을 경량화하면서 출력을 높이려는 시도 역시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충분한 예산과 시간이 있었더라면 해결될 수 있었겠지만 미국은 코만치가 그동안의 과대광고에 부응하는 헬기가 되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결국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은 향후 수십년 간의 국방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었고, 이듬해부터 미국이 대테러전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미 육군은 코만치 주문량을 반토막냈다. 그로부터 2년 뒤 코만치 프로그램 자체가 취소되어 버렸다.


그렇게 수십 년의 시간과 7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들어간 코만치 프로그램은 비행 가능한 시제기 2대만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https://www.businessinsider.com/the-comanche-stealth-helicopter-that-never-was-2021-1


럼스펠드가 취소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근 20년간 동정표를 받고 있을 뿐인 와꾸원툴 바보병신 헬기였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