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제 6보병사단 '청성'부대 마크


이들이 얼마나 빨갱이를 잘조졌는지 압축하여 보자


김종오 장군이 이끌던 6사단 시기

춘천전투 - 말이 필요한가, 춘천을 우주방어한 덕에 강릉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지만 상륙후방공격 러쉬로 퇴로가 차단당한 이성가 장군의 8사단이

                  대관령으로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고 북괴 1개 군단을 저지함

동락리 전투 - 공격하던 북괴 15사단을 역으로 기습하여 승리

영천전투 - 이때 돌파당할뻔했던 낙동강 방어선을 인천상륙작전까지 방어하는데 성공하고 이때 돌파하였던 북괴 15사단을 포위하기까지함

북진 때 - 초산까지 도달하여 백두산 물을 떠서 이승만에게 선물함


장도영 장군이 이끌던 6사단 시기

이때는 1951년 4월 사창리전투로 국군 6사단이 패주하여 그 이전의 명성이 다 바닥을 쳤음 그러나

용문산 전투, 파로호 전투 - 1951년 5월 짱개 3개사단에 맞서 방어하는데 성공하여 역으로 미군과 함께 반격으로 전환하여 짱개 2만여명을 화천호 

                                          호수에 수장시켰다. 이에 이승만이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화천호를 오랑캐를 물리쳤단 의미로 '파로호'라는 이름 부여함

                                          여담으로 파로호 전투 이후 짱개가 방어에 실패를 했다면 역으로 모든 짱개와 북괴가 포위섬멸당해서 다시 북진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한 전투였다.


추가로 1951년 5월, 이 한달 간 중공군 5월 공세에 맞서 방어하고 반격에 나섰던 국군 6사단 손실은 1000명도 안나오고, 짱개는 2만여명을 분쇄시키는 큰 전과를 세웠다. 그리고 6사단이 크게 얻어터지고 용문산 전투로 설욕 중이던 1951년 5월, 국군은 현리 전투에서 대참패해서 군단이 해체되어버리는 굴욕이 있었다.


6.25전쟁을 잊지말고자 6.25전쟁 개전부터 방어에 성공하여 지금까지 철원을 지키는 6사단의 간단역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