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날아오를거야

1950년 여름, HMS 트라이엄프, HMS 유니콘, HMS밸파스트가 포함된 왕립 극동함대 제1 항모전단는 일본을 출항해 노후화된 시파이어와 파이어플라이를 교체받기 위하여 홍콩을 향하던 중이였다. 


“6월 29일 미해군의 조이 중장 휘하의 7함대와 합류”


안타깝게도 유니콘은 함재기 정비소로 사용하고 있던 터라 7함대의 밸리포지, 1항전의 트라이엄프만이 동방의 작은 국가를 위해 출항한다. 

물론 옆나라의 최신형 항모는 팬서 제트기를 80기나 날리는 방면 경항모인 콜로서스급은 구닥다리 프롭기 24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좋은 정장이 신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거늘. 능서불택필. 그렇게 7월 3일, 12기의 시파이어와 9기의 파이어플라이가 하늘로 날아오름으로써 한국을 위한 영국의 여정이 시작된다. 


해주의 비행장에 로켓런을 하며 두 기의 약9를 격추하고, 또 다음날, 그다음날도 출격에 출격을 반복했다. 결국 트라이엄프의 하루 소티는 전투항공정찰(CAP) 27회, 대잠순찰 10회의 정신나간 회전률을 보여줬다. 

이때 기체에 가해지는 피로가 너무 심해 동체 외피가 쭈글쭈글 찌그러졌지만 그냥 두들겨 펴서(?) 계속 출격을 했다고 한다. 물론 철수하고 검사받으니 결과는 모든 기체 그라운딩..


씨 오터 수상기는 복엽에 느리고 구식에 거대해서 북한군의 미그기한테는 한 끼 식사는 무슨 손가락으로 소금 찍어먹는 수준이였는데, 트라이엄프의 익수자 구조반은 씨 오터를 끌고 거친 원산 앞바다에 불시착한 미해군 파일럿을 구출해내기도 했다. 조종사도 어지간히 급했는지 착수할때 충격이 너무 커 한 쪽 플로트는 뜯겨나가고 파도가 집채만하게 났다고 한다. 이 외에도 철수하기 전까지 수많은 수색구조작전을 하던 수달이였다. 


하여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가 어찌 이렇게 진심으로 도움을 줄까. 아니면 그저 거문도 시즌2였을까? 나도 몰?루 하지만 그건 확실하다. 홍차놈들이 없었더라면 전쟁이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아래는 70주년 보리슨상님의 연설이다

“70년 전 파이어플라이와 시파이어들이 HMS 트라이엄프에서 출격하며 한국전쟁에서의 영국의 첫 개입을 알렸습니다. 종전선언이 있기까지 8만여명의 영국군이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싸웠습니다. 천여명 이상은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죠. 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보면 그들의 희생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한국의 평화로운 성공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억해줍니다. 그리고 영국은 한국과 함께할 것입니다. 70년 전에도 그랬듯이 말이죠.”


https://youtu.be/o6ZvylOSy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