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던 격동기였지만 그 중에서도 냉전 초기 미 해군항공대의 전술기 라인업은 정말 볼만함. 거두절미하고 설명하자면 일단 1950년 6월 25일 시점에서 미 해군이 보유하고 있었던 제트 전투기들 중 가장 좋은 건 밑의 둘이었음


F2H-2 밴시: 1949년 3월 배치


F9F-5 팬서: 1949년 5월 배치


같은 해에 소련이 이미 MiG-15를 배치했던 걸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수준이었지만 사실 똑같이 49년에 배치된 세이버 초기형도 기체 성능만으로 따지면 MiG-15의 적수가 될만한 성능이 아니었음. 보다 본질적으로 파고들어간다면 전후에 프롭 제트 안가리고 항공기 개발에서 열심히 죽을 쑤고 있었던 소련이 MiG-15를 그렇게 빨리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에는 제트엔진을 안일하게 팔아넘긴 영국의 공이 상당히 크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긴 해야겠지만은


아무튼 밴시나 쿠거나 등장 시기를 감안할 때 그렇게 뛰어난 성능이라고 보긴 어려웠는데, 이건 40년대 말 시점에서 미 해군의 함재기에 대한 관심사가 항모전단을 폭격기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함재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대공 성능을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했던 것 때문임. 그래도 전쟁이 터진 시점에서 미 해군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고, 무엇보다 당시 북한 공군의 지리멸렬한 전력으로는 UN군의 항공력을 어떻게 해볼 수 없어서 1950년대 중후반까지는 이렇다할 적수가 없었음


하지만 당시 극동에 배치되어 있었던 UN군의 그 어떤 전술기보다도 강력한 MiG-15가 11월부터 한반도에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확 달라지게 됨. 물론 동구권 조종사들의 숙련도가 대체로 떨어지는 건 7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미 공군을 상대했을 때 교환비에서는 한참을 밀렸고 심지어 세이버도 아니고 팬서(공식기록상으로는 슈팅스타)와 교전을 벌였다가 제트기간 공중전에서 격추된 세계 최초의 전투기라는 수치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쥐기까지 했지만 결과야 어찌되었든 MiG-15가 종합적으로는 더 고성능이라는 점은 분명했음. 특히나 팬서는 직선익이었기 때문에 속도 면에서 한계가 명확했고, 그 때문에 미 해군은 후퇴익 함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됨



사실 미 해군이라고 후퇴익기에 관심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던지라 1945년부터 개발에 착수해서 1948년 9월에 첫 비행에 성공한 커틀러스가 있었음. 다만 생김새답게 당시로서는 매우 도전적인 설계였기 때문에 개발이 그렇게 순탄하지 못해서 시제기 3대를 사고로 싸그리 날려먹고 초도생산분 F7U-1 몇 대를 테스트에 써먹어야 했을 정도였고, 결국 양산형인 F7U-3은 전쟁이 끝난지 한참 뒤인 1954년 4월에야 배치가 이루어졌고 그마저도 문제가 많았던 탓에 어마어마한 비전투 손실을 겪고 아주 빠르게 퇴출되어 버림



또 다른 시도는 미 공군의 F-86E 세이버를 함재기로 개량하는 거였음. 원래 세이버는 함상 운용을 상정하지 않은 공군기였지만 의외로 팬서보다 착함 속도가 낮았고 후퇴익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직선익기들에 비견될만한 저속 조종성과 스톨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군은 시제기인 XFJ-2B 퓨리가 처음 뜨기도 전에 300대를 미리 주문할 정도로 여기에 큰 기대를 걸었음. 퓨리는 1951년 12월 27일에 첫 비행을 했고 52년 10월부터 12월까지는 USS 코럴 시에서 함상운용 테스트를 거쳤는데, 원래 지상용인 전투기를 함재기로 뜯어고친 여파인지 저속 조종성이 좋지 않았고 테일후크와 노즈기어의 강도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드러남. 해군은 이 문제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무게가 500 kg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함상 운용에는 적합하지 않은 기체임이 드러나자 해병항공대로 떠넘겨졌고, 이 퓨리들은 지상에서만 운용되다가 생을 마감함


게다가 그마저도 한반도로 보낼 더 많은 세이버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산이 지지부진해서 1953년 말까지 단 7대만 도입되는 게 고작이었음




한편 FJ-2 개발 중에는 기존 J47 엔진보다 추력이 28% 높은 영국산 사파이어 엔진(J65)을 사용하는 버전도 계획되고 있었음. FJ-3으로 명명된 이 개량형은 한국전쟁이 다 끝나가던 1953년 7월에 첫 비행을 했고 1954년 9월부터 해군에 배치되기 시작해서 1955년 5월 함상 운용을 시작함. 이것도 엔진의 신뢰성 문제가 있었지만 해군은 적어도 FJ-2보다는 낫다는 점에서 만족했고 이후 1962년 9월에 완전히 퇴역함. FJ-3을 재설계한 FJ-4는 전폭기 버전으로도 개량되면서 60년대 말까지는 쓰였음



커틀러스는 총체적 난국에다 FJ-2는 항모에서 띄우지 못하는 골때리는 상황에 미 해군이 그나마 빠르게 획득할 수 있었던 후퇴익기는 F9F-6 쿠거였음. 쿠거는 기존 팬서를 후퇴익기로 개량한 것이다보니 1951년 개발에 착수해서 몇 달 만에 첫 비행에 성공하고 이듬해 중순에 배치를 시작함. 항모비행단에서는 52년 말부터 쿠거를 운용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이 쪽도 공중전을 치룰 기회는 없었음. 이후 1954년 개량형인 F9F-8이 나왔지만 2년 뒤에 데몬, 타이거, 스카이레이가 등장하고 그 다음 해에는 크루세이더가 배치되면서 완전히 구식화되어 1959년을 마지막으로 일선 비행대에서는 자취를 감춤



1952년 5월에는 그루먼에서 개발한 가변익기인 XF10F 재규어가 첫 비행을 했었지만 이 쪽은 53년 4월에 개발이 취소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짐


이렇듯 50년대 초반 미 해군은 더 좋은 함재기를 위해 정말 할 수 있는건 모두 다 해봤음. 다만 현실의 벽이란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서 성과가 녹록찮았던 것 뿐임



그 벽이 1950년대가 끝나기 전에 무너지리라고 그 누가 상상을 했겠냐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