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출신이라 해군용어 잘 모름


LHD-6 본험 리처드는 1998년에 미 해군에 인도된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중 3번함으로, 사세보항에 주둔하며 태평양 지역 작전을 담당하던 함선이였으며 세월호 참사 당시 서해로 급파되어 구조활동을 벌였던 배이기도 함.





2020년 7월 13일 월요일 오전, 샌디에이고 항에 정박하여 한창 오버홀을 받고 있던 본험 리처드함의 하부 수송갑판(주갑판 기준 지하 3층)에서 원인 미상의 작은 화재가 발생함. 오전 8시 10분경 상부 수송갑판을 지나가던 수병이 하부 갑판에서 올라오는 흰 연기와 타는 냄새를 목격하였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사건을 지휘 체계에 보고하지 않았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수병이 이 연기를 발견했고, 그제서야 이 정체불명의 연기와 냄새에 대해 갑판사관에게 보고가 들어가게 됨. 함 전체에 화재경보가 내려진 시간은 화재가 처음으로 발견된 지 20분이나 지나서였음. 수병들이 보고를 지체했던 이유로는 당시 오버홀 때문에 함내에 들여왔던 디젤 발전기 등과 같은 공작기기들이 각종 매연과 연기를 심심하면 내뿜고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꼽혔음.


본험 리처드함의 당직사령(CDO)이 화재에 대해 알게 된 건 첫번째 화재경보가 울린 다음이었음. 수병들이 주섬주섬 화재진압장비를 챙겨 입는 것을 본 당직사령은 관사에서 쉬고 있던 함장에게 전화도 아니고 문자로 연락을 취함. 당직사령은 함장 외에도 기타 상급 장교들에게 문자로 사건에 대해 알렸고, 비록 해당 장교들이 모두 몇 분 내로 문자를 읽었다고는 하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문자를 보낸 당직사령의 행위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음.


한편 함내에서는 화재 경보가 울린지 무려 30분이 지났을 무렵까지도 아무런 진압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음. 본험 리처드함은 상술했던 대로 오버홀 중이었기 때문에 화재 진압 시스템이 꺼져 있거나 작동이 불가능한 구획이 많이 있었는데, 문제는 탑승한 수병 및 장교단 중 아무도 어디의 어느 시스템이 작동 중인지 몰라 수병들이 함내에 있는 소화용 급수장치에 호스를 꽂고 밸브를 열어 물이 나오는지의 여부를 일일히 확인하고 있었기 떄문임.


한편 오전 8시 30분에 미 해군 소속 샌디에이고 항 기지 소방대가 본험 리처드함이 정박중이던 2번 부두에 도착함. 놀랍게도 이들은 본험 리처드함에 승선하고 있던 승조원들이 불러서 온 게 아니라 기지에서 일하던 다른 사람들이 배에서 연기가 난다는 제보를 하여 출동한 것이었음. 어쨌든 소방대가 도착했으니 이제 승조원들과 힘을 합쳐 화재를 진압해야 했지만, 본험 리처드함의 당직사령은 하필 이 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직사령직을 맡아본 날이었기 때문에 현장에 필요한 리더십과 통솔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음. 당직사령에게 상황을 물어본 소방관들은 쓸모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고, 결국 수병들과의 협조 없이 소방대 자체적으로 화재 진압을 시작함. 당연히 배에 타본적이 없는 소방관들은 함내 구조를 제대로 몰랐고, 굉장히 비효율적인 경로로 소방호스를 설치하는 등의 삽질을 거듭하고 있었음. 설상가상으로 겨우 함내에 진입하여 화재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기지 소방대가 사용하는 소방호스와 미 해군 함선이 사용하는 소화전이 호환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림. 


오전 9시 5분, 화재 발생 1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제서야 문자를 받은 본험 리처드함의 함장(CO)이 2번 부두에 나타남. 그리고 그때쯤 기지 소방대의 협조 요청을 받은 민간 소방대도 현장에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음. 그런데 기지 소방대와 민간 소방대의 무전기가 호환이 되지 않아 원활한 통신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소방대원들은 핸드폰에 의존하여 모든 통신을 처리하며 서로 독자적으로 진압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음. 당직사령이든 함장이든 누군가가 나서서 총지휘를 해야만 이 상황을 간신히 수습할 수 있었겠지만, 사후 조사에 따르면 해군 장교단을 비롯하여 기지 소방대와 민간 소방대 인원 중 어느 누구도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함.


오전 9시 15분 화재에서 나오는 연기가 거세지자 함장과 장교단은 함내 수병들 중 호흡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인원은 모두 대피하란 지시를 내렸고, 9시 30분경 연기가 더욱 거세지자 아예 총원 퇴함 명령을 내림. 이제 배 안에는 기지 소방대와 민간 소방대 인원들만 남게 되었음.


이쯤 되자 하부 수송갑판에 머물러 있던 불이 상부 수송갑판(주갑판 기준 지하 2층)까지 번지기 시작함. 소방대원들은 45분간 치열한 사투를 벌였으나 전혀 진전이 없었고, 10시 30분이 되자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이 거세진 것을 확인한 소방대 측 지휘부는 더 이상 인력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함을 직시하고 전원 철수명령을 내림. 그리고 이는 옳은 결정이었음. 마지막 소방대원이 배를 떠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10시 50분경 함내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임. 2번 부두는 폭발로 인한 잔해들로 뒤덮였고, 결국 수병들과 소방대원들은 2번 부두 자체를 비울 수밖에 없었음.


화재가 자연 진화된 시점은 화재 발생 4일 후, 배 안의 모든 알루미늄 구조물을 녹여버리고도 남을 시간이었음.



화재 이후 조사에서 미 해군은 이를 고의적인 방화 사건으로 단정하고 소여 메이스 일병을 주요 용의자로 입건함. 미 해군이 내세운 증거는 메이스 일병이 화재가 처음 발생한 지점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으며, 네이비 실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것이 동기로 작용했다는 것이었음. 그러나 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미 해군 군사법원은 어떠한 물적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 메이스 일병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증인의 말이 계속 바뀌어 신빙성이 훼손되었다는 점을 들어 증거 불충분으로 메이스 수병에게 무죄를 선고함. 현지 언론은 미 해군 상층부가 만만한 수병에게 이 대참사의 책임을 홀랑 뒤집어 씌우려다가 실패했다는 걸 정론으로 삼고 있음. 메이스 일병과는 별개로 미 해군은 본험 리처드함의 함장, 당직사령 등 승조원 20여명에게 책임을 물어 자체적으로 크고작은 처벌을 내렸다고 함.


추가 조사 결과 오버홀 기간이 19개월을 넘어가면서 오버홀 중 전입온 신병들이나 장교들은 배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몹시 떨어졌다는 사실이(=배 고치느라 기초적인 교육을 제대로 안 시켰다는 것이) 드러났고, 기지 소방대 역시 장비 호환 문제와 기본적인 함선 구조도 제대로 몰랐다는 점이 지적 사항으로 떠올랐음.


결국 수리비가 신규 건조 가격을 초과해버린 본험 리처드함은 허무하게 스크랩 당하는 걸로 함생을 마무리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