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108은 당대 파일럿들과 후대의 게이머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 탄속과는 별개로 기관포 자체로서는 매우 성공적인 물건이었다고 할 수 있음. 20mm MG 151과 비교해도 무게 차이가 20kg도 채 나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1m 남짓한 작은 크기로 다양한 기종들에 장비할 수 있었는데다 구조도 비교적 단순해서 생산성과 신뢰성도 높았으며, 무엇보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폭격기를 깨부순다는 본래 목적에는 우수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일반적인 대구경 자동화기들은 지속적으로 사이클을 돌리기 위해 탄약이 격발될 때 발생하는 가스나 반동을 이용함. 그러나 MK108은 다소 이례적으로 30mm라는 대구경 기관포임에도 불구하고 블로우백 방식, 그 중에서도 API(Advanced Primer Ignition) 블로우백이라는 방식을 사용함.



기본적인 심플 블로우백 방식은 노리쇠의 질량과 내부 마찰, 스프링을 이용해서 탄피를 뒤로 밀어내는 가스압을 상쇄하고 탄두가 완전히 총/포신을 빠져나갈 때까지 노리쇠의 후퇴운동을 지연시킴. 블로우백 방식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화기들은 약실을 기계적으로 '잠글'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쌩 노리쇠 덩어리 자체만으로 약실을 폐쇄하는 역할을 하는데, 만약 노리쇠가 너무 빨리 후퇴해버리면 탄이 총/포구를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에서(=가스가 빠져나갈 통로가 없는 상태에서) 약실이 열려 사고로 직행하게 되므로 노리쇠가 충분한 질량을 지니고 있어야 함. 



그리고 이게 바로 위에서 말한대로 대부분의 대구경 자동화기들이 블로우백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인데, 구경이 커짐에 따라 강해지는 가스압을 견디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노리쇠의 중량이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높아지기 때문임. 20mm 기관포만 해도 심플 블로우백으로 작동하려면 노리쇠 무게만 수 백 kg 단위로 가는데다 그 노리쇠를 붙잡아야 하는 스프링에 가해질 부하와 연사속도의 저하를 생각하면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음.


MK108이 이용하는 API 블로우백은 기본적인 블로우백의 위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임. 노리쇠의 중량을 이용해 후퇴운동을 늦춘다는 골자는 동일하나 APIB의 경우 약실의 길이를 일부러 탄자보다 길게 만들어 노리쇠가 전진하고 있는 상태에서 탄약이 격발되게끔 함.(MK108은 전기 신호로 뇌관을 격발함.)노리쇠의 중량+전진운동의 관성이 가스압을 억제하면서 탄두가 포구를 빠져나갈 때까지 버티는 것으로, 노리쇠의 중량에 관성이 더해지므로 가스압을 견디는데 필요한 노리쇠의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있고, 심플 블로우백 방식보다 더 큰 구경의 화기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됨. 




다만 API 블로우백은 상술했듯 노리쇠의 무게, 스프링의 장력, 뇌관 격발 타이밍을 격발하는 탄의 중량을 고려하여 칼같이 맞춰야 했기에 구조적으로는 단순해 보일지라도 설계적으로는 정교한 조절을 요했음. 일례로 같은 API 블로우백을 채택한 MG FF 기관포의 경우 일반 고폭탄보다 더 가벼운(134g > 90g) 미넨게쇼스를 발사할 수 있도록 개량했더니 일반 고폭탄을 사용할 경우 노리쇠가 너무 빨리 후퇴해버리는 찐빠가 나서 MG FF/M 이라는 별도 명칭으로 구분을 해야 했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30mm 라는 대구경 기관포에 APIB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양자택일이 필요했음. 노리쇠의 무게를 늘리던가, 포신을 단축해서 탄두가 빠져나가는 시간을 줄이던가. 전자의 경우 노리쇠의 운동이 느려져 연사속도가 깎이고, 후자의 경우 탄도와 탄속에 악영향이 감. 그리고 독일은 애초에 폭격기 전용 오함마를 필요로 했던 만큼 과감하게 후자를 선택했음.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지금까지도 후대 게이머들을 조지고 있지만, 서두에 썼듯 이 덕에 MK108은 단순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은 연사속도와 강력한 포탄을 바탕으로 본래의 설계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함.







그런데 독일은 이조차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MK108을 개량하려는 계획을 꽤 오래 시도했음. 위에서 쓴대로 MK108은 스프링이 노리쇠를 앞으로 밀어내는 힘과 노리쇠의 질량/관성으로 후퇴운동을 억제하는데, 다시 말해서 이론상으로는 노리쇠가 충분한 시간 동안 버틸 수만 있다면 노리쇠의 무게를 줄여 더 빠른 연사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임. 대신 더 강한 스프링과 견고한 부품 재질을 요구했겠지만.



이건 옛날 포럼에 MK108 탄속 관련 버그리폿 근거로 제시된 라인메탈의 1944년 4월 13일자 보고서인데, 아래 문단 중 이런 내용이 나옴.


"시험적으로 연사속도를 분당 1,000발까지 높여봄. 아직 시험을 완료한건 아닌데 일부 부품과 탄띠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듯?"




1945년 2월 13일


"(MK108의) 연사속도를 분당 800~900발로 증가시키기 위한 연구가 시작됨."

1945년 3월 4일


"처음으로 MK108의 연사속도를 분당 600발에서 850발로 높이는데 성공함."






1945년 3월 5일


"노리쇠의 무게를 7.5kg으로 줄이고 스프링을 강화해서 연사속도를 분당 930발까지 증가시킴. (약실)폐쇄 능력이 약함. 연구 지속 중."



그리고 3월 8일에 이와 관련한 마지막 내용이 나옴.


"MK108의 연사속도를 기본 분당 600발에서 그 2배인 1200발로 증가시키기 위한 안을 아래에서 간략히 다룰 예정이다. 이러한 성능 향상에 대한 예상은 이미 성공적으로 연사속도를 분당 950발까지 증가시킬 수 있었던 점에서 기인한다.


API 구조 덕에 MK108은 다양한 연사속도를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노리쇠 무게를 11.5kg에서 7.8kg으로 줄임으로써 연사속도를 분당 600발에서 950발로 증가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무게 감소로 인하여 노리쇠의 속도와 운동 에너지가 증가하므로 스프링을 강화해야 했으며, 이는 또한 스프링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보아 분당 1200발의 연사속도는 확실히 달성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조건을 요한다.


1. 노리쇠의 무게를 11.5kg에서 5~6kg까지 줄이면 노리쇠의 내구성도 감소하기 마련이므로 더 우수한 재질로 제작하여야 한다.


2. 기관포의 구동부, 특히 급탄 레버와 스프링 등은 더 우수한 재료로 제작하더라도 수명 감소가 불가피하다.


3. 분당 950발로도 탄띠의 내구성이 한계에 달하고 있다. 더 우수한 철재의 사용이 필요하다.


4. 노리쇠가 스프링에 가하는 에너지가 증가함에 따라 무장 덮개에 가해지는 부담도 더 커진다. 더 좋은 재질을(이하생략)





대충 요약하면 기본 장비으로도 분당 850~950발 달성은 성공적으로 해봤는데 1200발까지 늘리려면 주요 부품 제작에 좀 더 좋은 재질의 철재가 필요하다는 내용임. 무슨 리볼버 기관포도 아니고 화력에 목마른 똘끼가 인상깊어서 가져와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