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내 학비 대겠다고


어느 프랜차이즈의 음식점 하나를 받아서


꾸려가시는데


진짜 난 성인이 되었는데도 그 정도로 지원하시겠다는 게 지치고 무안해서


몇 번이고 학자금 대출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말하는데도


기어코 가게를 여셔서


그래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베이커리 하나도 운영해보신 분이라


어떻게든 잘 될거라 생각했지


올해 내가 여름방학일 때 여셔서


하지만 어머니도 이미 50대인지라 매일 일하실 체력은 없으시니


방학일 때는 매일같이 내가 일했거든?


하루에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에 문닫을때까지 12시간동안...


그래도 하다보면 적응도 되고


처음에는 이게 되나.. 싶었던 게 의외로 주변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서


가게 종업원은 처음이라 처음에는 손님분들께 폐도 많이 끼쳤지만


방학이 끝날 즈음엔 슬슬 몸이 뇌보다 익숙해졌단 말야


월급은 따로 안 받았다만 (애초에 나 같은 것의 학비로 들어갈테니...)


그런데 2학기 시작하고서


전공과목이 3개로 늘고


교양도 꾸준히 챙겨야 하고


일요일마다 나름 과외도 시작해서


가게에 나가서 일할 날이 토요일밖에 없었어


어머니는 일주일에 6일동안 일하시면서 힘든 티를 부쩍 집에서 내셨지


어떨 땐 월요일인데 갑자기 인력이 떨어져서 내가 마침 공강이었던지라 긴급으로 달려가기도 했고


하지만 동기 분들과 관계 맺는 게 가면갈수록 힘들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걸 화제로 꺼내는지, 어디로 놀러가는지, 무엇을 즐기는지, 애초에 생일선물로 뭘 보내야 할지, 1달내내 읽씹하시는 건 어떤 연유일지... 


다른 분들의 낯을 뵈면 뵐수록 내가 그분들의 사이에 끼어들 자격은 될지 망설여지고


의과 공부도 운으로 입학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수업을 따라가기도 어려운데


그 월요일에 가게로 달려가면서 그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지금 의대생을 하려고 종업원을 하는거야? 음식점의 종업원을 하기 위해 의대생 생활을 유지하는 거야?


내가 의대생이 된 건 어머니의 노후를 위해서 아니었나? 어머니는 의대생으론 만족하지 않나? 무엇을 더 해야하지? 시간을 쪼개 매일같이 식당을 도울까? 따라가기 어려운 과목에 열성을 다해서 과탑으로 장학금이라도 벌어야 해? 애초에 내가 미래에 하고 싶었던 게 뭐였지?


...난 가족이 단란하게 있을 수 있다면, 나중에 어머니가 멋들어진 사위도 받아들이시고 셋이서 나름 여유있고 단란하게 지낼 수 있으면 하면서 살 뿐인데..


(어머니에게는 이미 커밍아웃 했고, 열린 분이셔. 커밍아웃 당시에는 난 모솔이라 이성애자든 게이든 결국 결과는 같지 않냐는 팩폭을 날리셨지만..)


가면 갈수록 동기분들에게 말도 못 붙이겠어.


전공 성적도 이대로 가면 F일지도 몰라.


어머니는 성공적으로 의사가 되어 자신의 노후를 위해주는 아들을 원하시는데,


이대로라면 의대 제적해서 프리터라도 되는 건 아닐까.


대학에서 마음이 마모되어가니, 토요일에 일할 때에도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돼...


어머니는 날 위해 6일을 노력하시는데..


내 의대 생활 유지하시겠답시고..


근데 난 왜 대학에서 그모양인지.




그런데 오늘 그 마음이 터졌다고 해야하나.. 진짜 사소한 일인데.


방학 동안은 거의 내가 점장인마냥 가게를 꾸렸지만, 2학기 동안은 어머니가 가게 전체를 관리하셨으니까.


내가 관리하던 가게와 어머니가 관리하는 가게의 방침이 다른 거야 당연하겠지만...




오늘, 6시 즈음에,


손님이 먹고 남기신 깍두기 5개가 반찬통에 다시 들어갔어.


어머니의 손에.

 

내 눈 앞에.




소위 말하던 반찬 재사용을 눈 앞에서, 어머니가 직접 하는 걸 보니 어질하더라.


깍두기뿐만이 아냐, 고추, 양파, 마늘, 김치 등...


기본적으로 나간 반찬 모두가 눈에 띄이지 않겠다 싶으면 재사용돼.


항상 토요일에는 나만 일하고 어머니는 쉬시던지라 난 어머니가 이러시는 줄 몰랐어.


근데 이번에는 추석연휴가 겹치고, 어머니와 동시에 나왔더니..


당연하다는 듯, 그러시는 거야.




캐물을 작정으로 소리치며 다가가는데 무시하고 주방에 들어가셨어.


반찬통에 다가가지만 이미 뭐가 재사용된 5개인지 분별하지 못해.


패닉.. 그냥, 정신이 날아갈 것 같더라.


다른 가게 이야기라 생각했지.


그런 어이없는 행동은 안 하실 거라 생각했지.


근데 어머니는 당연한 몸짓으로 손님께 드린 접시를 뒤집어서...


깍두기를 떨어트리고.


순간 현기증났어.


대학에서 가면 갈수록 패닉이 온 것의 반동으로, 내가 가면 갈수록 이 가게의 번성에 매달렸던 걸까?


하지만 지금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두 번 사용되어서 상에 나갔던걸까.


손님 중 한 분이라도 알아차리고 신고하면..


영업정지인데.


어머니는 무섭지 않으신건가?


아니면 모르시는.. 아니, 그럴리가, 내가 캐물으려 하니까 무시하셨는데.






순간 내가 사는 것 전체에 회의감이 들었어.


대학을 위해 음식점에서 일해.

하지만 내 대학생활은 대인공포증에다 성적 저하로 물들고 있는데.


음식점을 유지하기 위해 멀쩡히 대학에 다녀.

하지만 영업정지 당할 일이 당당히 이뤄지는 음식점을?


진짜...


표현하기 어렵다.


이 글 제목이 내 심정 그 자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