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알 수 있듯 수메르는 우림과 사막이 뭉친 나라다. 카라반 수도원을 기준으로 방사벽이 세워졌고, 이 것을 경계로 사막과 우림이 나뉘어져 있는데, 크기도 엇비슷한 두 지역끼리 뭐가 아쉬워서 갈라치기를 하는 것일까?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두 지역이 서로 같은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메르 퀘스트를 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듯, 원래 사막은 '적왕' 아흐마르가, 우림은 위대한 룩카데바타가 서로 다스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냥 외국이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갑자기 적왕이 미쳐서 사막이 개판 5분전에서 한 4분쯤 가버렸고, 위대한 룩카데바타는 자신을 농ㅋㅋ으로 바꾸어가면서 사막을 구원해내었다. 결과 룩카데바타는 농ㅋㅋ이 되었고, 사막은 지도층을 잃은채 룩카데바타를 위시한 우림의 헤게모니에 들어가게 된다.


모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막과 우림은 완전히 정반대인 지역으로, 현실이라면 이런 극단적인 차이는 필연적으로 분열을 낳기 마련이다. 실제 수메르에서도 적왕의 부활을 외치는 극단주의 세력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말이다.


우리는 가장 먼저 사막의 사람들이 스스로 룩카데바타 허벅지를 핥고 싶어서 수메르에 합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막의 원주민들은 나라가 망했으니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야 했고, 그 결말이 바로 '도금 여단'이었다.


도금 여단은 주로 사막인들로 구성된 용병단 비스무리한 무장 단체로, 현실의 사막 원주민들이 애미 뒤진 전투력으로 유명하듯 도금 여단들도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 전투력을 자랑한다.


문제는, 딱 여기까지만 사막과 우림의 협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자, 아카데미아 기준에서 보자면 사막은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지역이다. 논문거리가 될 유적들은 많지만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기계장치들도 넘쳐나니 어지간한 중무장이 아니면 논문 쓰려다가 언럭키 졸업을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장 수메르 하면 떠오르는 것도 '풀의 신이 다스리는 곳'이지 '모래의 신이 다스리는 곳'이 아니니까 더욱 더 이런 인식은 증폭되었을 것이고, 거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 사막 지역의 합병이었을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에서 삽질하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 민사 조정이란 대가리가 빠개지기 쉬운 일이다. 당장 우리도 탈북자나 조선족 족이 사회에 부적응해 일으키는 범죄가 대서특필되는데, 아예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 다른 인종, 다른 신의 신도들인 사막 사람들을 수메르 우림의 꼰대들이 받아들이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나 치명타인 것은 사막 측이 뭔가 협약이나 조약으로 합병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나라가 망해서 합병된 것이라는 것인데, 당연히 금단의 지식으로 인해 미쳐버린 사막의 사회간접자본이나 생산 시설들은 개발살이 나버렸을 것이고, 그나마 생존자들이 모인 아루 마을도 겨우 달동네를 면하는 수준이니. 사막 지역의 경제력은 큰 이변이 없었던 수메르의 우림 지역에 비해 바닥을 길 것이 분명하다.


(적왕의 무덤. 적왕 문명의 중심지였을 이 거대한 유적은 지금에 와서는 살인 기계들이 점령한 위험천만한 곳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차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쉽게 말해서 밥그릇 싸움이다. 수메르 아카데미아는 방향성은 몰라도 빡대가리들은 아니니 당연히 자기네들 세금으로 사막의 생존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아카데미아는 도금 여단인 '30인단'을 고용해 수도 방위를 맡긴 것을 제외하면 사막의 생존자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대응했고, 이게 모든 차별 대우의 시작이 되었다.


수메르 아카데미아는 자신들이 무능해서든 아니면 반발이 심해서건 우림 지역의 세금을 사막 지역에 투자해 인프라 건설과 사막인들의 재교육. 마을 건설과 치안 유지에 사용하지 않았고, 먹고 살 일이 없어진 사막인들에게 유일한 살 길은 활과 칼, 그리고 창을 들어 물주의 뜻대로 휘두르는 길뿐이었다.


그리고 이게 수백년이 지나오면서 당연히 우림의 사람들에게 사막 사람들은 거칠고, 무식하다는 편견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세대 교체가 되었을 아카데미아에서는 이런 편견이 있는 학자들로 하여금 사막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유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사막 사람들이 정말 불쌍하다고 볼 수 있는데,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런 경제력의 차이는 곧 학력의 차이로 이어지고, 학자들의 도시인 수메르에서 학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곧 신분의 낮음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수메르 성의 부속 의료 기관인 비마르스탄, 아픈 수메르성의 시민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수메르 사막 지역의 유일한 거주 지역인 '아루 마을' 비마르스탄과 같은 의료 시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낸 세금을 쟤들한테 쓰기 싫다!'라는 단순하고도 잔인한 이유가 현재까지 사막 민족들이 차별받고 있는 이유가 된다는 소리다. 고향이 엉망이 되었으니 용병업 말고는 삶을 꾸려나갈 수가 없고, 용병업에 민족 전체가 매달리게 되었으니 인간 백정이라 손가락질 받고, 손가락질 받으니 학식을 쌓을 수조차 없는 암울한 현실. 아! 룩카데바타여!


(카라반 수도원에 높게 솟아있는 방사벽, 그러나 방사벽이 막아버린 것은 모래가 아닌, 모래가 묻은 사람들이었다.)


정말 암울하게도 사막 민족의 미래는 그다지 밝다고 할 수가 없다. 권세를 회복한 나히다가 신으로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다고 해도 그 과정은 십중팔구 아카데미아의 문호를 열어주는 것일 텐데, 알다시피 아카데미아는 뼛속까지 우림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당연히 아카데미아에서 사막 사람들은 차별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문화를 버려야만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카데미아를 졸업할 즈음이 되면 피부색만 다른 우림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실제로 소수민족이 자신의 문화를 잊어버리고 다수 민족에 동화되어가는 과정과 똑같이 말이다.


이런 미래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막 지역만의 특색과 강점을 개척하고, 발굴하고, 부활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사막에는 사막만이 가지고 있는, 우림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강인함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알다시피 사막은 아주 위험한 곳이고, 오랫동안 사회의 최하층 취급을 받아온 사막민족의 말을 우림인들이 얼마나 귀담아들어줄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막 민족에게는 두가지 결말만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뼈아픈 과거를 갈고닦아 수메르라는 거대한 나라의 지붕을 떠받치는 다른 색의 대들보가 되어 우림의 인정을 받거나, 아니면 그들의 주군이었던 아흐마르와 같이 영광스러웠던, 그렇기에 고통스러운 모래의 꿈 안에서 천천히 쇠락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