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이 김씨 와서 백철 날라야지 뭐해

- 저 인간 또 옥형성님 훔쳐보고 앉았네


다섯번째 강림자라고 몇몇 사람들이 나를

만나고 갔지만 그 뿐이었다


나는 여기서도 평범한 사람이고

티바트의 의무교육 같은건 1도 모르고

어디에 본적을 두지도 못 하니

노가다 일이나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 현장에

각청이 자주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내가 다섯번째 강림자인건

ㅈ도 관심이 없는 듯 하지만

나는 언젠가 그녀가 도움이 필요하다며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왜 저한테 신의 눈을 주시지 않는건가요?

제발 저도 신의눈 좀 주세요


- 김씨! 김씨!!!


나는 마지 못 해 뒤돌아서 채광현장으로 돌아간다


- 한두번도 아니고 말이야 뭐하는 짓이여 쉬는거 누가뭐라해 할때는 해야지 일이 안되잖아 일이!

- 여기 세계 사람도 아닌데 이런 일이 익숙한가 너무 뭐라하지 말어

- 그럼 원래 세계로 돌아가던가! 리월에 왔으면 리월법을 따라야지 계약을 했으면 지켜야할거아니야 에잉 제군님 살아계셨으면...!

- 송신의례가 끝난지가 언젠데 이사람아 아직도 제군제군할건가?

- 암튼 김씨 이거 두 수레만 책임지고 날라놔 나머지는 내일 다른 사람 시킬테니까 계약종료야 계약종료 


그렇게 말하며 두 남자는 수레 두개를 남겨놓고 다시 채굴장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일이다. 두 수레면 만모라다. 모아놓은 돈이라 해봐야 30만 모라 뿐인데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나. 기행 결제 마렵네...


투덜거리며 수레를 하나 밀어본다. 무겁다. 여기 사람들은 이런걸 아무렇지도 않게 민다. 옛날에 챈에서 티바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신체 강도가 높을 거라는 추측이 있었는데 사실인 것 같다. 허리가 부러져야 힘을 내어 가속도를 받자 수레가 슬슬 밀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한번 움직이면 잘 간다. 문제는 방향을 트는 일이다. 이 무게에 끌려가다시피 하는 수준이니 방향을 틀려면 한번 멈추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런 중노동을 몇번 반복하고 나서야 백철덩이를 모아놓은 창고에 도착한다. 이걸로 5천모라. 이게 사람사는 꼴인가? 그럼에도 이게 그나마 할만한 일이다. 직접 채광이나 벌목을 하는 건 꿈도 못 꾼다. 병원비가 더 나올거다. 이젠 뭘 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 서럽다.

마지막 수레까지 옮기고 나니 저 멀리서 작업반장과 옥형성의 모습이 보인다. 각청은 나를 보더니 고개를 까딱이곤 자리를 피한다. 그래도 처음 몇번 마주칠때는 아는 척도 해줬는데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란 걸 알고나니 같이 있기도 싫은 모양이다. 작업반장은 머리를 한번 긁적이더니 지폐로 된 모라를 세장 꺼내더니 내게 건넨다.


- 얘기 들어서 알겠지만 여기 현장에서 편의 봐주는거도 더는 어렵네요. 노가다라 해도 계약은 계약인데 제대로 이행은 못 하시니 저희도 손해가 컸고 옥형성 님께서도 이젠 더는 안 되겠다 하시네요. 퇴직금이라기엔 못 하지만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부디 적성에 맞는 일 찾길 바래요.


나는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지폐를 받아든다. 작업반장은 측은한지 한심한지 모를 눈으로 나를 빤히 보다가 돌아선다. 왠지 기분이 나쁘다.


리월 외곽에 다 허물어가는 공동숙소. 이제 여기와도 안녕이다. 채굴현장에서 마련해준 곳이니 여기서도 나가란 이야기를 할거다. 굳이 확인을 받느니 미리 짐챙겨서 나가는게 낫다.

짐이라 해봐야 모아놓은 돈과 지원받은 옷가지 몇개, 밥해먹을 냄비와 부싯돌이 전부다. 돈은 서른장 그대로 있군. 신기하다.

현실에선 공동숙소에 돈을 두면 금새 훔쳐갈텐데 계약의 나라라 그런지 남의 돈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런 짓은 츄츄족이나 하는거라나 뭐라나.

어차피 나가는 마당에 츄츄족이나 하는 짓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돈을 어디 두는지는 눈에 훤히 보인다. 숨기질 않으니까. 나는 한참 망설이다 그만둔다. 일하는 것도 제대로 하기 힘든 마당에 감옥살이는 또 얼마나 고될까? 나는 내 짐만 챙겨서 부랴부랴 숙소를 나온다.


- 리월을 떠난다고?

- 예 어르신 그렇게 됐네요

- 티바트 어딜가도 리월만한데가 없을텐데...

- 어르신께서 이거저거 가르쳐주시고 저를 자식처럼 챙겨주셨는데 이렇게 떠나서 죄송합니다. 이건 제 작은 성의입니다. 받아주세요.

- 아이 됐어 여정이 고단할텐데 넣어둬 어디로 가려고?

- 폰타인으로 가보려고요

- 폰타인으로? 같이 갈 사람들은 알아봤나?

- 아니요. 저 혼자 가려고요.

- 이 사람이? 폰타인을 어떻게 혼자서 가? 어디 상단에 끼어서 가던가 전문적인 가이드를 고용해야지. 길이 험해. 며칠 더 묵으면서 좀 더 알아봐. 지낼 데가 없으면 우리집으로 와도 되고.

- 아니요. 마지막까지 폐만 끼칠 수는 없죠. 지낼 데는 제가 구해보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니, 뭘... 자넬 보면 물에 내놓은 아이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 뿐이야. 늙은이 오지랖이니 그리 고마워할 거 없네. 이건 도로 가져가고.

- 받아주세요.

- 가져가. 아는 사람도 없이 다른 나라에 가서 지내려면 한푼이라도 더 있어야지.

- 어르신...


고작 3만모라. 3만모라조차 고마운 사람에게 줄 수가 없는 내 현실. 왜 나는 티바트에 있는거지? 대체 무슨 이유로...


부둣가에 누워 책을 펼친다. 티바트 유람가이드 - 폰타인편. 저자 앨리스. 하하. 부럽네. 앨리스 정도면 인세만 받고 살아도 얼마야 대체? 차라리 이나즈마로 갈걸 그랬나...? 현실에서 본 만화 몇개 대충 적어서 야에출판사에 갖다주면... 아니야. 야에 출판사까지 가기도 전에 외국인이라고 돈 뜯기고 빚만 쌓였을게 뻔해... 아니 그 전에 티바트어 하나도 모르잖아.

사실 티바트유람가이드가 아니면 읽을 수 있는 책조차 없다. 앨리스의 저서는 항상 여러나라 언어로 쓰여있는데 다행히 그 중에 영어도 있다. 티바트에서 영어를 누가 쓰겠나 싶긴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다.

혹시 앨리스라면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앨리스를 찾아가볼까? 하지만 어디 있는 줄 알고? 인게임에서도 본 적 없다. 그러고보니 리월에 8개월이나 있으면거 감우 얼굴을 한번도 못 봤다. 당연하지. 리월 변두리에서 채굴현장과 숙소만 오가면서 가끔 시장에 들르는게 전부인데 월해정의 높으신 분 얼굴을 어떻게 볼까? 각청을 본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사실 어르신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가이드나 상단에 대해서는 이미 알아봤다. 터무니 없는 금액. 100만모라라니. 물론 폰타인까지 가려면 침옥협곡도 지나야하고 수로도 통과해야 하지만 100만모라란 금액은 나에게 현실성이 없다. 혼자 가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손을 뻗어 아까 사둔 철촉창을 만지작거린다. 믿을건 이거 밖에 없다. 무기를 다룬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신의눈이 없으니 법구는 당연히 아무 효력도 없고 활을 쓰긴 커녕 시현을 당길 근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대검은 말할 것도 없고. 무인검도 한자루 있지만 칼을 쓴다는 거 생각보다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부둣가에 버려진 썩은 목재에 시험삼아 휘둘렀는데 제대로 벤다고 할 수 없고 찍어 문대는 것에 가까워 실전성이 없었다. 그나마 창을 휘두르는 것이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일 동이 트자마자 떠나자. 폰타인에 가서 기술을 배워서 새로 시작하자. 분명 내가 티바트에 강림한 이유가 있을 거야. 어쩌면 신의눈도 곧 생길지도 몰라.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잠에 막 들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느낌이 좋지 않다. 나는 짐과 창을 챙겨들고 급히 버려진 나무자재 틈으로 숨는다.

이내 천으로 입을 가린 한무리 사람들이 나타난다. 처음 보지만 확신이 든다. 보물사냥단이다.


- 부둣가에 뭐 훔칠게 있다구요?

- 혹시 모르지 돈좀 있는 여행자가 노숙할지도.

- 여기 보세요. 이런데 무인검이 있네요.

- 다 녹슨 쇳덩이 어따 써?

- 아니에요. 거의 완전 새거인데요? 운반 중에 떨어뜨린건가? 날 한쪽이 완전 무뎌졌네요.


아마 내가 검술연습을 한다고 휘두르다 날이 상한 것을 보고 말하는 모양이다. 창을 사길 정말 잘햤다.


- 무인검 따위 뭐 얼마나 한다고... 네가 쓰려는 거 아니면 그냥 그자리에 둬. 괜히 흔적 남겨서 경비 심해지면 우리만 손해야.

- 예. 예. 건들지도 않았어요.

- 근데 뭔가 온기가 도는게 조금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 경비가 막 지나갔던건가? 운도 좋군. 창고 쪽으로 가보자.


보물사냥단의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게임에선 늘상 개패듯이 팼는데 실제로는 숨어서 지켜보는게 고작이다. 긴장이 풀어지니 졸음이 쏟아진다. 다시 올지도 모르니 불편하지만 여기서 자야겠다.


내일 아침에 눈뜨면 현실로 돌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