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소설은
3일차 늒네가 걸캎세계관을 기준으로 써낸 창작글입니다.
따라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으며 

원작붕괴요소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대놓고 붕괴를 노리진 않습니다.)

덧붙여 실제 사건, 인물, 배경과는 일체 관련이 없습니다!


(노파심에 알려드리는 배경. 챕터 7, 후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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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통이군. 반가운 상황은 아닌데…….”



쓴웃음을 지으며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린 전술핸드폰을 품안에 도로 집어넣는다. 적어도 누구와 통신이라도 가능했다면 여러모로 편했겠지만.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 여긴 또 어디야?”



레라제의 이상한 모습에 경계한 우리는 만에하나 있을지 모를 적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서 진군을 멈추고 저녁무렵까지 대기하고 있었을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적의 움직임은 없었고 의구심을 품었던 찰나 소시로부터 긴급통신이 들어왔다. 직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지진과 충격이 발생했고 나를 부르던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과 내 시야에 뭔가 거대한 것이 날아들었다는 것까지는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여긴 그 주변이나 지하? 하지만 나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지하에 별다른 시설같은 건 없었지.”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다. 우선 출입구로 생각되는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 통로가 무너져있긴 하지만 위에서 떨어지기엔 적합한 위치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이 통로를 이루고 있는 소재다. 어떻게 봐도 이 통로는 자연발생한 동굴은 아니었다. 소재도 흙이나 돌은 아니며 금속 같은 것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통로. 그래, 마치 연구소의 시설 같은.



“일단 갈 수 밖에 없나.”



외부와 통신할 수도 없고 정체도 모를 장소에 고립된 이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언제올지 모르는 구조를 가만히 기다리거나 기약없는 통신에 기대하는 건 더욱 내키지 않는다. 어쨌든 정보를 모아보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잔해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면 볼수록 어딘가의 지하 비밀 연구소같은 느낌인데.”



통로 중간중간 보이는 문과 옆에 달려있는 기계장치. 아마도 문의 개폐장치에 쓰이는 단말기같은 거겠지만 무너진 벽과 관계가 있는 건지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가끔 드물게 단말기가 붙어있지 않은 방이 있어 안을 확인 할 수는 있었지만 이미 내부는 통로만큼이나 무너진 잔해들로 엉망이었다. 이걸 봐선 이 시설 전체가 이미 비슷한 상황일거라 짐작된다. 혹시 그 때의 지진으로 이 시설도 피해를 입은걸까?



“음, 마지막인가.”



통로의 끝. 다른 문보다 크고 거대한 게이트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제일 중요한 장소인 것 같다. 그만큼 튼튼하게 만들어진건지 난장판인 주변에 비해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중요한 장소라면 거기에 걸맞은 시큐리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일텐데. 기대는 별로 품지않고서 단말기에 접근하자 적색 경고등만이 깜박이고 있었다.


[접근 차단중]


“역시인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현실로 마주하니 의욕지수가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럼 이제 어쩐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새로운 루트라도 찾아봐야 하나? 이쪽이 안쪽이라면 무너진 통로쪽이 바깥쪽이란 얘기니까 막힌 길을 뚫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치고라도…….



“시큐리티 잠금 해제 요청이 확인되었습니다.”


“응?”



갑자기 들려온 기계음성에 고개를 돌리자 단말기에 새로운 푸른 등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기계음성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관리자 권한을 확인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역시 이곳엔 나뿐이다. 즉, 소리가 나오고 있는 곳은 저 단말기고 내용으로 추측하건대 관리자의 권한을 가진 누군가가 이 시설 어딘가에 있다는 것?


키이잉-



“이런!”



갑자기 움직인 문에 당황한 나는 만일을 대비해 챙겨두었던 쇠파이프를 겨누며 문쪽을 바라보며 몇 발자국 물러섰다. 전투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지만 일단 언제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킨다. 서서히 문이 열리고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뜻밖에도 한 소녀였다.



“…….”


“…….”



나와 소녀는 자연히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왠 남자가 쇠파이프를 든채로 경계하고 있으니 놀랄 법도 하건만 소녀는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은 채 두 빛의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코스와 비슷한 신장에 오드아이 때문인지 신비감마저 아려있어 그녀와 마찬가지로 정체불명감을 느끼게 하는 소녀. 더욱이 그 시선에 왠지모를 그리움을 느낀 나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나와 저 소녀는 만난 적이 있어? 아니, 그럴리가…….



“저는 위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요. 부디 무기를 거둬주실 수 없을까요?”


“아, 응.”



소녀의 말에 정신이 든 나는 어째선지 순순히 쇠파이프를 내리고 있었다. 뒤늦게 섣불렀다고 생각이 미쳤지만 소녀의 말은 진실인 듯 나를 덮쳐오는 일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상냥하신 분이시군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여오는 눈 앞의 소녀는 적인지는 둘째치고 도무지 위험한 요소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른걸까, 난.



“사정이 있어 점장으로 불리고 있어. 괜찮다면 네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


“점장?”



아, 역시 수상한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였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레이카라고 합니다. 이곳은 뭔가를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네요. 죄송하지만 지금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 뿐입니다. 저 역시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으므로.”



말투는 다르지만 이코스와 비슷한 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겉보기처럼 평범한 어린 소녀는 아니겠지.



“그렇군. 그럼 이쪽에서 알고있는 정보를 제공할테니 일단 여기선 서로 협력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


“좋아요.”



나는 소녀에게 내가 겪은 일을 설명했다. 물론 우리 부대에 관한 일은 일단 빼두었다. 갑자기 발생한 지진과 충격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려 여기에 오게 되었고 막힌 반대쪽으로 향한 결과 여기에 오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과연. 시설에 어떤 문제가 생겼고 지금에 이르는 것은 저의 추측과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 통로는 지상에 위치해 있습니다. 암반이 무너져내리는 일은 없는 게 정상이네요.”


“정말이야?”


“제가 오히려 묻고 싶습니다만. 주위를 보니 사실인 모양이네요.”



소녀의 시선이 향하는 건 통로 곳곳에 무너져내린 흔적이었다. 소녀의 말대로라면 여긴 지상의 통로. 즉, 천장이 무너진다면 암반같은 게 쏟아져내릴 리도 없고 하늘이 보여야 정상인거다. 다른 구조물들이 통로를 덮쳤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 문제가 남아있다. 처음에 지하의 시설일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생각한 일이지만 지상에도 이런 통로같은 건 없었어.



“아무래도 터무니없는 상황에 휘말린 모양입니다만 어쩔 수 없네요.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선 언제 무너질 지 알 수도 없으니까요.”


“그게 좋겠지. 괜찮으면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 대신 보답은 할테니까.”


“타인에게 받은 상냥함은 돌려주는 것이 도리라 들었습니다. 문제없어요.”



우리는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길은 막혀있었으므로 걱정된 나는 다시 한번 소녀에게 그 사실을 전했지만 소녀는 문제없다는 듯이 '괜찮아요.'라고 말하고는 도중에 잠긴 문을 열었다.



“여기도 밖으로 통하니까요.”



생각해보면 지상에 있는 통로니까 출입로는 딱히 한정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소녀를 의심했던 나는 반성하며 묵묵히 소녀의 뒤를 따랐다. 잠시후, 우리는 무사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하늘을 바라보며 소녀가 뭔가 중얼거리고 있는 듯 했지만 통신이 들어오는 소리에 나는 의식을 돌렸다.



[들리시나요, 점장님?]


“으음, 키리코?”


[무사하셨군요.]


“아아. 어떻게든. 그나저나 이건 새로운 통신 주파수?”


[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모든 암호화 알고리즘을 재변경하라는 총 지휘부로부터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덧붙여 일련의 사태는 ‘인페르노 쇼크’로 명명되었습니다.]


“적의 소행인건가?”


[동맹군의 S시 관할 구역에서 스파이가 몇 명 잡혔다는 소식입니다. 결국 이번 전투 계획도 이미 노출된 듯 합니다. 유감이지만 마더코어는 확보하지 못했으며 기존의 작전은 중단되고 ‘인페르노 쇼크’에 휘말린 피해 부대에 대한 구조 임무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그럼 마더코어는 동맹군이 확보한거야?”


[처음은 상층부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동맹군 측으로부터 마더코어의 반환요구가 들어왔습니다. 동맹군은 ‘인페르노 쇼크’에 피해를 입었고 우리가 그 사이에 마더코어를 탈취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럼 뭐야? 마더코어를 ALPHA가 가져가기라도 했다는 거야?”


[현 시점에서는 불분명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소식이 있습니다.]


“뭔데? 또 나쁜 소식? 지친다 지쳐.”


[나쁜 소식일지, 좋은 소식일지는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점장님의 위치를 08소대에게 전했습니다. 지금 구조에 향하는 중입니다.]


“아… 응.”



그러고보니 나는 그 인페르노 쇼크에 휘말려 잠시간 통신두절이 된 상태였던 거였다. 아, 블러디 썸머의 일이 떠오르는 것 같아.



[참, 말하는 걸 잊었습니다만 점장님.]


“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고마워.”



키리코와의 통신을 끊고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는 두 빛의 눈동자가 있었다. 문제가 산적해있는 걸 느낀다. 혹시 나를 경계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소녀의 눈치를 살피자 소녀가 먼저 물어왔다.



“혹시 군인씨?”


“숨겨서 미안.”


“상관없어요.”



예상외로 가벼운 대답이었다. 그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역시 예삿 소녀는 아닌 것 같다. 약속한 일도 있고 나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 동료들이 올 예정이지만 혹시 괜찮다면 함께 와 줄 수 있을까?”


“포로로 할 셈인가요?”


“아니, 그럴 생각은 없어.”



보답은 돌려주기로 했다. 거기에 아무리그래도 이런곳에 버려두고 갈 수는 없잖아. 분명 그녀들도 납득해줄 터. 남은 건 소녀의 취급에 대한 설득이지만. 응, 생각은 일단 있다.



“…….”



왠지 수상쩍은 시선으로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먼저 설득해야 하는 건 이쪽인건가……. 문득 하늘을 올려보자 저 멀리 어두운 구름이 켜켜이 쌓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지금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맑을 것 같지는 않네…….”



…… ……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