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 깊숙한 곳

몇 층계 밑 그곳에서도 격벽 두어개를 더 지나쳐 들어간 방에는 몰리도가 심문 테이블 앞 의자에 묶여 기계튜브다발이 연결된 헬멧을 쓰고 큼지막한 면티 하나만 입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지휘관은 터벅터벅 다가가 헬멧의 바이저를 위로 젖혀 그녀를 불렀다.



"...일어나."



눈을 뜬 그녀는 사선으로 떨어뜨린 고개를 들지않고 옆으로 돌려 지휘관을 올려다봤다.



"...누구 발소리인가 했는데 또 왔네요?"



축 늘어져 있으면서도 지휘관을 가볍게 비웃었다.



"쿡쿡... 이런게 무슨 소용일까요? 제가 뭐라도 이야기할 것 같으신가요?"


"...오늘이 며칠인 것 같나?"


"날짜도 못세는 건가요? 아... 손가락이 모자라서?"


"...대충 12일에서 13일 정도인가..."



지휘관은 맞은편에 앉은 후 몰리도를 바라봤다. 의자에 눕듯이 기대고 팔짱을 낀 채로 몰리도를 내려볼 뿐이었다. 마주보는 몰리도의 태도도 여유로웠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그렇게 쳐다봐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구요?"


"...대단하네."


"...고작 열흘 조금 넘겨놓고 대단하다고 하면 제가 기분이 나쁘네요. 고작 이런사람에게 발목을 잡혔다는 게."


지휘관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지루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아니면 너무 상냥하고 심약하신 분이라서 그러시는 건가요? 심문이나 고문도 제대로 못하면서 피가 튀는 전장은 어떻게 버티시려구요? 아, 어차피 뒤에서 인형놀이만 하면 되니까 그부분은 넘어가도 되려나요?"


"...꽤나 심심했나?"


"네?"


"처음보다 혀가 길어서."



몰리도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재밌네, 너한테는 고작 2주가 조금 안 된 시간인데."



입을 다물고 있는 몰리도에게 지휘관은 가져온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뭐, 심문이라도 하시려구요?"


"아니, 그냥 보여줄게 있어서."



지휘관은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지휘관과 어느 여성이 몸을 섞는 영상이었다. 침대에 앉아 서로를 끌어 안고 상하운동을 하고 있었다. 앙칼진 신음을 뱉으면서도 여성은 지휘관의 목에 감은 새하얀 팔을 풀 생각 없어보였다. 몰리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했다. 심지어 살짝 경멸하는 표정이 나올 정도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건가요? 아니면 그냥 성희롱? 시답지 않은..."


"계속 봐."



지휘관은 다시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댄 채 턱짓으로 영상을 가리켰다. 몰리도는 영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체위를 바꾸기 위해 여성이 지휘관에게서 떨어지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마흐... 진짜 인형놀이를 하고 있던건가요?"


"한 달 전 영상이야."


"..."



영상 속 마흐리안은 새하얀 피부와 풍만한 가슴, 꽉 조여진 허리, 탱글해보이는 엉덩이와 허벅지, 그런 성적 매력을 풍기는 몸과 상반되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지휘관에게 안기고 있었다.



"적당히 만든 창녀로 그녀를 잊으려는 건가요?"



몰리도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고 표정도 숨기질 않았다.



"적당히 만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던데."


"..."



*



영상이 끝나고도 지휘관은 이렇다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당신의 정신적 자위행위를 보여주고 당황한 제가 보고 싶으셨던 건가요?"


"당황한 걸 보고 싶었던 건 맞아. 근데 상황이 조금 다르군."



지휘관은 노트북을 돌려 다른 영상을 틀고 다시 몰리도에게 보여줬다.



"어제 영상이야."


"당신의 변태성은 더이상 알고 싶지 않은데요."



지휘관은 몰리도의 말을 무시한 채 가방에서 대뜸 가위를 꺼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몰리도에게 다가갔다. 그대로 몰리도가 입고 있는 면티에 가위를 대어 세로로 길게 잘랐다. 몰리도의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고 그 하얀 허벅지 위에 유성마커로 正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


"로빈... 그건 왜 꺼내신건가요?"



몰리도는 순간 영상으로 눈이 갔다. 영상 속 지휘관은 마커로 영상 속 마흐리안의 허벅지에 한 획을 그었다.



"하아... 하아... 이거 혹시 그건가요, 로빈? 그럼... 네 번은 더 해야겠네요?"



영상 속 마흐리안은 상기된 얼굴로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몰리도는 고개를 들고 처음으로 옆에 선 지휘관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제대로 만든게 있는데 굳이 대충 만든걸 쓸 필요가 있나?"



몰리도는 책상에 걸터앉는 지휘관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표정도 숨기지 못 했다. 놀란 표정으로 그글 바라보았다.



"M4와 댄들라이를 보고 너희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리고, 아니 오히려 내 예상보다도 훨씬 수월하게 흘러갔지."



지휘관은 노트북을 덮었다.



"네 안에 마흐리안의 인격을 심었어. 너희들은 인간에 가까우니 그녀를 완전히 복원하는건 힘들겠지. 그래서 죽은 그녀의 뇌를 카피해서 네게 또 다른 인격으로 심었지. 네 머리에 있는 장치는 네 행동을 빼앗는 동시에 그녀의 인격을 심기위한 장치이기도 해."



지휘관은 꺼냈던 물건들을 도로 가방에 담으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 성능이 너무 좋았어. 인격은 무사히 안착했고 넌 지금 이중인격인 상태인거야.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네가 깨어있을 땐 몸의 자유를 빼앗고 그녀가 깨어있을 땐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줬어. 그러다보니 어느새 너보다 그녀가 깨어날때가 많아지더군."



지휘관은 점점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몰리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지금은 오히려 반대야. 실험 초반에 그녀를 깨울때처럼 오늘은 너를 억지로 깨운거야. 일부러 내가 오기 전부터 전기신호를 보내서. 내가 들어왔을 때 내 발소리가 들렸다고 했는데 여기 잡혀있으면서 문 밖에서 발소리를 들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몰리도는 약하게 떨기 시작했다.



"아마 오늘이 네가 깨어있는 마지막 날이다. 난 뒤에서 인형놀이나 하고 피튀기는 전장에 나서지도 못하니 피한방울 없이 너를 죽여서 인형놀이에 쓸 생각이다."



몰리도는 다시 고개를 들어 지휘관을 바라봤지만 지휘관은 바이저에 손을 얹었다.



"혹시 주객전도라는 말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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