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하기 싫어 쓰는 광주 근대사 일부.

일단 이전의 '광주'는 매우 좁은 공간 범위로, 오늘날의 광주광역시는 일제시대 광주군 광주면이 도시로서 성장하며 1935년 광주부로 독립(광주군은 광산군 개칭)했다가 해방 후 1980년대까지 계속 발달한 광주가 광산을 재통합한 결과라 할 수 있음. 이제 상무지구 등으로 도시 무게중심이 많이 옮겨가기는 했지만 원도심 상권이 그래도 일정한 저력은 갖고 있고, 특히 ACC를 필두로 문화예술 쪽으로는 여전히 강하다고 생각됨.(다른 도시 원도심 쇠퇴에 비하면 양반 아닌가 싶음) 하튼 오늘날 도시 무게중심과는 별개로 광주에서 '근본'을 찾으려면 이쪽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


일단 조선시대 광주읍성부터가 이쪽. 읍성은 1910년대 동안에 도로 뚫고 하며 다 허물어버렸음.

그런데 광주 원도심의 대표적인 두 거리인 충장로와 금남로는 성격이 꽤나 다름. 충장로는 읍성 시절부터 남문과 북문을 연결하는 읍성 내 핵심 도로였던 반면 금남로는 1920년대에 도청과 광주역 잇고자 신설한 도로. 일제시대에 충장로가 혼마치本町, 금남로가 메이지마치(쵸?)明治町. 지금도 충장로가 상권인 데 비해 금남로는 은행이라든가 좀 공공 건물이 많은 느낌인데 일제시대도 마찬가지. 말그대로 혼마치라 일제시대 충장로는 일본인들의 중심 생활공간이고, 금남로는 정점에 도청이 놓이고 무덕전(경찰 체육관 느낌?), 군대, 법원 등등이 들어섬. 두 거리의 중요한 차이로 금남로는 당시부터 자동차가 다닐 만한 대로로 만든 점.

<1930년 금남로(明治町)>

금남로는 20년대 내내 구간마다 따로 공사를 하는데 대략 27년 이후로 도청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일단 만들어짐.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 거리를 완성하는 것은 1930년 도청의 신축. 종래에는 목조건물인 통감부기 재무감독국 청사를 도청으로 쓰고 있었는데 1930년 무렵 도청 본관과 도회의실을 신축함. 도청본관은 대전 구 충남도청이나 충북도청 등등 일제시대 관공서 건물 양식을 잘 보여주는데 전남도청의 경우 미군정기에 흰색으로 칠해놔서 좀 특별하게 보이지. 참고로 도청 본관과 회의실의 경우 일제시대 관공서 건축으로는 드물게도 조선인(김순하)이 설계 참여했다는 특징(다만 본관의 경우 좀 논란 있는 듯)이 있음. 본관은 국가등록문화재, 회의실은 광주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고, 회의실설계도 또한 광주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음.



다만 일제시대에는 충장로(혼마치)가 압도적인 중심성을 갖고 있기도 했고, 금남로는 애초부터 도청을 정점으로 관공서 건물들이 주로 들어선 권력을 현현하는 직선의 대로인 터라 그다지 사람이 많이 다니지는 않았다고 함. 하튼 해방 후 두 거리는 모두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이들 기리는 이름으로 바뀜.

오늘날 금남로를 구성하는  핵심 변화로서 1968년 전후의 확장공사가 이루어짐. 도로 확장을 위해 기존 건물들은 거의 다 철거되었기에 사실상 오늘날 금남로의 기원이기도 함.

참고로 이 사진 왼쪽 도청 정면에 있는 게 아래의 무덕전

일제시대 이래 경찰 체육관 느낌으로 썼다는데 해방 후에는 상무관으로 이름 바꿨고, 금남로 확장공사 때 철거해서 옆으로 옮긴 게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상무관=5.18 때 희생자 시신 안치하였던 곳이기도 함.


<1970년>

하튼 그렇게 오늘날까지 기본골격 이어지는 확장된 금남로가 탄생. 전일빌딩 올라가고 있는 것도 보임.

개인적으로 5.18 관련 장면 중 뇌리에 남는 게 금남로 차량시위인데,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집단행동이 가능했던 물리적 기반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 좀 더 추상화하자면 권력 과시의 거리로 만들어진 메이지마치가 도시의 발달을 거치며 오히려 시민들이 집단적 행동을 보일 수 있는 광장의 기능을 하게 되는 형국이기도.


지금은 아시아문화전당 들어섰고, 그 과정에서 도청 훼손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현재에도 도청 복원(1980년 5월 시점으로) 주장이 힘을 얻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민감한 사안이라 조심스럽지만, 켜켜이 역사가 쌓인 공간을 특정 시점으로 복원을 한다는 것은 무리하고,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이라 생각하는 입장임. 이 문제 관련해서는 다음 논문이 꽤나 깊은 고찰 보여주는 것 같음.

박경섭, 2018, 「기억에서 기념비로 , 운동에서 역사로 : 옛 전남도청 복원 과정에서 드러나는 5 ・18 의 물신화와 성화 聖化 에 대하여 」 , 『 민주주의와 인권 』 18(4), 전남대학교 5 ・18 연구소


참고로 사진이나 관련 내용은 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 2014, 『 옛 지도로 본 광주 』 전시도록; 광주시청각자료실 사이트 등 주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