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나라고 어느 순간에서나 무감정한 사람은 아니야."



부모님을, 내 손으로 직접 눈을 감겨드려야 했다.

죽인 건 아니다.

두 분의 영혼을 내 심층의식 깊은 곳에 모셔서, 언제까지고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도록 하는 침대를 마련해뒀을 뿐이니까.


지금도 가끔 찾아뵙곤 한다.

정말로, 아주 가끔.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은 같이 축하해드려야지.



"...정말로, 뭐든지 가능하시네요."


"그렇게 비꼬지 않아도 돼. 나도 내 개인적인 욕심에서 이렇게 됐다는건 잘 알아."


"아뇨,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돌아가신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걸 진심으로 대단하게 느끼는거에요."



...과연.

주시아 주무관은 겉으로 보나 전산상으로나 엄연히 20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능관리부의 특권을 이용한 '설정놀음'에 가깝다.

실제로 그녀의 나이는 882세. 살아있는 역사책수준.

세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또 그녀에게 몰리는 관심을 막기 위해서 기밀처리된 정보지만.



"처음 만났을 때 썼던 그 옛된 말투 덕분에라도 잊어버릴 수가 없지."


"어쩔 수 없었어요. 독립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헌병들에게 숨기기 위해선, 저부터 문명과 아주 떨어진 삶을 살아야 했거든요."



마치 추억이라는 듯 일제시대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주무관.

저게 어떻게 '평범한' 모습인지, 원.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독립 사실까지 모르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나?



"솔직히 그쯤 돼서 깨달았거든요. 어느 시대건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건 나 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빠르게 변화했다는거."


"만만찮네. 힘들었겠어."


"세라 씨도 그러시잖아요. 그저 오래 살아서 아는게 많을 뿐인 저랑 다르게, 진짜 세상을 바꿀 능력도 가지고 계시고."


"..."



그녀가 나를 보는 눈에는 분명 부러움의 시선도 있었으나, 그것보다 더 큰 감정은 동정이었다.

뭐든지 바꿀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영원히 만족을 모르고 살게 된 나에 대한 것.

그런 의미에서라면, 그녀의 동정은 타당했다.



"한잔 할래? '엔트로피'."



그녀에게 색이 계속해서 은은하게 바뀌는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평범한 사람이 마시면 그 이름처럼 나이를 역전하고 회춘하게 만들어주는 음료.

그러나 그녀와 나에게 엔트로피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료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번엔 알코올 향은 안 났으면 좋겠네요. 맛은 분명 좋은데, 항상 마시고 나면 맥주가 땡겨서."


"알지? 하루에 딱 세 잔인거."



그녀와 함께 건배를 하고, 잔을 들이켰다.



"아, 그리고."


"응?"


"그렇게 불쌍한 척 하셔도 공개된 장소에서 분 단위로 자살과 부활을 반복해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일으킨건 용서 못하니까요."


"이런."


"제대로, 시말서 씁시다아?"


"넵."



그녀의 그 기세에 눌려 고개를 끄덕거렸다.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라도 제대로 일처리는 해야겠지.

시말서도 잘 쓰는 착한 어른이가 되도록 하자.



"애초에 시말서를 쓸 짓을 하지 마세요!"


꽁-


...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