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개념글 모음

대충이나마 직원이 설명해준 내용을 요약해본다면, 천년이라는 시간동안 있었던 일들을 적어놓은 일기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천년이라는 시간동안 이어져 내려온, 용과 드래곤을 섬기며 살아온 인간들의 기록들.


그날 그날,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한 면씩. 그렇게 쌓이고 쌓여서 책처럼 된 것 같다는 게 직원의 설명이었다.


그 말을 듣고나서야 책이 왜 이렇게 두꺼운 건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보면 하루하루 용과 드래곤의 일상을 적언나간 것이니 이것도 어찌면 역사적 사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아무렇지 않게 있는 청하의 도서관에는 그럼, 이런 것들이 얼마나 있는 건지 좀 두렵기도 했고.


"대충, 이해는 하셨나요?"


"이해 했습니다. 내용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할 정돈데요. 요즘 들어서 이렇게 재밌는 글을 본 적이 꽤 드물어서요. 그리고, 사장님 말고 다른 용이나 드래곤들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몰라서…."


"그렇습니까."


"용이나 드래곤이나, 그렇게 밖에 자주 돌아다니시는 분들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청하님이 꽤 희귀한 편에 속한다고 봐도 될 정도니."


책의 겉표지를 스윽, 하고 만지면서 눈을 빛내는 직원은 이런 것들이 더 있을 지도 모르니 자기도 한번 찾아보겠다는 말과 함께 겉에 스티커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붙였다.


그리고, 책이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공중에 붕 떠서는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 책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죠. 오랜만에 흥미가 생겼으니 저도 찾아볼 생각이기도 하고요."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일은 그렇게 자주 안 하시는 편입니까?"


"아하하… 안타깝게도, 일이라고 할만한 게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요. 사장님이나 사장님 지인분, 아니면 마도서를 찾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자주 찾아오시는 분이 없네요."


"그렇습니까."


"손님이라도 자주 찾아오셔주시겠나요? 혼자 있기에는 너무 적적해서…."


"…시간이 나면 한번씩은 와보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고는 직원은 카운터 안에 놓인 의자에 털썩 하고 앉았다.


나도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용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에 대한 역사에 대해 들었으니 도서관에 온 보람이 있었다.


조금 더 도서관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집에 돌아가서 인터넷으로 용이나 드래곤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카운터에서 나를 쳐다보는 직원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건네고, 발을 돌려 도서관의 출입문으로 향한다.


한걸음을 떼고 두걸음째가 되던 때, 등 뒤에서 직원이 내게 말을 건넸다.


"아, 아까 말씀드리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데 듣고 가시겠나요?"


"듣고 가겠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카운터에 있는 직원 쪽으로 돌렸다.


앉아있던 직원은 어느샌가 서 있었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입을 우물쭈물거리며 말하기를 머뭇거리는 기미를 보이던 직원은, 내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보는 것에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는 입을 뗐다.


"…마지막에, 이런 글이 적혀있었어요."


"어떤 글입니까?"


"용이나 드래곤에게 관심을 받은 인간은, 무슨 방법을 써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떤 조언이라도 해주는 걸까 생각했었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내용이었다.


직원의 말을 듣고, 어떻게 보면 용과 드래곤의 하루를 적어내려갔던 책은 벗어나지 못하게 된 인간들이 남긴 충고와 조언들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직원이 내게 말해준 내용은 청하와 금향에 대해 더 조심성을 올려 대응해야겠다는 판단이 서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조심하세요, 손님. 저희 사장님도 그렇고, 사장님의 지인분들도 그렇고 다들, 인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니까요."


"직원이 자기 사장님에게 그런 소리를 해도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어차피 지금 사장님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뭐!"


"호오, 방금 발언은 하극상이라고 봐도 되겠는가?"


"겍, 사… 사장님! 분명 이 시간에는 안 온다고 하셨으면서!"


등 뒤에서 청하의 목소리가 들려 몸을 뒤로 돌려보니 방금 막 온 것 처럼 보이는 청하가 보인다.


다만, 몸의 상태가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았는데. 입고있는 옷의 여러부분이 헤지거나 아니면 찢어져서 그 안의 내용물인 속살을 보여주고 있었고, 단정하고 부드러웠던 머리칼은 헝클어지고, 불에 닿은 것처럼 꼬불거렸다.


아마 카페 사장, 아니. 금향이랑 대판 싸우고 온 모양이었다.


그야, 그렇게 시비를 걸어댔으니 당연하게도 금향도 시비를 걸었고, 그 결과가 저 모양이겠지.


아무튼, 등 뒤에서 벌벌 떠는 모습이 절로 보이는 직원을 쳐다보던 청하는 금방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그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에는 약간의 긴장감을 띈 채로 청하를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나.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 것 처럼."


"…어제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제의 추태는 잊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느냐!"


"그게 잊어진다고 잊어질 추태가 아니잖습니까."


"에잉. 요즘 인간들은 말이야…. 전혀 모르겠군. 인간을 본 게 너무 오랜만이야."


혹시, 주변에 아는 인간들이 더 있나?


머릿속으로 물어오는 청하에게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을 표현하자,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찬 청하는 이내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내게 별다른 짓을 하지 않을 생각인지 카운터로 다가가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려다가, 속으로 삼키며 등 뒤를 고개만 돌려 살펴본다.


"그래서, 일은 제대로 하고 있었느냐?"


"무, 물론이죠, 사장님! 일은 제대로 하고 있었다구요!"


"그럼 다행이구나. 어제처럼 손님이 왔는데도 딴 짓을 할 줄 알았더니."


"저도 일은 다 하고 쉬어요!"


"그럼, 어제는 왜 그렇게 있었는가?"


"그, 그건…."


"…책을 너무 좋아하는 것도 병이라네."


"그치만, 흥미로운 책들이 너무 많은 게 잘못이죠!"


"내, 자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직원으로 들인 게 잘한 짓인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일은 잘 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말을 말지."


한숨을 푹 내쉬며 직원에게서 시선을 떼고, 청하는 내 모습을 잠깐 보더니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어디로 가십니까?"


"의복을 갈아입으러 간다네. 아무리 그래도, 손님이 왔는데 이렇게 있을 수는 없잖느냐."


"…저, 이제 나갈 예정입니다만."


"뭣! 나와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예정이 아니었나!"


"그런 약속은 잡은 적도 없었고, 원하던 책도 직원 분께서 읽어주셨으니 됐습니다."


"나, 나보다 먼저 책을 읽었다고?!"


찌릿, 하고 직원을 째려보는 청하의 모습에 직원은 휘, 휘 하고 휘파람을 불며 시선을 피했다.


"…하아. 오늘은 되는 일이 없구나. 어쨋든, 알겠느니라. 조심히 가게나."


터덜터덜, 묘하게 지쳐보이는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걷는 청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출입문으로 시선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또 와 주세요, 손님! 약속이에요!"


"시간이 나면, 또 오겠습니다."


"다시 찾아오면 꼭, 나를 불러주게나! 아니면, 비늘로 호출해도 되고!"


"…비늘에 호출 기능도 있습니까?"


"그냥, 손에 꼭 쥐고 나를 생각하면 된다네."


그러니까, 도서관에 와서 직원에게 안내받지 말고 나랑 같이 다니게나.


머릿속으로 그렇게 전해오는 청하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이상하게도 알 것만 같았다.


거기에는 그리움, 기다림, 그리고….


집착이었다.


직원이 알려준 책의 내용대로라면 아마도, 용과 드래곤은 인간에게 매우,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확실했다.


그것도,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관심을.


거기에 적힌 마지막 글에도 용과 드래곤이 관심을 가진 인간은 어떤 방법을 써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니, 나 역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근데, 카페 사장님의 금향이라는 이름과 옛날에 불렸던 칭호를 생각해보면, 황금색 드래곤은 욕심이 강하다고 하지 않았나?


잘 모르겠다. 여러 책을 읽기는 했었지만, 그것도 좀 옛날이었고, 여기에 와서는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적응하느라 바쁘게 살다보니 잊어먹은 기억들이 좀 많았다.


인터넷에다가 그나마 흐릿해진 기억속에서 쓸만한 것들을 검색해보면 뭔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일단은, 집에 돌아가면 그때 가서 검색이나 해보자. 당장 집에 돌아갈 예정은 아니었지만.


이제 겨우 점심시간이 될 무렵이었고, 내게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었다.


문득, 청하의 모습을 보았다가 금향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하도 그렇게 되었는데 금향은 과연 괜찮은걸까. 청하보다는 역시, 자주 보던 금향이 좀 더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이대로 공원으로 가서 앉아있을 까. 하던 생각은 금향이 있는 카페로 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10분쯤 걸어가면 카페에 도착할테니 느긋하게, 좀 생각을 정리하며 걸어가면 괜찮을 것이다.


평소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카페를 향해 걷는다.


용이나 드래곤이나, 둘 다 비슷한 종족이니 취급… 아니, 상대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거기서부터 턱, 하고 막혀버린다. 내가 상대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막무가내로 들이박는 청하부터 시작해서, 은근슬쩍 다가오는 금향.


금향은 평소에 보던 모습이라면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집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청하는… 어제 처음 봤을 때부터 시작해서 도서관에 갔을 때까지, 인간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내게 별의별 행동을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금향은 좀 더 점잖은 느낌이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청하보다는 금향쪽이 더 편한 느낌이었다.


이런 편안함이 오래갔으면 좋으련만. 언제든지 청하처럼 바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아예, 연을 끊어버리고 카페도 찾아가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괜찮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복주머니도 그렇고, 금향에게 넘겨준 전화번호도 그렇고 생각보다 연이 깊어졌다.


아마, 이대로 연을 끊는다고 가정을 했을 때 전화번호도 차단하고, 복주머니 안에 든 비늘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둘이 나를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두 명 다 내게 찾아올 것이라는 예감이 확실하게 든다.


그리고, 그 뒤로 벌어질 일들은 용과 드래곤에게 집착당한 사람이 남긴 것이라 생각되는 책의 주인들처럼 되겠지.


어느샌가 내부의 모습이 여전히 개판으로 변해버린 카페 앞에 도착한 채로, 생각을 끝마치지 못한 채로 도착했다.


카페의 내부는 조금 정리가 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금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로 가지 않았다면 아마 내부에 있겠거니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대로 집으로 가버릴까 싶었지만, 청하를 만나버린 시점에서 금향을 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내게 없었다.


출입문이 잠겨있을 지도 모르기에 출입문을 똑, 똑. 하고 두번 두들기자 문이 알아서 열린다.


뒤에 금향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말 그대로, 아무도 없는데도 문이 알아서 열린 것이었다.


이것도 마법인 듯 싶었다.


문을 열지 않아도 자동으로 열리는 문이라니, 자동문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문보다 훨씬 편해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건 적어도, 누군가를 인지해야 열리는 문이었지만 이건, 그저 문을 두들긴 것 만으로도 열렸으니.


문이 열린 카페의 안으로 천천히 들어서니 반으로 두쪽이 난 카운터가 어느샌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 것이 가장 먼저 보였지만, 그 외의 것들은 전부 박살이 난 상태였다.


카페에 들어와서 어디를 둘러봐도 금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카운터 뒤쪽에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니 아마 저 안에 들어간 것 같았다.


…카운터 앞에 멀쩡한 의자가 하나도 안 보여서 내부에 그나마 멀쩡해보이는, 쿠션이 놓여진 의자를 하나 갖고와서 카운터 앞에 앉았다.


대체 쿠션도 얼마나 고급진 물건이길래 이 정도로 푹신한 느낌이 드는 건지.


이쯤 되니 굳이, 여기에 카페를 차린 금향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돈이 이 정도로 많다면 그냥 수도권에서 장사해도 문제가 없었을 텐데.


카운터에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금향이 언제쯤이면 나올까 기다리며 한 손으로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용과 드래곤의 대해 간단하게 검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