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몇 달 간 침대에 누워 계서서 전체적으로 근육량이 떨어지신 걸 제외하면 몸에 크게 문제 없네요. 아마 지금은 걷는 것도 힘드실 테니까 한동안 입원하시면서 계속 체크 해 봅시다. 그리고….”
의사는 앞머리를 매만지면서 말에 뜸을 들였다.
그리곤 내 머리를 찍은 엑스라이 사진들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봐도 뭔지 모르는데 크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외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신데, 그리 길지는 않지만 혼수상태가 뇌에 약간의 이상이 생기신 걸로 보입니다. 작년… 3월 17일에 교통사고를 당하신 이후의 기억이 없으시다고 하셨죠?”
“네.”
“환자 분은 2개월 전…, 6월 27일에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입원하셨습니다.”
“들었어요. 뭐 제가 운전하다가 유튜브 보면서 운전하던 상대 차량이랑 충돌했다던데….”
아직도 얼떨떨했다.
내가 기억 상실에 걸려서 1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렸다니.
그리고…. 그리고…. 하 씨….
아무튼 나는 솔직히 말해서 3월에 자동차에 부딪혀서 입원한게 맞고, 지금 이건 잘 짜인 몰래 카메라가 아닐까 싶었다.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작년 11월…, 아니 이제는 재작년인가.
아무튼 그 때까지만 해도 주연이는 어느 유튜브 채널의 편집자이자 pd로서 활동했다.
12월 즈음에 본인만의 채널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그만두긴 했는데 나를 이용해 몰카 콘텐츠를 기획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람 다친 거 가지고 그런 장난을 칠 놈이 아닌 건 아는데.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걔랑, 연애를 하고 있었다고?
‘손도 잡고, 같이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도 올리고, 친구들한테 남친 자랑도 하고, 키스도 하고, 여행도 가고, 세, 세, 세세 섹스도 하고?’
“끄아아악!”
“화, 환자분?! 갑자기 왜 그러세요. 혹시 갑작스러운 통증이라도….”
“아뇨,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동생이 말해줬던 충격적인 사실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여동생이나 주연이가 울먹거리던 연기도 그렇고 고작 유튜브 몰카에 의사와 병원까지 섭외가능할리가 없지.
진짜 방송이라면 또 모를까.
아무튼 나는 의사선생님과의 간단한 상담을 끝내고 내 병실에 돌아왔다.
내 병실은 조금 좁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한 1인실이었다.
나에게 자동차가 생겼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내가 기억을 잃은 사이에 나나 우리 가족 통장 잔고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복권이라도 당첨됐나.’
병실로 돌아가자 주연이가 안절부절한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보자마자 표정히 환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얼굴도 무서운 놈이 저리 순한 표정을 지으니 위화감이 든다.
친구일 적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야. 나 왔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의연하게 말했다.
이런 걸 신경 쓴다는 거 자체가 이상하기도 했고.
“아연이는?”
“아, 과일 사러 갔어. 방금 나갔는데 못 봤어?”
“걔는 또 뭔 과일이래.”
구우우우….
낮게 울리는 배꼽시계 소리.
내가 밥을 안 먹은지 얼마나 됐지?
두 달?
“역시 내 동생답게 나이스한 초이스야.”
나는 그대로 주연이를 지나쳐 내 침대에 올라탔다.
살이 쪼옥 빠져버렸기에 전에 없을 정도로 몸이 무척 가벼웠다.
대신 그 대가로 근육도 같이 빠져버린 탓에 지금의 난 스마트폰도 무겁게 느껴졌다.
침대 옆 서랍에 달린 거울로 모습을 확인해 보니 완전 병약 미소녀가 따로 없었다.
뼈와 가죽 뿐인 몸, 창백한 피부, 피곤함에 쩔은 눈과 고작 몇 미터 걸었다고 헥헥거리는 심장.
내가 내 외모를 보고 감탄하고 있자 주연이가 은근슬쩍 다가왔다.
어깨가 처지고 눈꼬리가 내려온 걸 보니 완전 비맞은 강아지 꼴이었다.
“…그 지아야.”
“스톱. 스-톱. 야, 미안한데. 조금만 있다가 얘기하지 않을래? 솔직히 나 좀, 머리가 많이 복잡해.”
제일 친한 친구랑, 나랑, 사귀고, 할 거 다 했다는데.
태연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뭉텅이로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아까 진료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리라도 마음껏 지르고 싶었다.
주연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복잡한게 나뿐일리 있을까.
주연이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1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그 기억을 홀라당 잃어버리고, 아직 남자였던 태가 벗겨진지 얼마 안 된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 지? 응….”
주연이는 마치 버려진 강아지처럼 고개를 떨궜다.
아니 근데 난 왜 아까부터 얘한테 강아지니 뭐니 하면서 이녀석을 좀 귀엽게 느끼고 있는 거지.
이게 바로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건가.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솔직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친구 관계였으면 편하게 욕을 하면서 1년 동안 무슨 게임이 나왔냐거나, 어느 팀이 우승을 했냐거나,그도 아니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도 했을 텐데.
대체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 될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야…. 그, 듣자하니깐 내가 운전하다가 사고난 거라고 했잖아.”
“아, 어 응. 걱정마. 보험 처리도 제대로 됐고, 유튜브 보면서 운전한 사람이긴 했지만 자기 잘못은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크게 문제 없이 해결됐어.”
“아니아니. 그거 말고. 그… 내가 무슨 돈으로 차를 산거야?”
“어?”
“그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내가 알바는 하고 있었어도 돈을 저축하진 않았잖아.”
나는 예쁘다.
남자였을 적에도 외모가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여자가 되면서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한 수준으로 변했다.
막말로 인스타 광고로 돈 받으면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
솔직히 걔네들보다 내가 더 이쁘긴 해.
하지만 그 때 당시의 나는 내 외모가 싫었다.
아예 꽁꽁 싸매고 다니면서 일부러 남자인 척 하고 다녔을 초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그 때 당시에도 내 외모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러 알바도 남들이 내 얼굴 보고 오는 카페나 피시방 같은 게 아니라 하루 내지 며칠 동안만 하는 단기 알바 위주로 했다.
그냥, 보험비 내고, 집에 식비, 관리비 보태고, 간단한 유흥비 정도 밖에 치루지 못할 수준.
그런 내가 차를 끌고다니다니,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못할 사치였다.
내 말에 주연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아니, 대체 뭔데 그래? 나 뭐 말 못할 일이라도 했어? 후원 사이트 개설이라도 했어?”
“아니 그…. 하….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괜히 뜸들이지 말고 그냥 말해. 그럴수록 그냥 불안하기만 하거든?”
“말해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아직 네가 받아들이기엔 많이 버거울 거 같아.”
“…대체 뭐길레 그런 소리까지 해? 나 뭐 진짜 내 자위영상이라도 찍어서 팔았어? 그래서 그래?”
“…….”
순식간에 주연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떤다.
나도 모르게 그를 배려하지 못하고 친구 사이였을 적처럼 별 생각 없이 섹드립을 해버렸다.
여자친구 입으로 듣는, 자기 자위 영상 팔아서 돈 벌었냐는 이야기.
나는 개병신이야….
“미안…. 내가 너무, 좀, 아니다. 진짜 미안….”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푹 숙여 사과하는 내 모습에 주연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눈치를 보던 내 어깨를 붙잡아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냐. 좀,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화낸 게 아니라 그냥, 새삼 다시 충격 받은 거야. 네가 진짜 아무 기억도 없다는 거에. 그리고 사귀고나서부턴 이거보다 수위 높은 섹드립 매일 들었어. 섹스섹스거리는 건 그냥 일상이었어..”
“어… 진짜?”
“어. 무슨 갓 자위 배운 사춘기 애들마냥 시도 때도 없이 야한 말하면서, 날, 그… 유혹해대고….”
“엄… 음….”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감돈다.
주연이는 입술을 지분거리면서 뭔갈 참는 듯 했다.
설마… 키스하고 싶어하는 건가.
확실히 자세가 키스 하기 직전 자세긴 하다.
주연이의 큰 손이 내 어깨를 붙잡고 있고, 서로의 어깨도 가깝다.
‘하 씨….’
남자일 적엔 늘상 부럽다고 생각했던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묘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박동이 점점 거세게 맥박친다.
내가 말 없이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 주연이도 내 변화를 눈치챈 것 같았다.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이 내 쇄골, 목을 타고 올라와 뺨을 어루만진다.
‘진짜? 진짜로? 여기서? 아니, 그 진짜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후끈한 열기가 뇌를 가득 채워서 사고를 어지럽힌다.
저항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마치 이러는게 무척 당연하단 것처럼.
그의 온기를 받아들인다.
솔직히 말해서 아예 각오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이런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너무….
‘빠르잖아….’
예상보다 너무 빠르고.
예상보다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누군가 말려줬으면 하는데 나는, 못한다.
주연이도 당연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
예상치 못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어깨에 놓였던 손은 어느샌가 허리를 붙잡고 끌어앉고 있었다.
점점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 지고.
서로의 숨결이 뒤섞인다.
나 원래부터 얘를 좋아했던 건가?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빠르게 암타해버린거야?
혼탁해지는 정신 사이로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야. 나 왔…는데…. 다시 나갈게. 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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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게 꽤 참신한 소재라고 생각했어...
근데 야, 책임져란 소설이 이거랑 거의 같은 내용이라네?
하 씨...
솔직히 말해서 이거나 어제 적은 농-쭉산업 플레이어를 노피아 챌린지 시작하면
연재해볼까도 했었는데... 하...
얘는 뭐, 19금 위주의 꽁냥꽁냥으로 갈까 생각중이긴했는데
아무래도 초반에 표절 아니냐는 얘기 많이 들을 거 같아서 걍 미리 포기해야 되나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