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카를, 너는 남자지, 응?"


 어머니에게 있었던 남아에 대한 들척한 강박은, 내 병 때문에 해소될 길이 없어졌다.


 "......."


 "카를, 네 아버지를 닮아 그리 무뚝뚝한거야?"


 영영.


 "저는 남성입니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그래서 나는 죄책감 때문에 어머니의 말에 대답하고 만다. 어쩌면 아버지 타령이 질려서일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받은 교육 때문일수도.


 "나한테 거짓말하지마! 네 몸의 어디가 직선이니! 나를 봐. 네 엄마를 속이는 거야......?"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아니, 아니다. 역시 죄책감 때문이다.


 어머니의 용모. 그 표피 아래로 흐르는 푸른 실핏줄은 유구한 황실의 황금혈 중에서도 으뜸 진한 것이 틀림없다.


 어머니의 얼굴은 고압적으로 구겨져도 아름답다. 그 얼굴은 백성들을, 두려워서가 아니라 경애해서 조아리게 만든다.


 지금 어머니는 그런 표정을 만들어서는 아들에게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너는 누구야?'


 '나는 당신을 닮았어.' 나는 생각했다.


 '내 얼굴을 보십시오. 어머니께 물림받은 가면입니다. 세상 남자들이 계집처럼 날 투기하고, 세상 여자들이 사내처럼 내게 무릎꿇는 것은, 모두 당신과 당신 남편이 나에게 내림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항상 그렇다. 내 습관이다. 어머니에게 언어로 복종하는 것.


 나는 다만 이렇게 말한다.


 "저는 유릭 공작의 아들입니다, 어머니."


 "난 믿지 못하겠어. 너의 외투부터가 악마의 기망인데 그 누가 네 말의 진심을 믿어?"


 그럼 나는 어떻게 나를 변호하지. 다른 모든 사람에게 듣는 말을 어머니에게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되고, 어머니는 그런 말이 나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 그 위에 소금처럼 내린다.


 병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좀먹어서 무섭다. 나는 여자가 되었을 뿐으로 이전의 모든 사무들과 사교들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이 병은 나의 이성을 좀먹는다. 나는 점점 아녀자처럼 변질되는 자신을 느낀다. 일처리, 말투, 마음가짐, 시선, 특히 어머니를 대할 때.


 어머니가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안다.


 요컨대 장황한 상황극이다. 어머니는 스스로 상황을 만들고 아들이 남성성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매번, 매양, 다른 방식과 다른 조건으로.


 아버지가 살아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아버지는 병으로 죽었고, 이제는 꽃밭 소녀처럼 멍청한 내가 유릭 공작의 후계자고.


 그리고 어머니에겐 나밖에 없다.


 아들이었던 여자아이. 그러나 어머니가 그토록 남아에 집착하는 연유가 대체 무엇인지. 나는 이 순간에도 염증을 느낀다.


 "너는 무엇이지?"


 어머니가 원하는 답을 해준다.


 "저는 이실레가 낳은 아들입니다, 어머니."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목소리만으로 사내들을 왕으로 만들었다가 내 하인으로까지 처박을 수 있는 목소리가 너무 걀프다.


 그럼 빌어먹을 어머니가 고개를 젓는 것이다.


 "나는...... 못 믿겠어."


 떨리는 목소리.


 그것도 녹인 금처럼 부드럽지만...... 나는 어머니가 연기를 하고 있는 줄 안다.


 이번에도.


 이 짓은 영원히 반복되는 정신병같다.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여태 보고 있던 나의 가녀린 어머니의 목이 나를 따라 젖혀진다.


 아까는 이 여자가 나를 내려다봤어. 나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면서 되뇐다. 자기암시.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한 예열 과정.


 "이실레."


 어머니의 어깨가 떨린다. 이제는 눈동자가 보인다. 금실같은 머리카락 몇 가닥 드리운 블루베리색 눈동자.


 떨리고 있다.


"......너, 엄마한테, 뭐라고......."


 "이실레. 넌 왜 나를 못믿지?"


 어릴 때 어머니의 눈동자는 그렇게 빛나고 강고했건만. 그것이 내 귀족의 눈동자라며 만 번 넘게 닮고팠는데.


 "그야, 너, 너는, 뭔지 모를, 사생, 네 아버지의......."


 "닥쳐, 이실레. 나는 네 아들이야."


 그 얄팍한 부정. 스물도 넘게 반복해서 논파된 것들.


 그래서 나는 내 어머니를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명령이야. 내가 누군지 말해."


 내가 어머니의 목을 앙상한 이 손으로 짓누를 때, 그녀에게 안기던 소년기와 다를 게 없어진 엉덩이의 무게를 양팔 아닌 아랫배로 받아내면서.


 그녀의 눈이 떨리는 것은.

 두렴 때문인지 희열 때문인지.

 그걸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 말해."


 나는 씹어뱉는다.


 나는 내가 누군지 스스로 정할 수 없다. 어머니를 겁박해서 나를 규정하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내 남은 전부인 어머니에게 결코......


 "너는 카를이야. 내 아들......."


 "아."


 머리가 뜨끈해지면서 어머니가 의도한 안도감이 화재처럼 몰아친다.


 허락을 받았다.


 어머니의 눈이 만족으로 탐욕스럽게 번들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만큼은, 어머니는 손바닥으로 내 뺨의 여성스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모양이다.


 오늘도 어머니의 아들로 남을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께 사과하고 방을 나왔다.


 나오기 전에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들이야......."


 그러나 내일은 어떨 것인가.


 피로가 진했다. 벌써 해가 진지 오래였다. 방으로 돌아와 알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이때 나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과년의 탐스런 아낙이다.


 그러나 나는 손등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 번 비극의 주인공처럼 말해본다.


 "나는 카를이야."


"카를라."


 다음날 아침, 누나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오늘 어머니를 찾아갔는데, 어머."


 누나가 소녀처럼 눈을 감았다. 나는 잠들 때의 알몸으로 화장대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니지, 여동생인데 뭐."


 누나가 장난스럽게 눈을 떴다.


 "아직 새벽이야. 식사하고 얘기하면 안될까?"


잠을 설쳐서 몸이 뻑쩍하고 나른했다. 스스로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은 게 느껴졌다. 누나에겐 이러기 싫어서 괜히 기침을 했다.


"아, 어머니 목에 멍자국은 내가 그렇게 했어."


 그러자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또 그러셨지? 남자니 여자니...... 보이는 것만 보면 되는데."


 나는 누나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얼굴에 분을 칠했다.


 "화장 도와줄까"


 "아니."


 나는 시녀네 도움도 안 받았다. 그들과의 어색한 관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들의 능숙한 손길에 몸을 맡기면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 내가 남자였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손재주 덕분에 스스로 화장해서 모나지도 않고, 그 편이 나았다.


 그러나 누나는 천연덕스럽게 내 등 뒤로 돌아와서 머리카락을 쥐었다.


 "땋아본 적 없지?"


 관심없다.


 "일부러 자른거야. 관리하기 귀찮아서......."


 "잘라도 땋을 수 있어. 작게 하면 돼. 너는 그 편이 예쁠 거야."


 "이러지 말지."


 나는 항의의 표지로 거울에 비친 누나를 노려보려다, 문득 가슴에 들어온 한기 탓에 그냥 깔고 말았다.


 계집 근성.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나가 나를 여자애로 취급하려는 심보는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날 때부터 나의 정적이었고, 그러나 어머니의 편력 때문에 나를 아주 고까워했다.


내가 사슴 사냥 중에 낙마 했을 때도 오지 않던 병문안을 병 걸린 그날 왔었던 이유도 보인다.


 그로부터 바짝 살가워진 누나는, 그러나 껄끄럽게도 어머니 문제로 의지할 사람이 없고 온갖데서 수모와 굴욕을 감내해야했던 투병 초기의 심력 저하 탓으로 인해 내게는 정말 단비같은 사랑이었다.


 여자가 되고 내 마지막 탑을 무너뜨린 게 어머니였고, 그 위에 새로 쌓아준 게 누나였다. 나는 그점을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처럼, 미끄럽던 누나의 눈이 냉혈동물처럼 차가워지면, 나는 거기에 순종하고 만다.


 바로 그점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단 말이다.


 어느새 내 머리를 볏짚처럼 꼬아버린 누나가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잘 됐다. 예쁘지?"


 그것은 누나가 요즘 즐기는 화법이었다. 내가 부모님을 닮은 이 얼굴을 두고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응."


 "어머니 일은 모르는 걸로 할게. 너무 심하게만 하지 마."


 누나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누나가 어머니를 나보다도 하찮히 한지 오래되었다는 걸 안다.


 누나는 이것이 기쁘기라도 한듯 내 머릿결을 쓸었고, 오소소한 기분에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럼 아침 식사할 때 보자, 카를라."


 누나는 기어코 화장을 해주고 입을 옷까지 정해준 다음에 떠났다.


 빈혈 때문에 어질머리가 있었다.


 "......이거 말고, 저번에 샀던 걸로 가져와요."


 나는 옷을 가쟈온 하녀에게 그렇게 지시했다. 드레스는 안된다. 가문 종속의 옷장이가 만드는 남성 정장은 양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아니고, 어머니의.


 하녀 한 명을 더 불러서 약을 가져오게 하고 옷이 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나는 머리를 짚은 채로 멍하니 거울을 보고 있었다.


 탐스런 가슴과 매끈한 쇄골과...... 여자한테 욕정한 적은 없고 남자한테도 물론이다.


 그러나 가끔씩 꿈을 꿨다. 오늘도 마찬가지였고, 일어났을 때는 몸에 땀냄새가 녹진했다.


의사한테 말했더니 성적인 환상통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의사를 쫓아내고 황실에서 주선받은 새 주치의를 들였다. 내 병은 귀하지만 유일한 건 아니다.


 의사한테 처방받은 약은 조금 도움이 됐다.


 나는 약을 먹고, 옷을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어쨌거나 현실은 그 자리에 있다. 나는 꽤 버텨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실만이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튿날의 문중 회의에서 내 호적을 박탈하기로 결딴이 나기 전에는.


 나는 가문의 노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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