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여러모로 인생이 뒤흔들릴만한 시간이 지나고, 실의에 빠졌던 기간은, 아니 실의에 빠질 수 있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사람이 아무리 의욕이 없고 희망이 없다한들 근본적인 욕망을 이겨낼 수 없고, 사람은 스스로를 죽일 수 없는법이니.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든, 천장에 목을 매달든간에 결국 나를 죽이는 건 행성의 중력 탓이니까.


배고픔이라는 단순한 욕망에도 이겨내지 못한 채 비척이며 걸어간 끝에는, 한동안 사용치않아 먼지만 쌓인채 방치된 가스레인지와 경첩이 잔뜩 녹슨 찬장이 있었다.


다만, 결국 밖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추가적인 보충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마침 장을 볼 생각이었었기에 찬장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이라도 건져보려 손을 휘적휘적 저어보아도, 먼지만 휘날릴 뿐 별 수확은 없었다.


찬장을 닫고, 다시금 침대의 한켠에 웅크리려 가려하니 찬장의 깊숙한 곳에서 붉은색의 무언가가 반짝였다.


혹시나 오랜 기간 잊은채로 방치해두었던 라면은 아닐까 생각하며 손을 깊숙히 뻗었다.


그럼에도 닿지 않아 싱크대 위에 발을 올리면서까지 팔을 뻗어야 겨우 그 빨간 봉지를 꺼낼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것은 먼지가 잔뜩 쌓이긴 했지만, 내가 바라던 것이 맞았다.


그리고 아주 살짝의 기쁨과 동시에, 나는 살짝 흐트러진 중심 탓에 쾅.하고 뒤로 넘어지고야 말았다.


등허리의 아픔을 견디고 겨우겨우 끓여낸 라면의 맛은, 유통기한이 오래 지났는지 오래된 기름의 맛이 났다.


...이런 건 알고 싶지 않았는데.


ㅡ필자의 경험담 : "1년지난 라면"에서 각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