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귀족을 함락시키는 방법

글모음집





긴 침묵이 이어졌지요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여러 번 들었다가입술만을 적시고는 내려놓았습니다.

 

슬쩍 올려다본 여주인은 여유로운 표정을 한 채 고민하는 당신의 표정을 하나하나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만일 제가 거절한다면저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러자 여주인은 손을 내밀어 당신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러면...”

 

지하실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야. 그리고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으면서 지내겠지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당신은 침묵했습니다어떤 답변도 섣불리 내릴 수가 없었죠.

 

긍정이나 부정을 표하는 대신 당신은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제가 아가씨의 제안을 승낙한다면제가 아가씨께 굴복했는지아닌지를 어떻게 판별할 생각이시죠?”

 

 

그녀는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반응이었어요.

 

 

물어보면 되잖아.”

 

 

당신은 이해되지 않은 얼굴을 한 채로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봤습니다당신이 바라는 것좀더 긴 설명을 그녀는 기꺼이 제공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뒤당신에게 물어볼게그럼에도 당신이 내게 복종을 맹세하지 않는다면당신이 이긴 거야.”

 

그렇게 너무 간단한...”

 

간단하지만,” 강조를 섞으며 그녀는 말했습니다. “확실하지.”

 

 

그녀는 한번 찻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았습니다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당신을 스쳐갔습니다그리고 그녀는 그런 당신의 반응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는 것처럼 조용히 바라보았지요.

 

 

어떤 강제적인 수단도 쓰지 않을 거야나는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노예를 원하니까.”

 

 

마시는 것을 별로 본 적도 없는데 어느새 내려놓은 그녀의 찻잔은 비어있었습니다다과 하나가 바스라진 채로 남아있었지요차가 비었으니 더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처럼여주인은 자리에서 일어섰지요.

 

 

언제든생각이 정해지면 말하러 오도록 해다만그것 하나만 알아주겠어?”

 

그게 뭐죠?”

 

한쪽을 선택하면다른 쪽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영원히.” 

 

 

당신은 말없이 가벼운 목례만 하고 여주인의 방을 떠났습니다.

 

지금의 대우는 명백히 좋았지요.

 

여주인은 친절하고 상냥했습니다저택에서의 생활은 안정적이었고당신은 어떤 것을 해도 제지받지 않았어요.

 

당신이 꿈꿔왔던 취미도 여주인의 대서고에 있던 서적과 저택의 자금력으로 손쉽게 풀려갔어요

 

당신이 이 생활도 괜찮겠다 생각했을 때당신은 갇혀있을 때 수없이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가문을 내 손으로 재건하리라.’

 

역사는 나를 몰락한 가문을 다시 세운 위대한 가주로 기억하겠지.’

 

명예와 칭송에 언제나 당신은 고파했지요.

 

그렇기에 당신이 얻을 막대한 명예는 당신에게 커다란 동기였어요.

 

말하자면 당신이 목말라했던 바람이지요.

 

하지만한편으로는 여주인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습니다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당신의 충성을 얻어낼 수 있다는 듯한 당당한 태도였어요

 

당신은 많은 것을 알지만 이런쪽에는 백치처럼어린아이처럼 무지했습니다

 

어떻게 당신을 굴복시키고당신의 의지를 꺾을 수 있을지당신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미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서늘하게 당신의 몸을 감싸안았지요

 

그러나 당신이 등골에 오싹하게 오르는 땀을 느끼며 메마른 침을 삼킬 적에는 그런 공포감만이 당신을 지배한게 아니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 당신은 모질고 고통스러운 학대 끝에 비굴하게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의 그 연약하고 새하얀 피부가가학으로 인한 새빨간 핏자국과 어두운 멍자국의 캔버스가 되었지요

 

그런 상상을 떠올리자마자 당신은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변태가 아니라고 스스로 부정하면서요

 

절대로 그런 것에 집착할 리가 없다고 부정하면서요...

 

 

...

 

 

어머언제든 찾아와도 좋다곤 했지만이런 늦은 시간에 찾아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게...”

 

 

결심은 했지만그 결심은 꽤나 시간을 잡아먹었어요.

 

취침시간에 가까운 시간이었기에더욱 망설여졌지요.

 

평소와는 다른 좀 더 가볍고하늘하늘한그래서 더 선정적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채여주인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당신을 마주했지만그 태도는 아무리 봐도 마치 당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린 것처럼 보였어요.

 

여주인은 당신의 시선을 의식하듯 그녀의 연보랏빛의 맨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꼬며딴청을 피우듯 말했지요,

 

 

악몽이라도 꿔서 응석을 부리고 싶어서 온 거려나...?”

 

 

결국 이건 당신의 입으로 말하라는 뜻입니다당신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어결심한 것을 말했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무슨 제안?”

 

 

이건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것이었지요.

 

눈치없는 어떤 누구라도그녀의 생글생글 웃는 여유로운 표정을 본다면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수치심을 이겨내고그녀가 바라는 대로 해주기로 했어요.

 

앞으로 겪을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아가씨의 제안대로... 저는... 아가씨께서 주신 제 손님의 지위를 버리겠습니다...”

 

흐응?”

 

그리고 일주일 동안... 그러니까 저는... 아가씨의...”

 

“...”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그런 굴욕을 입에 담을 줄은 몰랐죠.

그러나, 결국 그건 해야만 하는 말입니다.

당신은 수치심에 악물었던 입을 천천히 열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어요.

 

아가씨의... 노예가... 되도록 할게요.”

 

 

결국 당신은 말해버렸습니다.

 

당신을 농락하기만을 바라는 이의 손에 당신의 몸과 마음을 내맡겼지요.

 

비록 당신이 귀한 손님 대접을 받을지라도황금새장에 갇힌 공작새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저택에서의 시간이 당신에게 깨우쳐 준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러나자존심은 바닥에 던져 버릴지라도 긍지는 당신의 것입니다.

 

귀족의 긍지를 갖고책임을 다하는 이상 당신은 더럽혀질지라도더럽혀지지 않는 고귀한 피의 소유자였지요.

 

그렇기에당신은 스스로를 판돈으로이 도박에 당신을 내맡긴 것입니다.

 

한편 입을 가린채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여주인은당신이 내뱉은 말이 그 무엇보다도 달콤한 디저트인 것처럼 되새기면서 음미하는 듯했어요

 

 

좋은 결정이야.”

 

 

그리고 당신에게 다가와서는 당신의 손목을 붙잡고 당신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당신의 눈과 그 눈을 마주칠 수 있도록 당신의 턱을 올려시선을 일치시켰습니다.

 

퇴폐적인 미의 금빛 눈동자그 눈 속에 비친 것은 오직 혼탁한 욕망의 소용돌이였을 뿐입니다.

 

당신에게 향하는 육욕의 갈망이당신의 가슴을 음습한 안개로 뒤덮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감정 또한 읽힐 것이라는 생각에 당신은 굳센 결의를 담아 그녀를 마주하려고 했지만,..

 

 

으읍-!”

 

 

처음은 충격이었어요그 다음은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질척한 쾌락의 쇄도였지요

 

입을 다물려 해도그녀는 억지로 입을 비틀어 열었습니다그리고 당신의 입을 무참하게 범했어요.

 

그녀의 향기가 당신의 온 입에 퍼져서는 당신의 비강을 온통 채웠습니다

 

최후의 저항으로 당신은 움직이는 그녀의 혀를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그 좁은 공간에서 그녀의 포식하는 움직임을 피할 수는 없었어요

 

결국어떤 저항도 무용에 가까웠기에당신은 이 타액의 얽힘이 어서 끝나기를그래서 당신을 사로잡은 이 정체불명의 기분좋음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당신에게서 입을 뗐습니다

 

느릿하게 혀를 다시 집어넣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미식을 맛본 미식가의 그 느낌과 같았지요.

 

그래요그것이 당신의 처음으로 경험한 키스였지요원래대로라면 신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고는사랑의 맹세로 처음 시작했어야 할 키스였지요. 

 

그러나이 키스는 억압의 맹세였지요몰락한 스스로의 처지를 실감하게 하는 폭력이기도 했고요.

 

 

이번엔 네 쪽에서도 맹세의 키스를 하렴.”

 

 

당신은 망설이며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 했습니다그러나...

 

 

아니그쪽이 아니야.”

 

 

그녀가 한번 손짓하자당신은 보이지 않는 강력한 마법적인 힘에 억눌렸습니다강제로 누군가가 어깨를 짓누르듯 당신은 그녀 앞에 무릎 꿇게 됐어요.

 

고개를 올려보자 보이는 것은...

 

 

 

그녀의 벗은 맨발.

 

연보랏빛의 창백하고 부드러운가느다란 세공품같은 그녀의 발가락이 도발하듯이 당신을 향해 까닥거렸습니다.

 

 

네 입으로 말했었지그렇다면 네 각오를 이쪽에도 보여봐.”

 

...“

 

핥아.”

 

 

굴욕치욕당신은 그런 단어들을 떠올렸지만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쓰디쓴 쓸개를 일주일간 핥을 심정으로아니 더한 더러운 것도 입에 가져갈 심정으로 당신은 이미 각오했지요.

 

그러니... 이런 굴욕정도는... 

 

오히려 발이라는 것을 잊는다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것을... 당신은 감내하면서 핥을 수 있었습니다.

 

발가락 끄트머리에서부터 혀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고 여린 선을 따라 그녀의 발목까지 간질이듯 궤적을 남겼습니다찰박거리는추잡한 소리 속에서여주인은 가슴 깊은 곳에서 고양되는 정복감을 느끼며 당신의 맹세를 즐겼지요.

 

 

아주... 좋아... 만족스러워...”

 

 

그대로 무릎 꿇은 당신의 맹세를 즐기면서그녀는 열띤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녀는 문을 향해 손짓을 했습니다그러자 3명의 메이드들이 기다리고 있던 듯이 여주인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한창 맹세에 열중해있던 당신은 기겁하며 입을 발가락에 뗐습니다

 

 

아가씨...”

 

주인님.”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당신은 빠르게 당신의 실수를 눈치챘습니다.

 

 

죄송합니다주인님그런데 이 사람들은...?”

 

아아앞으로 일주일간 나를 도와 당신을 교육해줄 메이드들얼굴은 이미 알고 있을까?”

 

 

그것은 물론이었습니다

 

항상 쾌활하게 말을 붙여주던 주방의 메이드와첫날에서부터 당신을 보좌하던 과묵한 메이드장그리고 먼 발치에서 음침하게 당신을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짓던 재봉실의 메이드.

 

세 명 모두 전부 당신의 기억에 남는 이들이었죠.

 

 

나는 당신에게 상과 벌을 주는 역할만을 맡을 뿐, ‘교육은 이 메이드들에게 부탁할테니 잘 따라주기를 바랄게.”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여주인이 직접 당신을 조련하는 것은 기품 있는 행위로 보이기는 어려웠지요.

 

그렇기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당연한 것으로 넘기기로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기묘한 느낌을 당신은 그것을 그저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느낀 그 감정이 실망이라는 것은그때의 당신으로서는 눈치챌 도리가 없었을 거에요

 

그렇게 약속된 1주일의 첫날이 시작됐습니다





진사령 일러 ㄹㅇ 취향임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분량이 엄청 길어질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