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절 설을 맞이하여 소개하는 붕괴설화 1편 
야해 사구라(夜亥士口螺)는 동영의 한 마을에서 무당질을 하는 계집이다. 무당이라 함은 목민심서에 나오듯 팔반잡류(八般雜類)의 하나로서 천출중의 천출이었다. 
사구라는 비록 그 신분은 비천하나 무에 뜻을 두고 정진함을 개을리 하지 않았다. 마을에 붕괴수들이 들끓자 때가 왔음을 알고 영도 후부기(後不氣)를 꼬나쥐고 거병하니 많은 천출들이 그를 따랐다. 


머나먼 구라파(欧羅巴)에서 온 카래 가수라나(㻔來歌水裸裸)는 조선여행을 마치고 동영땅을 여행중이었다. 여행중 한 동영의 무사가 후부기를 꼬나잡고 몸엔 세실(世失)을 둘러매고 싸우는 꼴을 보았는데, 이는 조선에선 세실후부기라 하여 사용하긴 커녕 이름만 입에 올려도 따귀를 맞을 짓이었다. 조선의 무인이었다면 삼검예가(三劍藝可)를 사용하여 단숨에 적을 소탕했을것인데 한참을 고전하자 애처러운 연민에 삼검예가를 소개해 사구라를 돕고자 했다. 


가수라나는 사구라에게 삼검예가를 보이며 '이것은 우리의 말로 3rd라 하는 것인데 그대들의 말로 삼검(三劍)이라 하겠소. 이 검을 들고 예가대리나(藝可大利儺)를 입는다면 거뜬히 괴수 일당을 소탕할 수 있을것이오.' 그말을 들은 사구라는 분개하며 일어나 단숨에 가수라나의 따귀를 쳐올리고는 삼검과 예가대리나를 힐끗 보고 말했다. '이것을 한번 쓰고자 하면 칼질을 백번 휘둘러야 하며 또한 끊김이 없어야만 제 기능을 발휘하니 싸우기도 전에 지칠 뿐더러 불편하기 짝이없소. 더,불어 이름이 3rd라 했는데 이는 우리 말로 삼검이 아닌 샛째, 즉 삼류(三流)를 뜻하오. 내 비록 신분은 비천하나 배운것이 없는것은 아니니 더이상 헛소리를 일삼는다면 내 즉시 참할것이오. 머나먼 이국땅에선 삼류가 제일일지언정 이곳엔 일류(一流) 무장인 세실후부기가 있으니 방해말고 썩꺼지시오.'


가수라나는 볼을 부여잡고 '오올부루(五兀不累)가 이곳이라 하여 바다건너 찾아왔으나, 말을해도 알아먹지 못하니 과연 옆나라 조선과 중국에서 이곳을 왜(倭)라 부르며 격하하는지 알만하다.' 하곤 행장을싸 마을을 급히떠나니 마을사람 모두가 세실후부기를 외치며 이르길 '다신 동영을 무시하지 마라!'를 연호하자 붕괴수 일당은 잘못을 사죄하며 물러갔다. 이로서 세실후부기야 말로 일류중의 일류임이 만천하에 밝혀졌으니 천하에 정의가 바로 섰다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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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절 설을 맞이하여 소개하는 붕괴설화 2편 
본디 동방에선 새해가 밝으면 웃어른들에게 예를 올리는 것이 도리였다. 허나 오랑캐 출신인 대리사 아포가리수(大利士 兒泡假理水)는 중국의 예법을 깔보고 따르지 않았다. 대리사는 우다(友多)를 등에 들쳐매곤 오랑캐의 경문인 대리대리(大利大理)를 외치며 마을의 기강을 어지럽혔다. 


후가(後可)는 중원에서 강호에 뜻을 두고 견문을 넓히고자 강호를 밟았다. 근래 민심이 흉흉하다 들은바 있으나 오랑캐가 백주대낮부터 사방을 활개하며 전도를 일삼는 꼴을 보자 통탄한 마음에 지나칠 수 없었다. 후가는 객주에 들러 주인인 아이장(兒夷葬)에게 묻자 근래에 출몰하여 우다제일(牛多第一)을 주장하는 오랑캐이나 그 힘이 강대하여 내쫓을 수 없다 하였다. 


모름지기 강호의 의리란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아니하는 법. 후가는 대리사에게 어찌 중원의 땅에서 오랑캐의 종교를 전파하냐 묻자 대리사는 웃으며 말하길 '우다야 말로 제일의 병기이며 무과금 누비(無課金啂卑)들의 희망이니 따르면 복이있으리라'말했다. 후가는 대리사의 망언에 정신이 혼미하고 괴로웠으나 계속해서 물었다. '허면 요즘 강호에서도 널리쓰이는 삼검예가(三劍藝可)는 어떻게 평하시오? 이또한 무과금 누비들의 제일 무장아니겠소?'하고 묻자 대리사는 '우다지존 미만잡(友多至尊未滿雜)이라 평하며 삼검예가를 잡것에 비유하니 후가는 분기가 치밀어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에 옆에서 보다못한 아이장은 '내 비록 장사치이나 각각의 무장은 나름의 쓰임세가 있는 법이오. 우다가 좋은 병기일지언정 삼검예가는 도검의 제일이오, 철수세빈담(鐵水世斌淡)은 병기의 제일이니 어찌 우다만이 제일이라 평하시오?' 이에 동의하는바 있어 후가또한 아이장의 말에 동조하자 아이장은 신나서 말을 이었다. '누비라 한들 철수세빈담만 있다면 중원제일의 문파인 기계파(機械派)에 입단할 수 있으니, 철수세빈담만 모은다면 무과금누비도 두려울게 없을것이오.' 그러자 대리사는 아이장의 따귀를 쳐올리며 말했다. '철수세빈담은 과금생존 무과금시망(金啂生存 無金啂時亡)이라.' 그러자 후가또한 동의하며 말했다. '그대의 말처럼 중원에서 기계파의 권세가 막강하나 기계파에 입문하는 것은 부유한 사대부들에게나 가능한 일. 가난한 무과금누비들에겐 어울리지 않소.' 그러자 아이장은 코웃음 치며 말하길 '운있는 자라면 한번의 가차(假嗟)로도 원하는 것을 뽑으니, 가차 네번에 철수세빈담을 못뽑는다면 그건 운이 나쁜 누비탓이지 어째서 내 탓이라 그러시오?' 후가는 이에 분기하며 아이장의 따귀를 두번 쳐올리며 말했다. '내 그대를 정도의 길을 걷는 상인으로 보았으나 이제 보니 이문에 눈이먼 장사치였구나, 네놈 하는 짓이 저 가패(家敗)의 비덕(肥德)들의 행태와 다를바없으니 내 당장 너를 참해야 마땅하나 새해부터 목숨을 취하는 것은 흉사이니 특별히 봐주겠다.' 그러자 아이장은 쏜살같이 줄행낭치니 그 속도가 발군이었다. 


이에 후가는 깨달음을 얻은바가 크다며 대리사에게 포권하자 대리사는 웃으며 '대리대리 다이소리(大利大理多利昭理)' 라 읊으니 과히 명문이었다. 


주석:大利大理多利昭理-대리대리 다이소리, 크게 다스리니 크게 이롭고 밝게 다스리니 많이 이롭다. 
​무술년 새해복 많이들 받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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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절 설을 맞이하여 소개하는 붕괴설화 3편 
간초(奸超)는 고을에 새로 부임한 관리로 그 직책은 함머장(艦帽長)이었다. 함머장이라 함은 가패(家敗)일당의 수장을 일컷는데 가패 일당이라 함은 붕괴의 난에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나라에서 설립하였으나 작금에 이르러 가패에 소속된 비덕(肥德)들의 행패와 패악질이 도를 넘으니 그들의 수장이라고 다를바 없었다. 특히 간초는 계집질을 일삼으며 그들의 치장과 도박질인 가차(假嗟)에 재산을 탕진하는 등 그 행실이 비루하였으나, 여인을 가리지 않고 첩으로 들이니 갈곳없는 여인들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간초를 찾곤 하였다. 


올라타 희매고(兀裸楕喜買苦)는 양반집의 규수였으나 병약하여 27세가 넘도록 혼사를 치루지 못하니, 작금에 이르러 마을 최고(最高)의 노처녀였다. 병약하거나 늙은 아녀자를 아내로 삼을 사대부는 많지 않은데 병약한데 늙기까지 한 희매고를 처로 들일 사대부는 더더욱 없었다. 


희매고의 애처로운 사연을 들은 간초는 희매고의 상판을 보고는 제법 반반하다 여겨 선심쓰듯, '내 본디 혼기를 놓친 아녀자와는 말을 섞지 아니하나 병약하여 그러하다는 너의 딱한 사정을 고려하여 수청을 만족스럽게 든다면 내 특별히 너를 첩으로 삼겠노라' 고하였다. 
희매고는 '내 비록 병약하여 혼기를 놓쳐 혼사에 들진 못했으나, 사대부의 여식으로서 학문을 개을리 하진 않았으니 가패의 패악질을 모르는바 아니다. 가패의 비덕들이 분수도 모르고 당랑거철 하는데 그들의 수장인 너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리라. 비록 이 나이를 먹도록 혼례는 못올렸을지언정 사내 보는 눈이 없는것은 아니니 썩 꺼져라.' 하고 도리어 간초를 호통치는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간초가 대노하여 발을 구르니 그 풍만한 풍채가 진동했다. '이년을 당장 담색(膽穡)에 보내어 부역을 지게 하라'고 명하니 비덕들은 즉시 따랐다. 
담색(膽穡)은 쓸모없는 노비들에게 보내는 부역으로 도성 밖 허허벌판에서 사성(四星)보물이라 불리우는 방패, 거울, 토빈(土彬)을 구해오는 것인데 이것들은 사성보물이라는 이름답게 구하기가 실로 어려웠다. 매일같이 담색에 나가 돌아오면 간초는 '오늘은 사성보물을 구하였느냐' 하고 물었는데, '구하지 못하였나이다'하고 고하는 자에겐 따귀를 쳐올리며 쓸모없는것 하곤 다시 담색을 보내곤 하였다. 부역을 해본적 없어 사성보물을 구하지 못하는 희매고는 매일같이 다른일은 하지 못하고 오직 담색만을 하니, 그 삶이 무당질하는 계집보다 못하여 양반임에도 천민보다 못하다 할 수 있었다. 


기붕이(奇朋利)는 숨을 잘 참는 재주로 과거에 급제하여 그 뜻을 이루고 주상에게 명 받아 탐관오리를 물색하는 암행어사였다. 고을을 지나가다 새로 부임한 간초가 양반집 규수마저 부역인 담색에 동원한단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 상황을 보니 그 꼴이 가관이었다. 즉시 마패를 들고 출두하여 간초와 그 수하들을 일망타진하여야 마땅했으나 그 수가 너무 많아 고뇌하였다.  
기붕이는 기아나개로리(奇兒裸改魯悧)라는 영험한 서책을 읽으며 그 방법을 강구하였는데 서책에서 이르길 노처녀와 대검손혈(飡血)의 기운이 잘 맞으니 이는 태산도 가를만 하다 적혀있었다. 마침 기붕이는 손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전 중원에서 도망친 아이장(兒夷葬)이란 장사치의 볼기를 치고 압수한 물건이었다. 기붕이는 희매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손혈을 쥐어주자 병약했던 희매고의 얼굴에 혈색이 돌고 기운이 좋아졌다. 


대문을 박차고 기붕이가 '손혈희매고 출두요' 하고 출두하자 비덕무리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서로 남탓하기 급급했다. 보다못한 희매고가 손혈을 휘두르자 그 위력이 발군이니 태산을 가를만 했다. 이로인해 패악질을 일삼던 가패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탐관오리 간초까지 잡으니 만사가 형통하여 고을의 기운이 바로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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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절 설을 맞이하여 소개하는 붕괴설화 4편 
부로나(不老裸)는 어릴적 부터 그 기골이 장대하고 날렵하여 무예가 출중하였는데 그중 활 솜씨가 으뜸이었다. 그 활 솜씨는 무엇을 타더라도 결코 모자람이 없으니 이는 천고의 기재요 무골을 타고났음이라. 부로나는 일찍이 작은 여시종을 타고 전장을 누비는 것을 즐겼는데 어딜가든 여시종을 타고 다녔기에 무지한 자들은 그 시종이 부로나인줄 알고 절을 올렸다가 곤욕을 치,르거나 시종을 탄 부로나의 그 장대한 위용을 보고 기겁하기도 하였다. 장성한 부로나는 무과에 급제함은 물론이오, 그 재능과 충의를 인정받아 차기 조선제일의 후기지수로 발탁되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부로나의 재능에 다른 인재들의 재능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하여, 부로나존망개이무(不老裸尊亡慨夷茂)라 칭하고 그를 폄하했으나 붕괴의 난이 일어나 사회가 어지럽자 세속에 은거하던 위인들이 분연히 일어서니, 작금에 이르러 중앙에는 기구라(中機口螺)가 있고 좌 생리사(左生利士) 우 월방(右月方)이 있으니 어찌 부로나만이 으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사구라(士口螺)는 그 태생이 왜(倭)에서 무당질을 하던 계집이나 절차탁마하여 철수세빈담을 갖춰입고 세실후부기를 칭송하던 과거의 업보를 떨쳐내니 기구라라는 새 이름을 받고 기계파(機械派)의 수장으로 추대 되었으며, 월방 기아나(月方奇兒裸)는 그 배움이 일천하여 지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으나 의협심만은 출중하여 토루(土淚)를 꼬나쥐고 호를 월방이라 칭하고 봉기하여 수괴일당을 대거 숙청하였고, 대리사(大利士)는 중원에서 깨달음을 얻고 대리대리 다이소리(大利大理多利昭理)를 몸소 행하고자 생리사(生利士)로 개명하고 조선의 백성을 도우니 모름지기 영웅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닌 분연한 노력으로 탄생하는 법이다. 부로나 또한 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니 마침내 나라의 중책 맡아 구로냐(毆老裸)로 개명하고 영웅의 행보를 걸었다. 


허나 붕괴수라 불리우는 역적패당 수괴의 규모가 날로 방대해지니 제아무리 소탕한다 한들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수괴일파의 군세가 막강하여 퇴로를 차단당하자 월방 기아나와 생리사는 부로나에게 이르기를 '우리 중 그대만이 탈것을 타고 있으니 서둘러 퇴각하여 남은 세력을 규합하고 절차탁마하시오'했다. 이에 부로나는 의연히 칼을 뽑아 타고 있던 시종의 목을 베버리니 그들이 기겁하며 사유를 물었다. '탈것은 언제든 새로 살 수 있으나 그대들과 같은 호걸은 얻을 수 없으니 내 이곳에서 그대들과 싸우겠소' 이에 기아나와 생리사는 감격하여 옥루와 같은 눈물을 흘렸다. 
셋이 힘을합쳐 전력을 다하니 생로가 열리고 탈출에 성공하였다. 구로냐의 호연지기에 감동한 생리사와 월방 기아나는 그와 뜻을 함께할 형제임을 맹세하니. 후세는 이를 두고 과금결의(課金決意)라 칭했다. 


세력을 규합하여 반격의 기회를 노렸으나, 부로나는 부족함을 깨닫고 지략을 얻고자 월방, 생리사와 거동하여 무호흡 기붕이(無呼吸奇朋利)에게 그 가르침을 청했다. '대인의 재능이 기묘하여 숨을 참는 재주만으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들었으니 그 기회를 엿보는 재주가 천하에 따라올자 없소, 우리 또한 수괴를 일거에 소탕할 기회를 노리며 숨을 참으니. 부디 가르침을 청하오.' 그 의연함에 감격한 기붕이는 영험한 서책을 들어보이며 '이 기아나개로리(奇兒裸改魯悧)에서 이르기를, 세 영웅이 손을 맞잡고 싸우면 작금의 제일인 기계파의 무용에 지지않을 절세지기가 나오리라' 단언했다. 기붕이가 설명하는 묘리의 이치를 깨닫고 행하니 과연 그 말이 옳았다.  


세 호걸이 손을 맞잡고 싸우니 그 위용이 기계파 기구라에 버금갈만 하였으나 그 기운이 너무 강해 누비(啂卑)들이 버티질 못하니, 그들이 걸어간 자리엔 수괴의 시신이 산하를 이루었으나 무과금 누비(無課金啂卑)들의 폭사(爆死)도 함께였다. 
이를 두고 기붕이는 기아나개로리에 월생구존망개이무(月生毆尊亡慨夷茂)라 기록하고 무과금월생구단단가이도(無課金月生毆斷段假以道) 또한 존망(尊亡)이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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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절 설을 맞이하여 소개하는 붕괴설화 마지막편 
기아나개로리(奇兒裸改魯悧)는 영험한 서책으로 이를 읽은 자는 붕괴(崩壞)의 난을 지혜롭게 해처나갈 수 있다 하여 학식 높은 군자들이 앞다투어 읽고자 했다. 
이 기아나개로리가 어찌하여 영험한 서책이 되었는지 말하자면 이 서책의 이름에서 그 역사를 짚어 보아야 하는데, 본디 기아나개로리는 서책의 이름이기 이전에 다시인사이도라는 큰 도(道)의 변방에 있는 작은 리(고을)다.  
정확한 주소는 조선의 다시인사이(多屎人社邇)도(道) 십덕(十悳)군(郡) 마이노(魔耳呶)읍(邑) 기아나개로(奇兒裸改魯)리(里)인데 여기서 마이노읍은 보잘것없는 오합지졸들이 제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모여 만든 우물 안 개구리들의 피난처라 할 수 있다. 본래 기아나개로리에 살던 이들은 이런 촌구석이 아닌 다시인사이도(多屎人社邇道) 개이무군(愷利舞郡) 모바이루읍(貌裵利累邑) 붕괴삼개로리(崩壞三改魯里)에 살았는데 지금은 그 패악질이 유명한 가패(家敗)의 비덕(肥德)들이 수시로 약탈을 일삼으며 마치 제집 드나들듯 하니 가지고 있던 서책과 보물을 모조리 빼앗겨 폐허가 된 고향을 뒤로하고 촌구석으로 이향하게 된 것이다. 


기붕이(奇朋利)는 그 붕괴삼개로리에 살던 붕붕이(崩朋利)의 후손으로 그의 아버지 붕붕이와 성이 다른 이유라 함즉, 가패의 비덕들이 붕괴삼개로리를 떠난 이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괴롭히니 그 수탈을 조금이라도 피해 보고자 아들의 성을 새로 정착한 고을의 앞글자를 따 기(奇)씨로 바꿔 비덕들이 추적하기 어렵게끔 했다. 비록 같은 십덕(什德)이라 하더라도 십덕군(十悳郡)에사는 십덕(什德)과 가패에 사는 십덕(什德)은 그 행실이 명백히 달랐으니, 그들의 패악질로 성씨마저 바꾼 기붕이가 그들을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기아나개로리에는 해외에서 학문을 익힌 많은 유학생이 있었는데, 왜(倭)에서 학문을 배운 이들은 왜국 문물에 충격받아 그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오올부루(五兀不累)는 실존한다며 가주아(呵嗾俄)를 연발하는 통에 조롱거리가 되어 그 격에 맞는 세실후부기(世失後不氣)나 쓰라 무시당했다. 반면 중원 땅을 밟고 온 이들은 그 대접부터가 달랐는데 기아나개로리 사람들은 그들을 중룡인(中龍人)이라 하여 중국의 선진 신문물을 먼저 접한 신지식인으로서 귀히 대접했다.  


중룡인들은 시세에 능통하여 적절한 물건이 장에 올라올 적이면 그 로대이손(鹵代利飡)을 평하며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평는데, 처음엔 그들의 지식을 참고하여 중원의 이치와 조선의 이치를 비교하여 옳고 그름을 따져 받아들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많은 이들이 스스로 학문을 연구하는 노력은 개을리하고 그저 중원의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하니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작금에 이르러 중룡인의 말이라면 세실후부기가 삼검예가(三劍藝可)보다 낫다 하더라도 일말의 의심 없이 믿을 기세였다.  


기붕이는 이러한 행태에 통탄하며 '내 지금은 비록 힘이 없어 이러한 행태를 막지 못하나 과거에 급제하여 뜻을 이룬 뒤 서책을 집필한다면 만인을 능히 설득할 수 있으리라'하곤 한양으로 떠나 과거에 응시했다. 
과거시험 관리들이 보아하니 기붕이의 지혜가 뛰어나나 그 내용이 실로 기묘하여 질의 문답을 통해 그 합격 여부를 결정하고자 했다. 
'그대가 이르길, 로대이손은 지르지 아니하고 참는자 만이 승자라 이르렀는데 그 연유가 무엇인가.' 묻자 기붕이가 이르기를 '본디 도구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더 좋은것이 나오기 마련이오. 설령 지금 좋지 않은 것이라 할지언정 연구를 거듭하여 그 쓰임이 달라질 수 있고, 좋은것이라 한들 미래에 평이 달라질 수 있으니. 과거 그대들이 예송논쟁에 버금갈 만큼 치열하게 논했던 삼검(三劍)과 후부기(後不氣) 또한 작금에 이르러선 후부기의 후자만 입에 올려도 따귀를 쳐올리지 않소? 이처럼 미래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한번 쓴 수정(水亭)은 결코 돌아오지 아니하니 숨을 참고 때를 기다리는 자만이 승자라 평한 것이오.' 관리들이 그 말을 듣고 이치를 헤아려 보니 과연 그 말이 옳았다. 관리들은 기붕이를 두고 그 지혜와 학문이 대단히 뛰어나 따를만하다 평하고 개추(愷追)라 기록했다. 
이에 능히 과거에 급제하니 사람들은 기붕이를 두고 숨 한번 쉬지 않고 과거에 급제했다 하여 무호흡 기붕이(無呼吸奇朋利)란 별호를 지어 칭송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월생구(月生毆)라 불리우는 과금결의(課金決意) 삼인방이 그에게 가르침을 구하고자 몸소 찾아와 고개를 숙일 정도이니 그 명성을 알만했다. 


기붕이는 마침내 자신의 명성이 널리 퍼졌음을 깨닫고 이전부터 작성해 오던 서책을 완성하여 세상에 풀어 놓으니 그 이름을 자신의 고향의 이름을 딴 뒤 고을 리(里)자를 영리할 리(悧)자로만 고치고는 기아나개로리(奇兒裸改魯悧)라 불렀다.  


이후 많은 이들이 기아나개로리를 읽으며 그 배움을 익혔는데 그 내용이 영험하여 마치 미래를 내다보듯 하였다.  
부로나(不老裸)가 대성하여 구로나(毆老裸)로 개명하고 영웅의 행보를 걸어 명성이 자자하였는데 사람들은 과연 기아나개로리에도 부로나에 대한 평가가 적혀있었을까 궁금하여 펼쳐 읽어보니. 과연 그곳에서 이르기를 부로나존망개이무(不老裸尊亡慨夷茂), 월생구개존망개이무(月生毆慨尊亡慨夷茂)라 평하곤 부로나는 그 기질이 빼어나 장차 큰 영웅이 될만하다 이르고 부로나대수웅(不老裸大殊雄)이라 하니 과연 그 말에 틀림이 없고 이치에 맞았다. 백성들은 그 이치와 묘리에 감탄하여 부로나대수웅을 연호하니 부로나대수웅 부로나대수웅 하는 소리가 만천하에 울렸다. 








갤을 옮겨오니 있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