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개 꼴리네."


"뭐?"


"가슴 머꼴이라고."


시발.

시월의 서늘한 밤.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메뉴는 늘 그렇듯 소주랑 오징어. 그리고 녀석이 산 아몬드. 조촐하지만 먹을 만은 하다. 


근데 가슴이 그렇게 잘 보이나. 두꺼운 후드티인데 드러나면... 여름 땐 고생 좀 하겠다. 붕대라도 감아야 하나.


"나 에프인데."


망가처럼 엄청 큰 수치는 아니다. 

딱 거유, 그 기준선일까.


"그걸 말하는 이유는? 개처럼 따먹어 달라는 건가?"


"미친 새끼. 그냥 그렇다고."


"여자가 술 먹으면서 브라 사이즈를 말한다? 그린 라이트 아니냐?"


진짜 미친 놈.

이건 호감 표시도 뭣도 아니다. 그냥 바뀐 몸 가지고 농담 하는 거다. 시우는 날 여자로 보지 않고, 연인으로도 보지 않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얘는 술 안 마셔도 이러니 드립을 쉴드칠 생각은 없다.


"그거 실례야. 다른 여자한테 했으면 교도소 간다. 농담 작작해."


"나도 선은 있다. 했다가 빨간 줄 그을 일 있냐. 뭐 인사이트? 기사까지 박제 되겠네. 너니까 하는 거야."


"그럼 다행이고."


술을 마셨다.

그냥 시우가 물었다. 술 한잔 하자고. 아는 장소에서. 이 녀석과의 만남은 늘 그런 식이다. 느닷없이 만나고, 갑자기 헤어진다. 남자들의 만남은 그렇다. 


계획 따윈 사전에 적혀있고 충동성이 앞선다. 제 삼자 같이 말하지만 지금은 여자니까. 이렇게 말해도 문제는 없다.


"나랑 만나는 거 여자친구가 알면 화내지 않냐. 친구긴 하지만 일단 이성이잖아. Ts병 환자인 건 알아?"


"몰? 루. 안 들키면 그만이지. 그리고 헤어졌어. 기념일 안 챙겼다고 지랄해서."


"지랄은 아닌데. 헤어질 일도 아니긴 하지만."


시우는 비정상인이다.

정상의 기준을 넓게 봐도, 그는 비정상인이다. 여친이 있는 주제에 나이트에 가고 대학을 째고 놀러다닌다. 


남자랑 섹스를 한다는 풍문이 퍼진 나와 어울리고, 시도때도 없이 드립을 친다. 얘가 금수저라 그렇지 나같이 흙수저였으면 벌써 인생 종 쳤겠지. 성인이 되지도 못 했을 터다.


"너, 꼴린다고 했잖아. 성적 의미지?"


"그러면 사랑이겠냐? 남자였던 놈한텐 안 박아. 몸매 쩔어도. 좆이 시무룩 해지는데 어떻게 박냐? 게다가 친군데. 비엘이야 그건."


"난 너가 갑자기 널 강간해도 놀라지 않을거야.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거든. 완전히 미치진 않았구나."


"...조곤조곤 패네. 내가 생각해도 그럴 새끼라 반박은 못 하겠다."


다시 술을 마신다. 취기가 올라오는게 느껴진다. 

얼굴이 좀 붉어진 거 같고 몸이 달아올랐다. 아, 물론 성적인 의미는 아니다. 성욕은 이미 혼자서 처리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실수하지 않도록.

"...친구랑 애인이랑 무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


"뭐, 우정과 사랑? 근본이 다르지 않나."


친구, 애인.

우정은 서로를 걱정하는 거다. 사랑은 우정을 넘어서 서로를 좋아하는 거다. 없으면 죽을 것 같이. 시우는 근본이 다르다 했지만, 사실 같다. 애호한다는 감정. 


다만 발전 과정이 다를 뿐이다. 우정이 서로를 도와준다면, 사랑은 서로를 탐한다. 밤에 숨을 뒤섞고, 타액을 교환한다. 몸을 겹치고, 쾌락을 얻는다.


"넌 날 친구라 생각하지?"


"당연하지. 여자...라 보지도 않을걸. 그냥 여캐 조작하는 남자? 이 정도 위치야."


그렇구나.

난 널 남자라 보는데. 

문란하지만 멋진, 그러면서도 돈은 쓸데없이 많은. 

하룻밤은 맡겨도 될 만한 남자.


"개새끼. 드러운 새끼. 시발놈."


"갑자기?"


"...좆같은 새끼. 그냥 죽어."


"미녀가 매도, 존나 포상인데. 한번 더 해줄래? 딸딸이 씹가능."


"...시발."


술을 마셨다. 취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난 집에 도착했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