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1938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독일의 절멸 수용소에서는 수감자 중 일부를 뽑아 Sonderkommando, 존더코만도라는 특수 임무 조직을 운영했다. 이들은 가스실에서 죽은 동료 수감자들의 시신을 치우는 등의 잡무에 종사하는 대가로 일반 수감자들보다는 나은 식사와 잠시간의 처형의 유예를 받았지만, 수용소장 혹은 수용소 관계자의 의중에 따라 언제든 가스실로 들어가 후임자들에 의해 치워질 수 있었다. 본질적으로, 그들 역시 절멸 수용소 수감자임은 다른 이들과 동일했던 것이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병역 대상으로 의무사관후보생 병적에 편입된 남성 의사 중 국방부장관이 지정한 사람들을 병역판정검사 전담의사로 선발하여 3년간 병무청 소속 임기제 공무원으로 근무하도록 한다. 이들은 병무청에서 병역판정검사를 실시해 병역자원의 신체등위를 매기고 역종분류를 하는 대가로 현역병으로 입영하는 사람들보다는 나은 처우를 받지만, 병역판정검사 전담의사로의 편입이 취소될 경우 현역병 혹은 사회복무요원으로 끌려가야만 하며 사직의 자유가 없다. 본질적으로, 그들 역시 대한민국에 남자로 태어난 불쌍한 이들임은 다른 이들과 동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나다. 씨발.

귀에 울리는 알람 소리가 좇같다.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도 당연히 좇같다. 국방부, 병무청 새끼들은 지들은 국민 강제로 끌고 가서 월급도 쥐꼬리만한 거 대충 던져주고 공상 입어도 좇까라 하는 주제에 나한테는 정시 출근에 성실 복무에 바라는 거 하나는 좇같이 많다. 아, 그런데 남자가 정말 이 나라 국민이 맞긴 한 걸까? 이게 이등신민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그런데 알람 소리가 왜 이렇게 크지? 아마 머리맡에서 울리고 있을 알람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크게 들리지는 않았을 텐데. 게다가 머리 위쪽에서 뭔가 배게에 눌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건...뭐야, 웬 동물 귀가 여기서 왜 만져져? 게다가 내 손이 닿는 느낌까지 머리로 그대로 전해져 오는게, 아무래도 이 귀가 내 머리 위에 달린 것 같다. 꼬리뼈 쪽에도 뭔가 있는 것 같다. 이건 꼬리겠지.

 

일단 화장실로 가기 위해 일어나보니 옷이 좀 커진 것 같았다. 시야도 평소보다 좀 낮아진 것 같았고.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자, 나는

"아?"

하는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거울에는 여우처럼 생긴 귀가 머리 위에 달린 여자애가 비쳤으니까. 방금 낸 그 얼빠진 소리도 분명히 여자 목소리로 들렸다.

"아, 아..."

다시 들어봐도 분명 여자 목소리다. 음, 드디어 내가 미친 것 같다. 강제노동 해야하는 처지가 좇같아서 미쳤다고 하면 공상 처리는 안 해주겠지? 아마 병가도 안 내 줄 거야. 그러니 출근은 해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옷은 살짝 접어서 올려주고 바지에 벨트만 채우니 큰 문제 없이 입을 수는 있었다. 꼬리가 눌리는 게 많이 불편은 하지만 일단은 옷이 입어는 지니 다행이겠지? 운전은 의자만 앞으로 좀 땡겨 주니 평소처럼 할 수는 있었는데, 내 차랑 옆 차 엔진에서 나는 소리가 꽤 거슬리게 들렸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병역판정검사장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선이 나한테 쏠린다. 역시 도른자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티가 나는군. 돌은 거 치고는 사고가 정상적으로 되는 것 같았는데 그게 돌은 입장에서나 정상적인 거였나보다. 어쩌면 내가 미친 게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아니, 내가 안 미친 거면 내가 하루아침에 진짜 여우 귀랑 꼬리 달린 여자애가 됐다는 건데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가 없지. 여기가 무슨 소설 속도 아니고. 그러니 나는 미친 놈이 맞다.

 

"저...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회복무요원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 친구 지나가다가 몇 번씩 서로 얼굴 봤는데. 지금 내 꼴이 얼마나 말이 아니면 쌩판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일까. 아마 긴가민가 하다가 큰 용기를 먹고 내게 물어왔을 것이다. 그러니 답을 해주는 것이 맞겠지.

"출근했는데요."

"어...혹시 오늘 처음 오신 겁니까?"

긴가민가가 아니라 아예 못 알아본 것 같다. 그래서 품 속에서 공무원증을 꺼내 보이며

"징병전담의사 서윤입니다. 오기는 두 달 전부터 왔어요."

라고 했는데, 이 친구가 공무원 사칭은 범죄라고 농담으로도 하면 안 된다고 그런다. 아니, 이래도 못 알아본다고?

 

그 순간, 나는 그동안 애써 무시하고 부정해 온 한 가지 가능성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이 친구를 대뜸 붙잡으며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냐고 물었다. 최대한 자세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이는 전부를 묘사하라고 그를 다그쳤다. 그리고 대답을 들었을 때, 내 설마하는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는

"어...일단 머리에 여우 귀같은 머리띠를 하고 계신 거 같고, 눈은 노란색인데 동공 모양이 좀 이상한데...근데 머리띠가 움직이는데요...?"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들은 나는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그를 놔줬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미친 일이 일어난 거였다. 하지만 미친 일이 일어났다고 그대로 여기서 나갈 수는 없었다. 이 미친 상황보다 더 미친 나라는 실종된 서윤이란 남자를 찾으려는 시도도 안 하고 무단결근 날짜만 하나씩 더할 거고, 그러다가 무단결근 8일째가 되면 서윤을 육군으로 끌고가려 들 테니까. 물론 찾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이 나라에서 의사를 하든 미국으로 건녀가든 일단 의사로 먹고 살려면 내가 의과대학 학부 졸업자인 서윤이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그러니 내 신분은 나라에서 안 나서더라도 내 스스로가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굳건이한테 끌려가지 않으려면 신분증명은 7일 내에, 가급적 최대한 빨리 끝내는 편이 좋겠지.

 

그런데 내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있나? 하루아침에 체격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는데. 소설에서 주변인들한테 신분증명을 할 때야 자기들끼리만 알던 비밀을 얘기하고는 하던데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해야하는 사람들은 병무청 관계자들이다. 둘이서만 공유하는 비밀? 그딴 게 있을리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핸드폰 잠금을 풀고 소설 몇 작품의 도입부를 찾아서 읽어봤는데 나한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없었다.

 

“에휴 씨발 그럼 그렇지…”

 

하고 푸념하면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다가, 문득 내가 핸드폰 잠금을 어떻게 풀었었나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까 지문인식 됐던 거 아닌가?

 

다시 내 핸드폰을 꺼내서 지문센서에 손가락을 갖다대봤다. 오른손 엄지랑 검지를 등록해뒀었는데, 엄지를 대니까 인식이 되면서 잠금이 풀렸다. 화면을 꺼서 폰을 잠근 후에 검지를 댔더니 이번에도 풀렸다. 그리고 지문센서가 고장난 건 아닌지 확인차 약지를 갖다댔더니, 이번에는 잠금이 안 풀리고 그대로 있었다. 왜 하필 지문만 안 바뀌고 그대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지문이 안 바뀐 이유가 아니라 안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였으니 상관 없었다.

 

그대로 병역판정검사장 건물을 나와서 본관 2층의 운영지원과로 들어가 서무계 직원을 찾았다. 직원이 나오자 나는 내가 징병전담의 서윤이라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이렇게 되어있었는데 내가 서윤이라는 걸 이 자리에서 증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는 내 말을 안 믿는 눈치였고, 그래서 나는 서윤의 연락처로 등록된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건 알지만 지금 내 겉모습도 말 안 되는 건 똑같지 않냐고 그를 설득하고(별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한참을 안 가고 가만히 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으니 그는 얼굴로 ‘네 소원대로 해줄테니 이제 꺼져달라’고 말하며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 핸드폰이 울렸다.

 

서무계 직원이 “어?”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며 당황한 표정을 지을 때, 나는 걸려온 전화를 받아서 “이제 내 말 들을 생각이 좀 생겼습니까?”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가 직원이 손에 든 수화기를 통해 직원의 귀로 들어갔다.

 

그 직원이 떨리는 눈빛으로 “네..”라고 말한 후 나는 그 직원과 함께 지문인식기 앞으로 가서 섰다. 이 쪽을 비추는 CCTV도 있으니 저게 고장났거나 가짜가 아니라면 내 지문이 인식된 순간 내가 이 모습으로 지문을 찍었다는 영상 자료도 남는 셈이다. 핸드폰을 켜서 현재 시각을 확인한 후 인식기에 내 손가락을 갖다 댔다. 당연히 인식은 정상적으로 됐다. 나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풀리는 상황에 웃음을 지으며 “봤죠? 가서 9시 27분 지문인식 기록 확인해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확인할 때 옆에서 힐끗 본 화면에는

 

9시 27분 36초, 서윤. 직위: 병역판정검사 전담의사

 

라는 글자가 분명하게 적혀있었다.

 

그 뒤에는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윗선에 보고가 되었고, 나는 바뀐 몸에 적응하고 옷도 새로 살 겸 해서 병가를 냈다. 사실 적응은 따로 할 건 없고 옷만 사면 됐다. 30여 년을 살면서 남성복만 입다가 갑자기 여성복을 사려니 좀 부끄럽긴 했지만, 지금처럼 아빠 옷 입고 나온 딸아이처럼 보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아까는 이런 생각 할 여유도 없었는데, 여유가 생기니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일단 신체 사이즈를 먼저 재야 하니 사이소에서 줄자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재는 방법은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정확한 사이즈 측정을 위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속옷까지 다 벗었다. 나신이 된 상태로 벗어둔 옷들을 집어들고 빨래통 앞으로 향하다, 문득 이 옷들을 빨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원래 몸으로 안 돌아간다면 이 옷들은 다시 입을 일이 없을 거 아닌가. 그래도 아직 옷장에 공간은 많이 남았으니 굳이 버릴 필요는 없을 거고, 그러면 빨아서 깨끗하게 한 뒤 보관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생각을 하고보니 이렇게 된 게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몸이 이렇게 된 걸 처음 알았을 때 패닉 상태에 빠졌던 건 모습이 변한 사실이랑 바뀐 모습 자체 때문이 아니라 대졸 학력이랑 전문의 자격이 싸그리 날아가고 무학력 무연고자가 된 줄 알아서였는데, 주인공의 성별이 바뀌는 소설에서 주인공의 상황을 안 좋게 만들던 가장 큰 요인인 신분 문제가 왠지 모르게 안 바뀌고 그대로 남은 지문 덕분에 해결이 됐으니까.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이 모습에 대한 감상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심적 안정을 되찾은 지금 다시 거울을 보니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 모습은, 내 취향 그 자체였다.

 

하얗지만 아주 살짝 노란 빛이 도는 머리카락과 귀, 털의 꼬리 색은 우유맛 소프트콘 아이스크림의 그 색이었다. 그런 한편 귀 안 쪽에 수북하게 난 털은 진한 커피같은 흑갈색이었는데, 귀에 포인트를 주는 느낌이라 다 하얀 것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리고 눈동자는 황금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까 내 모습을 본 사회복무요원이 동공 모양이 이상하다고 말했었는데, 그 말대로 내 눈의 동공은 사람 눈의 그것의 모양이 아니라 고양이 같은 동물한테서 흔히 보이는 세로동공 형태였다.

 

사실 이상한 건 사람한테 이런 눈이 달린, 아니 하루 아침에 사람이 이런 모습이 된 것이 훨씬 더 이상하겠지만, 그 모습을 보다가 한 가지 이상한 걸 느낄 수 있었다.

 

동공이 축소된 상태인데도 수평 화상이 왜곡되서 보이지가 않았다. 원래 이런 동공 형태는 개구율 변화가 원형 동공에 비해 훨씬 빨라 주변 밝기 변화에 적응하기는 좋지만, 동공이 축소된 상태에서는 정면상에서 들어오지 않는 빛에 의해 맺힌 화상에 왜곡이 심하게 발생하여 피식동물의 회피기동에는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는 소형 육식동물들이 주로 가진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양이이고. 근데 지금 나는 주변 시야도 변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왜곡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눈 말고도 이상한 건 더 있었다. 머리 위에 달린 이 귀, 예쁘기는 한데 구조적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여야 정상이었다. 외이도관이 있어야 할 위치에 내 뇌가 있을테니까. 그러니 외부 구조물만 있는 장식품 신세여야 할 내 여우귀는 오히려 사람 귀보다 오히려 소리를 더 잘 듣고 있었다. 내부 상태가 궁금해서, 아니 내부가 존재는 하는지가 궁금해서 면봉을 꺼내들었다. 혹시 이 면봉을 밀어넣었다가 끝이 내 뇌에 닿는 건 아닌가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귀 안으로 밀어넣어보았다.

 

아니, 밀어넣으려고 했다.

 

무언가 단단한 거에 막혀서 면봉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면봉이 닿았을 자리에서 누르는 느낌이 느껴졌다. 면봉이 닿은 부분에서부터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며 원을 그려봤는데, 이 면봉이 전혀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면봉이 귓바퀴에 닿았을 때, 이 면봉이 마지막으로 닿은 자리에 검지를 대고 그 자리에 대응하는 귀 바깥 부분에 엄지를 대 봤더니, 엄지는 내 머리 바로 위에 닿았다. 외이도관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냥 내 머리뼈랑 그 위의 두피가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생각은 없지만 귓바퀴만 뜯어내면 그냥 평범한 사람의 머리랑 구분할 수 없지 않을까. 근데 이러면 이 귀는 정말 껍데기밖에 없는게 되는데 어떻게 기능을 하는 거지?

 

지금 내 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져갔지만 여기서 고민만 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니 의학적, 생물학적인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뇌에 바깥공기 직통으로 쏘여주는 환기구가 없는 걸 알았다는 걸로 일단 만족해야지.

 

어깨 길이, 가슴 둘레, 허리 둘레랑 엉덩이 길이, 발 사이즈를 재고 각각의 수치를 클라우드노트에 기록해놨다. 이제 옷을 사러 나가면 되는데...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귀찮다. 게다가 지금 내 몸에 맞는 옷도 없는데 이 상태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귀찮다는 건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거고 이게 주다. 내가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데...그리고 사이즈를 아는 시점에서 굳이 밖에 나가서 살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시켜도 괜찮지 않겠는가. 오히려 인터넷으로 시키는 게 선택지도 더 많고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T샵에 들어가서 여성 정장을 먼저 검색해봤다. 생각보다 하의가 치마가 아니라 바지인 세트가 많은 건 좀 의외였다. 내가 여자가 되기만 했으면 치마보다는 바지가 있는 옷 위주로 샀을 것 같은데, 꼬리 때문에 바지는 따로 수선을 안 하면 입기가 너무 불편할 것 같아서 하의가 치마인 세트만 일단 장바구니에 담았다. 치마가 너무 짧은 건 아직 입기 그래서 무릎까지는 오는 것들로 골랐다. 넥타이는 그냥 지금 쓰던 걸 계속 써도 될 것 같아서 일단 안 샀다.

 

와이셔츠는 뭐 거기서 거기라서 적당히 싸면서 괜찮아보이는 걸로 담았고.

 

평상복도 하의는 치마로만 골랐고, 상의는 후드티랑 가디건을 몇 벌 샀다.

 

브래지어는 겉에서 보이지도 않는 거 그냥 편하게 스포츠 브라로 골랐는데, 팬티는 꼬리 때문에 부득이하게 로우라이즈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색깔만은 무난한 걸로 고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신발은 바뀐 사이즈에 맞는 기존에 신던 브랜드의 등산화로 골랐다. 보통 사람들은 평상시에까지 등산화를 신고 다니지는 않지만, 끈 있는 운동화는 끈이 풀어지면 다시 묶기도 불편하고 그 사이에 바닥에서 오염이 되면 만지기도 좀 찝찝한데 다이얼식 등산화는 그럴 일이 없어서 좋았다. 신을 때는 다이얼을 누르고 몇 번만 돌려주면 되고 벗을 때는 다이얼을 잡아당겨 주기만 하면 되니 나처럼 효율에 집착하는 사람한테는 최고의 신발이 아닐까. 왜 등산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적은지 나로써는 이해가 안 됐다.

 

양말은 바뀐 발 사이즈에 맞게 까만 걸로 스무 켤레 정도 샀다. 예전에 긴 바지만 입고 다닐 때는 색 상관 안 하고 아무거나 싼 걸로 샀는데, 이제 치마를 입고 다니게 된 입장에서는 예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난한 거는 되는 걸 사야 할 것 같았다. 까만 색이 확실히 무난은 하다.

 

그나저나 장바구니에 다 담고보니 생각보다 가격이 좀 쎄다. 지금 내 월급이래봤자 그냥 대위 3호봉에 맞춰서 주니 이백이 조금 넘는데 한번에 옷이랑 신발 값으로 백이 넘게 지출을 하려니 좀 속이 쓰리다. 원래 입던 옷들이 명품은 아닌데 중고로 팔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팔리긴 해도 얼마 안 나오면 차라리 안 팔고 두는 게 나을 것도 같은데...좀 이따 중고 시세를 한 번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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