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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촘촘하게 묶여 풀기 힘든 리본을 푸는 대신, 나는 드레스 앞섶을 한 방에 찢어버렸다. 답답한 드레스가 찢겨지자마자 탱글탱글한 가슴 두 짝이 해방되어 내 손에 가득 담겼다. 

   

뽀얀 살 한가운데 박힌 분홍빛 유두를 양손 검지로 두들기려는 그때, 후원 알림이 떴다.

   

[좆간혐오님이 1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치마도 찢어 좆간년아

   

“좆간혐오님 만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와, 드레스에 보호마법 빡세게 걸려 있네. 이거 손으로 찢을 수나 있을까?”

   

-보호마법 시발ㅋㅋㅋㅋ

-저거 찢기 전에 다리 확 벌려보고 싶농

-드레스가 형 몸값보다 비쌀 것 같은데 뒷감당 ㄱㄴ?

   

“야 시발 이 몸 면상 보면 모르겠냐? 이거 공녀라고, 공녀. 저거 나한테는 껌값이다. 부럽지?”

   

나는 이 몸의 날카로운 턱선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얼굴을 카메라에 가까이 댔다. 눈을 깜빡이며 촘촘하게 난 속눈썹을 바르르 떨게 하니, 비로소 내가 빙의했다는 것이 실감나는 것 같았다.


-와꾸보소

-시발년아 치마나 찢으라고

-팬티 보여주기 싫음? 시간 ㅈㄴ게 끄네

-찢

-어

-라

-먹튀 멈춰!


"아 먹튀 아니라고! 찢는다? 찢고 다리도 벌린다?"


내가 크게 외치자, 채팅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빨리 하라고 재촉하며 1000원 정도가 후원된 것을 확인한 나는 의자에 발을 올리고 보호 마법을 해제했다. 


그리고, 레이스가 빽빽하게 달린 드레스 치마가 내 손을 타고 양 갈래로 쫘악 찢어졌다. 시원하게 치마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가터벨트 때문에 약간 눌린 허벅지가 화면을 꽉 채웠다.


-솔라리스 눈나 나 죽어!

-오고곡

-악녀 닉값 제대로 하네ㅋㅋㅋㅋㅋ


솔라리스 레지나 라니아크. 내가 빙의한 이 몸의 주인은,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악녀였다.


*


 솔라리스에 빙의되기 전의 나는 하꼬 스트리머였다. 여러 소설 속의 여러 인물의 몸을 전전하며 여러가지 형태로 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내 주요 컨텐츠였다.


예를 들어 보자면 헌터물에서 인성 쓰레기 헌터에게 걸려서 사지절단을 당하거나, 판타지물에서 여자 몸에 들어가 고블린한테 따먹히고 복상사당하는 험한 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통받으면 고통받는만큼 돈이 들어온다. 이런저런 자극적인 형태에 시청자들은 열광했고, 나는 더 열심히 굴렀다. 여러 몸, 특히 여자 몸으로 들어갈 때마다 원래 몸의 자지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지만 돈이 필요했다. 평행세계간의 전쟁에 휘말려 망가진 몸을 고치려면 하루에 몇 탕을 뛰어도 모자랐다.


[좆간혐오 : 이 좆간새끼 ㅈㄴ 맘에 드네ㅋㅋ 후원해 줄테니까 장기 프로젝트 하나 해 볼래?]  


그러다가 한 성좌의 마음에 들어 '솔라리스'의 몸에 들어가 장기 컨텐츠를 시작한 것이다. 


성좌 '좆간혐오'는 내가 본격적으로 험한 꼴을 보기 시작한 때부터 거액의 후원-어디까지나 하꼬 기준이다-을 해주고 있었다. 이름대로 인간을 싫어하는 성좌였는데, 인간인 내가 다른 인간의 몸에 들어가 구르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기후원 계약서를 들고 찾아왔다.


그 계약서를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장기후원 계약은 곧 성좌에게 방송용 육체와 스트리밍 기기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한 마디로 방송을 킬 때마다 육체 대여비를 낼 필요가 없었다. 성좌가 방송 내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계약이 파기되면 후원은 커녕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성좌 '좆간혐오'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계약을 위해 그녀와 만났을 때, 조금 놀랐다. 방송에서의 입담과는 다르게, 입만 겨우 드러나는 가면을 쓴 작은 소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여기 나오는 좆간들을 고통받게 해 주세요. 방법은 상관 없어요." 


그때 그녀가 내민 책이 '솔라리스'가 악녀로 등장하는 소설 [유피테르의 기적]이었다. 


[유피테르의 기적]은 평범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었다. 가난한 남작가 영애 '루나라이트 베가'가 수도에 올라와 남자들을 후리고 다니다 최종적으로 제국의 황후가 되는 역하렘 소설. 솔라리스는 남주인 리겔의 약혼녀이자 사사건건 루나라이트를 괴롭히는 악역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할 일은 그 악녀의 몸에 들어가 주인공 루나라이트와 그녀의 친구와 조력자, 그리고 남자 주인공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스트리밍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인간의 몸을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그녀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인간에게 고개를 숙일 정도라니. 그녀가 [유피테르의 기적] 속 주요 인물들에게 얼마나 큰 원한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 그제서야 그녀가 미소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시시 웃는 그녀를 보고 나는 다짐했다. 이 성좌가 원하는 바를 들어줘서 돈을 엄청 벌자고.


그렇게 나는 솔라리스 레지나 라니아크가 되었다. 


*


 내가 눈을 뜬 곳은 라니아크 공작가 저택의 한 침실이었다. 로판세계의 공작가 따님이 된 것은 처음이라 내가 원래 살던 곳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방이 낯설었지만, 나는 재빨리 화장대 거울 앞으로 가 내 모습을 확인했다.


"시발. 진짜 공작 영애가 되어버렸네."


거울 밖의 나를 쏘아보는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확인한 뒤, 백발에 가까운 은발을 손가락으로 감아 보았다. 부드럽게 착착 감겨오는 게 이 머리카락이 얼마나 잘 관리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와 그립감......"


나는 흉부로 손을 옮겨 가슴을 주물럭댔다. 못해도 D컵 이상은 될 듯한 이 가슴은, 마냥 부드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단련된 듯 탄탄하게 내 손 안에 잡히고 있었다. 여자 몸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하는 행위였지만, 이 몸은 압도적이었다. 이 커다란 젖탱이를 손으로 쥐고 흔들며 뒷치기로 존나 따먹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게 내 몸에 달려 있다고?'


굳이 아래쪽을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가슴. 정작 여주인 루나라이트는 껌젖이던데 작가는 뭘 믿고 이런 설정을 달아놓은 것일까.


[좆간혐오 : 몸 확인은 했지? 방송 ㄱㄱ] 


그 순간,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상태창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래. 하루빨리 이 육체로 돈을 벌어먹어야지. 


[좆간혐오 : 화장대 거울에 캠이랑 컴퓨터 기능을 세팅해 놓았어. 그냥 너 하던대로 하면 돼.]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내 방에 있는 컴퓨터 키듯 화장대 밑 부분을 눌러 보았다. 마력 비슷한 것이 흘러나오더니, 금방 스트리밍이 시작되었다. 


-뭐야 방송 시작했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악녀가 되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시청자 한 명이 들어왔다. 허구한날 내가 찢기고 썰리는 것만 보다가 멀쩡한 드레스를 입고 인사하는 게 신기했는지, 바로 질문 채팅이 날아왔다.


-ㅅㅂㅋㅋㅋㅋㅋ 이번에는 또 뭐냐

-곧 돼지 백작 난입 각?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왜 전쟁터 아님? 왜 멀쩡함? 왜 안 따먹힘?


"제가 성좌님의 후원을 받아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거든요. 고통받는 솔라리스에서 고통을 주는 솔라리스가 되었습니다! 좆간 참교육? 이게 맞으려나?"


-아 초심 잃었네

-그동안 즐거웠음ㅂㅂ


시청자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긴, 이제부터 할 것은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컨텐츠와 전혀 다르니 그럴 만 했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이라.'


안 그래도 하꼬인데 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생각에 한숨이 나왔지만 나에게는 이 육체와 성좌의 후원이 있다. 나는 19금 마크를 단 뒤, 단숨에 드레스 앞섶을 찢어 버렸다.


*


 로판 악녀 여캠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홍보되었는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손으로 옷을 찢고 몸을 보이는 감각은 새로웠다. '좆간혐오'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지만, 시청자 확보를 위해 후원을 하고 미션을 거는 등 방송에 맞춰 주는 태도를 보였다. 


-ㅗㅜㅑㅗㅜㅑ

-이맛에 악녀하는구나


방송을 시작한지 두 시간이 넘어가자 방 안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좆간혐오 : 곧 온다.]


"네?"


갑자기 메세지 창이 떴다. 형식적인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벌컥 열렸다. 


"이제 일어날 시간입니다, 아가씨."


 문 밖에 세숫물을 들고 온 시녀 한 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꼴이 어땠더라. 방금 드레스를 찢어서 가슴과 팬티가 드러나 있었지. 


"이, 이게 드디어 미쳤나...... 아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에요?"


시녀가 세숫물을 담은 대야를 바닥에 내팽겨친 뒤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이제서야 이 저택에서 솔라리스의 위치가 기억났다. 


짜악-!


소설의 내용을 떠올릴 틈도 없이 그녀의 손이 내 뺨을 내리쳤다. 시녀가 손찌검을 해도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입지가 위태로운 공녀. 그녀가 솔라리스 레지나 라니아크였다. 


"이 일은 공작님께 알리겠어요!"


하지만 나는 솔라리스가 아니란 말이지.


나는 조용히 방을 나가려는 시녀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빠져나오려는 듯 몸을 꿈틀거렸지만 내 손아귀에서 해방될 수는 없었다. 


"이거 놔! 안 놔? 내가 나가기만 하면......."


-방장 피지컬 보소

-돼지 백작 ㅇㄷ? 

-메이드 조교 가즈아ㅋㅋㅋㅋㅋ


아직 방송을 끄지 않아, 내가 시녀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는 모습이 송출되고 있었다. 그 때, 미션 알림이 화면에 떠올랐다.


[좆간혐오 님이 1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저년 조교 성공하면 50만원